[뉴스앤조이-구권효 편집국장]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세습을 반대하는 신학생들은 외쳤다. 이들의 절박한 마음을 모르는지 재판국은 또 선고를 미뤘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기어코 9월 총회 코앞까지 버텼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희망이 있다면, 이번 명성교회 세습 재심 사건 주심을 맡은 오양현 목사의 발언이다. "명성교회 사건의 심각성,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1938년 신사참배 결의와 거의 비등한 건으로 진지하게 임하고…." 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해 주는 게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재판국이 판결을 연기한다고 발표했을 때, 신학생들을 비롯한 세습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격하게 저항했다. 이미 회의가 끝난 마당에, 재판국원들 길을 막고 세습을 철회하라고 소용없는 외침을 반복했다. 국원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어렵게 퇴장했다.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고가 자꾸 지연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인간해방과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어차피 독선에 대해 회의가, 권위에 대해 이성이 승리를 거두는 긴 투쟁의 되풀이임에 틀림없다. 우화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하는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난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영광(또는 해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간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가 강요되었느냐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겠다."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14쪽

정의는 그때, 그 시점에 말해져야 정의다.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개한다. '한국교회의 원죄'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아마 100년이 지나도 계속 회개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진정성을 받아 주지 않는다. 신사참배 결의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교회가 제국의 힘에 빌붙어 살길을 모색하는 동안 일어났던 인간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를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성교회 세습 재판이 길어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신앙적 후퇴가 진행됐는가. 교단의 법을 맡은 이들은 '은퇴한' 목사에게 세습금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교단 신학교수는 성경에 '세습'이라는 말이 없다며 세습금지법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했다. 교단 목사들은 "큰 교회가 버티니 법도 소용없지 않느냐"며 세습금지법 폐기를 헌의했다. 세습금지법 제정 때는 부끄러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말들이 이제는 수치를 모르고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에야 재판국이 8월 5일 제대로 판결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이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덜 최악인 상황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지금 명성교회 세습에 제동을 건다면 그동안 진행된 신앙적 후퇴를 성찰할 시간이 주어지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80년 100년이 지나도 허망한 회개만 반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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