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은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였는데(삼상 9장),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숩(Zuph) 땅의 마을로 오게 됩니다. 사무엘은 우연히 그 마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있다가 사울을 만나 몇 가지 예언과 지시 사항을 일러 줍니다. 그 뒤 사무엘은 미스바에 사람들을 모으고, 제비를 뽑아 짐 가운데 몸을 숨기고 있던 사울을 왕으로 삼지만(삼상 10:17-25),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무리는 불만을 표출합니다.

사무엘이 기름 부어 왕으로 추대된 사울은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 첫 승리를 이스라엘에게 안겨 줍니다(삼상 13:5~14:46).

성서의 기록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발생했던 일에 대한 세부 사항은 간략한 암시만 줍니다. 사울이 블레셋을 이스라엘 중심에서 몰아낸 것 같습니다. 훗날 사울은 길보아산 근처 평지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고 맙니다(삼상 31:1-7, 삼하 1:6-10).

사울이 통치한 햇수

사무엘상 13장 1절 히브리어 본문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개역개정판 -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새번역판 -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은 마흔두 해였다.
공동번역판 - 번역 없음.
NIV판 - Saul was thirty years old(30세) t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ty-two years(42년)
KJV판 - Saul reigned one year(1세);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2년)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는 해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을 2년간 다스렸다"입니다. 처음부터 왕위 등극 관련 숫자가 없었거나 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1절은 사울이 40년간 다스렸다고 합니다(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같은 내용).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행 13:21)."

어떤 학자들은 사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름 부음을 받는 사건(삼상 10:6)부터 왕으로 확정된 때(삼상 11:15~13:1)까지는 1년이 흘렀고, 사울이 왕으로 확정된 때로부터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때까지는 2년이 흘렀다고 해석합니다. 아쉽게도 사울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연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블레셋의 위협

블레셋(Philistine)은 해양 민족들 중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에는 300번 가까이 등장합니다. 성경이 전하는 묘사에서 파생해 현대 영어에서 'philistine'은 '속물' 혹은 '교양 없는'을 뜻합니다. 에게(Aegean, 서쪽 그리스반도와 동쪽 소아시아 및 크레타섬 사이에 있는 지중해 지역) 지방이나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 지방) 남부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블레셋은 철기 문화를 지닌 강력한 민족이었습니다. 해양 민족들은 기원전 12세기 초 시리아-페니키아 해안에 있는 수많은 도시를 파괴했고 이집트까지 점령하려고 시도하지만 람세스 3세 통치 8년(기원전 1177년경)에 저지됐습니다. 이 전투는 테베에 있는 람세스 3세의 메디네트 하부(Medinet Habu) 신사 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 시대 고고학

사울의 왕권에 대한 고고학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실로(Shiloh)는 기원전 11세기 중반쯤 큰 불로 불타 버린 것 같은데, 이 파괴는 블레셋이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찌르고(삼상 4장) 난 뒤 있었던 후속 공격의 결과물로 보입니다.

이 시기는 중앙 집중화가 덜 된 농부들과 목축업자들의 사회였으며, 요단강 서쪽에 5만 명 정도가 살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달리 블레셋 도시 아스돗, 텔 게리사, 텔 미크네(성서의 에그론), 아스글론은 번창했습니다.

사울 통치 시기 이스라엘에는 철공이 없었고, 보습·삽·도끼·괭이 등은 블레셋을 통해 구입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만 칼과 창을 소유했다는 성서 이야기는(삼상 13:19-22) 고고학 자료로 뒷받침됩니다.

기원전 11세기로 추정되는 철로 만든 쟁기 끝들이 기브아(텔 엘 풀, Tell el-Ful)에서 발견되었고 텔 제메, 벧산, 텔 엔 나스베에서는 기원전 10세기로 추정되는 철로 만든 보습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철기 시대 유물은 12세기에서 11세기로 넘어갈 때 4배, 10세기로 넘어갈 때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사울 시대를 기점으로 이스라엘도 청동기에서 철기 문화로 발달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을 통해 입증됩니다.

렘브란트의 '사울과 다윗'. 그림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사울에 대한 평가

사울은 처음에 왕(히브리어 '멜렉')이 아니라 지도자(영도자, 히브리어 '나기드')라고 불립니다(삼상 9:16; 10:1). 다윗이나 솔로몬과 달리 사울은 이스라엘 부족 구조를 중앙집권 체제로 바꾸지 않고, 세금을 부과하거나 상비군을 두지도 않고 왕궁도 건설하지 않습니다. 그가 거느린 군사는 약간의 무리였을 뿐입니다(삼상 13:2; 14:52).

기브아에서 있었던 사울 통치 이야기를 보면,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울이 여호와에게 성실하고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울은 정치적 지도자인 왕이라기보다는 전쟁 사령관에 가까웠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다윗을 향한 질투와 시기로 처음의 성실한 신앙과 겸손을 잃게 됩니다.

사울에 대한 평가는 사무엘상 16장 14절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와 같이 비극적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을 왕으로 세운 왕조 시대가 결국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암시합니다.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관련 영상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z1m8oiI71OU
박태순 / 부천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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