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교회 건축하는 사람 되는 게 꿈이었어요."

다시 물었다. "교회 건축이요?" 돌아온 답은 같았다. "네." 교회 건축이 꿈인 사람은 처음 만나 봤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궁금했다. 그랬더니 부모님도 원하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모님이 혹시 목회를 하고 계신지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건축 일을 하시는지도 물었다. 역시 아니었다. 어머니 소원이 크셨다. 그렇게 가족들은 전부터 교회를 세우는 데 제 소임을 다하려고 애를 썼다. 김명훈 씨(33세) 이야기다.

김명훈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군 복무 후에는 다시 호주로 돌아가 건축 설계 사무소에 취업했다. 누구나 선망하는 유망한 직장이었다. 교회 건축의 꿈에 실제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중이었다. 이 직장에서 건축 실무를 배우고, 경험을 쌓아서, 이후 언젠가 교회 건축 현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호주에서의 직장 생활은 생각처럼 순탄치는 않았다. 고뇌와 번민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취업 이후의 삶과 교회에 대한 고민 없이 덜컥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때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고 붙들었다. '나는 왜 여기에서, 이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가.' 막막함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사실, 직장에서는 생각했던 것만큼 실제 건축의 면면들을 속속들이 배우기 힘들었다. 상업 건축의 현실에서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은 깊어갔다.

1년 남짓 다녔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해비타트에서 목조건축학교를 졸업하고 시공 현장에서 10개월 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집이 필요한 이웃에게 집을 지어 주는 일에서 나름의 보람을 찾았다. 실제로 집 짓는 법을 배울 수도 있었다. 호주에서 보냈던 힘겨웠던 날들이 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노동으로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았다. 그때 마음을 먹었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을 짓자. 그 사람들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7월 4일 서울 성산동 함께주택협동조합 사무실에서 김명훈 씨를 인터뷰했다.

탄자니아에서 배운
집 짓기의 실제

굿네이버스를 통해 탄자니아에 가기로 한 것은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심한 일이었다. 파견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는 사람들이 당장 머물 수 있는 거주 공간도 필요했지만, 병원, 학교 등 각종 공공 시설물도 마련되어야 했다. 1년 동안 바쁘게 건축에 매진했다. 원래 1년을 약속하고 갔던 여정이었는데, 부룬디의 정세 불안으로 탄자니아에 유입되는 난민 수가 늘어나게 되어 굿네이버스의 UNHCR 난민 캠프 사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탄자니아에 1년 더 머물기로 결심했다.

탄자니아에 있는 동안 건축과 관련한 현장의 다양한 일들을 익힐 수 있었다. 비용, 입찰, 계약, 설계, 감리까지 전체 과정을 스스로 책임지고 추진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현지 사정이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일손을 멈출 수 없이 맡은 일들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머물고 싶었다. 그곳 습속과 풍토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값진 일에 자신의 재능이 사용된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2017년 고국에서는 촛불 혁명이 만개하고 있었다. 인터넷 뉴스로 각종 어지러운 정국 소식을 접했다. 이역만리 타국에 있어서인지 왠지 더 애타는 심정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연일, 매주 종로에 모이는 시민들의 커다란 함성에 탄자니아 한쪽에서 숨죽이며 응원의 마음을 보탰다.

2년을 마치고 더 있을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결국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름의 부채 의식이 생겼던 것일까. 지금 우리가 이만큼 지내는 것도 다 앞서간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자각이 촛불 혁명을 지켜보며 싹트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몫이 있을 텐데, 우리 힘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바꿔 가야 한다는 의식이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다. 탄자니아에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힘이 결정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탄자니아에서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 제공 김명훈
집 짓기의 실제를 배우는 과정은 계속 이어졌다. 사진 제공 김명훈

오래된 미래를 건축하자

짐을 싸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호주에서 돌아왔을 때와는 조금 다른 몸가짐, 마음가짐이었다. 실력을 쌓았고 진로를 구체적으로 모색해 볼 마음의 근육이 생겼다. 길을 찾는 사람에게 만남이 허락되는 것일까. 부산에서 푸드 트럭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이 당장에 진로 계획이 없다면 자신과 이 사역을 잠시나마 함께해 보겠느냐고 제안하셨다. 부산에서 지내는 동안 푸드 트럭 사역을 감당하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사회의 사각지대에 실존하는 현실에 눈뜨게 되었다. 자기 자신도 방 한 칸에 세 들어 지내면서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 어려움을 마주하며 6개월을 버티고 버텼다.

그 무렵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여러 외국 사례들을 탐독했다. 눈여겨보게 되는 주제는 아무래도 주택, 주거와 관련한 이슈들이었다. 주택, 주거 문제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풀어 가는지를 관심 있게 살펴보고 공부를 이어 나갔다. 가장 흥미로웠던 사례는 '공유 주택'과 관련한 이야기들이었다. 1인 가구, 주거 빈곤, 주택 소외 등 갈수록 번져 가는 주거와 관련한 생활 조건의 퇴화를 새롭지만 오래된 방식으로 풀어 가려는 실험들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고 있었다.

당장에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실험을 추진하는 모둠들을 수소문했다. 관련해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분들은 일부러 찾아가 만남을 요청했다. 적극적인 추진력은 만남에 꼬리를 물게 했다. 곳곳에 현장 답사를 하면서 유수한 사례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곳이 서울 마포구 성미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이었다. 때마침 조합에서는 건축 관련 담당자를 모집 중이었다. 내 자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덥석 물었고, 조합에서도 반겨 맞이했다.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직접 땅을 매입하고 건축을 하고 입주자도 모집한다. 사진 제공 김명훈

교회 짓는 마음으로
집 세운다

다시 좀 되짚어서…. '그렇다면, 교회 건축은 어떻게 된 것인가. 꿈을 접었는가.' 교회를 세우겠다는 어릴 적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시절 진로를 공유 주택 짓는 일로 정하게 된 내막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호주에서 힘든 시절을 보내는 동안 신앙 체험을 했어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통해 교회가 이룩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된 거죠. 이후 해비타트 활동을 결심하면서, 해비타트 창설자 밀러드 퓰러의 <망치의 신학>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사람을 세우는 것, 공동체가 세워져 가는 집을 짓는 것이 곧 교회를 짓는 것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어요.

안전한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이 생기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공동체성, 그것이야말로 교회가 지어지는 과정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공유 주택은 그런 면에서, 안정적인 주거 공간은 물론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집이니까, 더더욱 교회를 짓는 마음으로 잘 지어야겠지요."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주택은 개인에게 임대하고, 공간은 서로 공유한다. 사진 제공 김명훈

함께주택협동조합,
그리고 공유 주택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입주를 결심한 조합원들이 직접 기획, 설계, 시공, 입주자 모집까지 도맡아서 공공의 책임으로 땅을 사서 건물을 짓는다. 주거 공간은 입주자들이 사용하는 형식에 맞게 제각각의 공유 주택 모델을 구축한다. 현재 1호점과 2호점에 11명의 셰어 하우스 입주자가 있고, 5세대가 가구 형태로 입주해 있다. 그리고 3호점은 서울시 '토지임대부 사회 주택' 형식으로 현재 설계를 마쳤고 다음 달에 착공한다. 2020년 12세대가 입주한다. 1호점, 2호점, 3호점 모두 각각의 주거 공간과 함께 별도의 공간을 할애해 공유 공간으로 활용한다.

함께주택 1·2·3호가 있는 서울 마포구는 서울에서도 땅값이 높게 형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땅값이 오르면 토지를 소유한 개인의 주머니는 가득 차오르고, 임대해 살아가는 세입자들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서울의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병폐가 아닐 수 없다.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이 점을 극복하고자 공동으로 토지를 매입해 조합이 건물을 소유하고, 집이 필요한 개인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임대해 주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입주자들은 입주자위원회를 만들어 각각의 주택 관리와 운영 전반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처리한다. 입주를 결정하기 전부터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던 2호점은 각자의 형편에 맞게 보증금을 모았다. 점유 공간에 비례해 일률적으로 값을 나눠 매기지 않은 것이다. 1호점 입주가 시작된 2013년부터 2호점의 입주가 시작된 2016년 이후까지, 5년 동안 월 사용료는 오르지 않았다. 적정한 임대 비용에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는 협동조합의 기조 위에, 입주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한다. 공동체적인 관계와 공간 공유 개념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김명훈 씨 역시 지금 1호점에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7개월 남짓 살았는데, 상상 이상의 만족을 누리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방은 3층이지만 2층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잠깐이라도 들러서 말벗 삼아 대화를 나눈다. 퇴근 후에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함께 사는 이들과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얼마든지 단절된 채 각자 살아갈 수 있지만, 여기 머무는 동안 아직까지 그런 느낌은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김명훈 씨의 교회 짓기, 공유 주택 짓기는 이제부터 다시 또 시작이다. 사진 제공 김명훈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지금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사회 주택 '토지지원리츠' 사업을 통해 안전한 집이 필요한 가족들을 위한 4호점을 계획 중이다. 이어서 서울 내에 있는 빈집을 활용한 사회 주택 사업에도 참여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명훈 씨도 3호점 시공부터 해서 4호점과 5호점 건축 관련 담당자로 본격적인 공유 주택 건설에 들어선다. 교회를 짓겠다는 김명훈 씨의 꿈은 호주를 지나 탄자니아를 거쳐 지금은 서울 성산동에서 함께주택협동조합과 함께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

희년함께는 7월 18일 청년 주거 문제 이야기 한마당을 연다. 김명훈 씨와 함께주택협동조합 이야기도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눌 예정이다.

#희년함께청년주거문제이야기한마당
*참가 신청하기: 
https://forms.gle/CKdXttBWPtaRBGVb9
*안내 글 보기: http://bitly.kr/h4Qk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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