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의 순교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1977년 6월 19일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자 당시 종교 권력은 예수를 신성모독으로 체포하였고 급기야는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는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며 그분 외에는 신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우상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교회의 고백과 정면충돌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세상 권력의 우상들, 돈의 우상, 그리고 그 어떤 우상을 만들어 내는 일, 그리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필요하지 않으며 이 땅 위에서 누리고 있는 부로 충분하다고 믿는 우상들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모든 우상들을 타파할 뿐만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주님이심을 선포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신이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신을 믿고 있느냐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상 혹은 우상적 신을 믿고 있느냐, 참된 하나님을 믿고 있느냐 문제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우상은 '돈의 우상'입니다. 돈의 우상은 우리에게 험악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돈의 우상은 아주 평범한 모습, 아니 매우 달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돈의 우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단한 용기와 결단력을 요구합니다.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확실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믿음 없이 돈의 우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무엇입니까. 참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오늘의 상황에서 돈의 우상을 섬기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 믿음과 교회의 진실성을 가늠해 줄 것입니다. 돈의 우상! 한국교회는 돈의 우상을 이길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한국교회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림형석 총회장) 총회 재판국(강흥구 재판국장)의 명성교회 불법 세습에 대한 판결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진행된 재판은 9시간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결론은 유보되었습니다. 8월 5일 다시 재판을 연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장통합 헌법은 명확합니다. 헌법은 목회 세습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2018년 제103회 총회는 세습의 불법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총회 결의를 기준으로 재심을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것은 돈의 우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었습니다. 재판국이 명확한 헌법과 총회 결의를 반영해 판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판결을 위해 많은 시간 논의했다고 합니다.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이것이 시간을 끌 만한 일입니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총회 재판국의 행위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헌법 그대로 판결하면 되는데, 무슨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입니까. 재판국 모습은 이미 한국교회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 그것도 돈의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번 명성교회 세습은 어떤 화려한 말로 꾸민다고 할지라도 그 핵심에는 돈이 있습니다. 만일 엄청난 돈과 그 돈이 주는 힘이 없다면, 이토록 말썽을 부리면서 세습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명성교회도 솔직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선교·전도 등 화려한 말로 속마음을 꾸미지 말고, 차라리 엄청난 돈이 있는 이곳을 남에게 줄 수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좋겠습니다. 핵심에 돈이 없다고 한다면 개교회 하나가 교단 전체를, 한국 교계와 사회를 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무리수를 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성교회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세습 강행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까.

오늘 총회 재판국의 판결 연기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돈의 우상에 절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재판국은 헌법에 따라 명성교회 세습의 불법을 판결하고, 김하나 목사의 위임을 무효화하는 선고를 내려야 합니다. 그것만이 예장통합 총회가 사는 길이며, 이미 사회의 신뢰를 잃은 한국교회에 작은 희망이라도 주는 일입니다.

8월 5일 재판에서 올바른 판결, 법에 의한 바른 판결이 이루어지기를 정말 지친 마음으로,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다려 봅니다. 한국교회가 돈의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재판국이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말을 되새겨 봅니다.

"교회는 그 어떤 권력도 그리고 돈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교회는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거부당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특권과 특혜, 이 땅 위의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이 세상의 인간적인 온갖 좋은 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는 교회, 그렇게 함으로써 복음의 전망으로부터 보다 더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자신의 가난한 상황으로부터 이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1977년 8월 28일 강론, <오스카 로메로의 생각들 1~2>, 200쪽)

명성교회 문제는 단순한 개교회 담임목사 청빙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느냐, 아니면 돈의 우상을 섬기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수 24:15)."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신학대학교(ISEDET)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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