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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이 낳은 이스라엘 분단
[박태순의 교양으로 읽는 성서] 왕조시대⑥ 르호보암과 시삭
  • 박태순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7.18 17:57

솔로몬의 죽음, 이스라엘의 분열

지혜의 왕 솔로몬의 죽음은 연합 왕국에 폭풍을 몰고 옵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930~913년)은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권을 물려받지만(왕상 11:43),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 왕국의 체제가 무너져 버립니다.

솔로몬의 조세수입 징수에 관한 설명(왕상 4:7-28)을 보면 왕권 유지와 국가 체제를 위한 수입 징수는 그런대로 무리 없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건축 공사와 왕궁 유지를 위한 세금 부담은 어느 정도 이스라엘 지파 지도자들이 감내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과 예루살렘 왕궁 건축이 20년 넘게 이어지자 백성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습니다. 또한 세겜에서의 일을 보면(왕상 12장) 강제 노역도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9:15-23에 따르면 솔로몬은 강제 노역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에게만 부과했고 그의 공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관리와 감독을 담당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럼에도 북부 지도자들의 불평을 들으면, 자신들이 솔로몬의 노동 정책에 의해 노예화되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열왕 12:3-4).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왕 

암몬 여인 나아마의 아들 르호보암은 41세에 왕이 되어(왕상 14:21) 17년간 다스립니다. 르호보암은 재위 초기에 아버지 솔로몬의 토목공사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열왕기상12:7을 보면 '왕은 먼저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백성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될 것'인데,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노역을 줄여 주라는 노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친구들의 자문을 따릅니다(왕상 12:10-11).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중략)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중략)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왕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왕상 10:16).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시삭(Shishak)의 침공

925년경 르호보암 재위 5년에 이집트의 22왕조 창시자인 시삭이 남유다를 침략합니다(왕상14:25-265, 대하 12:1-12). 시삭은 이집트 파라오 쇼솅크 1세(Shoshenq 1)로 추측되며, 테베(오늘날의 룩소)에 있는 카르낙의 아문 대신전의 첫 번째 앞뜰 남쪽 벽에 위치한 소위 부바스티스 현관(Bubastite Portal)에 묘사된 시삭의 승리 장면과 함께 나오는 상형문자 본문을 통해 성서의 기록이 증명되었습니다. 샤론 평원과 이스르엘 통로(므깃도, 다아낙, 슈넴, 벧스안, 르홉)를 지나 요단 동편(숙곳, 브누엘, 마하나님, 아담)에 이르기까지의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별히 유다만 정복하고 벌인 전쟁은 아닙니다. 전쟁을 조직한 형태와 카르낙에서 그것을 기념하는 수사학은 위대한정복자 람세스 2세의 형태를 그리워하며 모방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시삭 침략의 원인은 솔로몬이 남부 네겝에 요새들을 건설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을 수 있으며, 시삭은 이집트와 시내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온 뒤 가사(Gaza)를 지나 게셀(Gezer)을 공격했습니다. 거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에브라임 산지 남부로 갔다가 아얄론, 벳호론, 기브온을 통과하는 통상적인 북부 접근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열왕기상 15:26에서 보듯이 르호보암이 왕궁의 보물과 솔로몬의 금 방패를 다 빼앗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 줍니다.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여정의 많은 유적지에서 10세기 말엽에 해당하는 층에서 큰 규모의 불탄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아라드, 게셀, 다나악, 므깃도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므깃도에서는 시삭이 세운 기념비의 파편도 발견되었으며 이는 솔로몬의 므깃도, 하솔, 게셀의 대규모 건축 이야기(왕상 9:15)의 역사성의 간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또한 파괴된 도시들은 신속하고 완벽하게 때로는 더 높은 수준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아직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시삭의 침략(기원전 925년경)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연대를 확정할 수 있는 최초의 사건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왕들의 연대 확정하는 문제

성서에서 처음으로 연대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건은 열왕기하 24:10-17에 나오는 느브갓네살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입니다. 이는 바벨론 연대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7년 기슬리무 월(月): 아카드 왕은 하티 땅으로 군대를 이동시켜 유다 성을 포위하였고, 왕은 앗다루 월 제2일에 그 성을 취하였다. 그는 그 성에 자신이 좋아하는 한 왕 '여호야긴의 숙부 시드기야'를 임명하였고 그 성으로부터 많은 전리품을 받아서 그것을 바벨론으로 가져왔다."

느부갓네살 7년 앗다루 제2일은 기원전 597년 3월 15일이나 16일이었을 것입니다. 성서는 정확한 연대를 기록하지 않고 대신 왕의 즉위 연대를 같은 시대의 다른 왕국 왕의 재위 기간과 연결시켜 밝혀내는데 아시리아와 바벨론 기록을 성서와 비교해보면서 정확한 시대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 아합은 기원전 853년 살만에셀 3세가 서방을 원정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왕이었다.
- 예후는 기원전 841년 살만에셀 3세의 왕전 때에 왕위에 있었다.
- 여호아스의 재위 기간은 아닷니라리 3세(810-783년)와 겹치고, 여호아스는 806년과 796년 사이의 어느 때에(아마도 796년) 아닷니라리에게 조공을 바쳤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왕의 통치 기간을 확정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열왕기서에 나오는 연대기 수치들은 성서 편집자의 도식에 맞춰 조정되었을 것이다.
둘째, 성서의 여러 사본들과 판본들에서 읽기가 서로 다르다. 이는 전승되는 동안 어느 정도 유동적이었을 것이며 특히 히브리 및 헬라어 사본들 간에 심하다.
셋째, 하나의 사본 전승이나 판본에서도 불일치가 있다. 마소라 본문(MT)에서 인용한 구절에 의하면 바아사는 그가 라마에서 건축을 시작했을 때 이미 죽은 지 10년이 지난 후가 된다.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왕상 16:8)."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대하 16:1)."

넷째, 성경의 수치들은 메소포타미아 기록들에 드문드문 나오는 '기준치들'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아시리아 기록을 통해 므나헴이 737년에 디글랏빌레셋 3세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것과 아시리아가 호세아를 732년에 사마리아에서 왕위에 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시리아 기록에 따르면 므나헴의 재위 기간의 끝과 호세아의 재위 기간의 시작 사이에는 최대 6년의 공백이 있다. 그렇지만 열왕기하에서는 므나헴과 호세아 중간에 통치하였던 브가야와 베가가 모두 합쳐 22년간 재위에 있었다고 말한다. 아시리아 기록에는 6년, 성경에는 22년의 기간으로 나오기에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의 대략적인 연대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 성벽

2015년 7월, 이스라엘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텔(언덕이라는 뜻) 라기스' 발굴 현장에서 르호보암 성벽을 발굴하였습니다. 이 지역 발굴은 이스라엘, 미국, 한국 등 3개국 연합으로 2013년부터 진행됐으며, 한국 발굴단은 르호보암 성벽을 찾는데 집중해 왔습니다. 라기스는 아세가와 함께 바벨론의 공격을 끝까지 견딘 견고한 성읍으로 쉐펠라(평지) 지역의 중요한 성읍으로 여호수아와 연합해 싸운 아모리 다섯 왕 중 하나가 다스렸던 성읍이었습니다. 라기스는 1929년 올브라이트에 의해 텔 에드 두웨이르(Tell ed-Duweir)로 동일시되어 텔 라기스(Tel Lakhish)로 불립니다.

라기스는 역대하 11:5-10에서 '르호보암이 유다 땅에 건축하였다'고 전한 15성읍 가운데 하나로, 한국 발굴단은 르호보암이 건설한 성벽을 찾아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성벽은 너비 3M의 돌로 축조됐으며, 기원전 10세기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들도 출토되었습니다.

르호보암 시대의 라기스는 키르벳 케이야파, 게셀에 이어 계획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왕정 체제에 의한 건설 작업이 분열 왕국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을 보여 주며 이후 브엘세바, 텔 베이트 미르심 등의 도시 건설로 그 명맥이 이어갑니다.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관련 영상 바로 가기: https://youtu.be/oQkKCStZn7c
박태순 / 부천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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