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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포화 피해 온 난민들에게 희망 주는 마을
장안동 중고차 거리 희망의마을센터…복지 사각지대 난민에게 한국어 교육, 의료·법률 지원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19.06.13 16:27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6번 출구를 걸어 나오면 낡은 건물들 뒤로 넓은 대지가 눈에 들어온다. 40년 역사를 지닌 장안평 중고차 시장이다. 중랑천을 끼고 있는 이곳은 옛날부터 땅이 평평하고 넓어 장안벌 혹은 장한벌로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군마 방목장이자 기마 훈련장으로 쓰였지만 세월과 함께 모습도 달라졌다. 장한벌을 달리던 말은 이제 사라지고, 자동차가 대신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중동은 국내 중고차 시장계에서 큰손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중고차 수출 상위 5개국 중 2곳이 아랍 국가다(1위 리비아, 5위 요르단). 한국 차는 유럽·일본 차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도 좋아 중동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한국 중고차 매매를 담당하던 중동 상인들은 1990년대부터 장한평에 정착했다.

시리아 내전이 본격화한 2011년. 장한평에 중개상과 연고가 있는 시리아 난민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동차 혹은 부품을 중개하거나 전국에 있는 폐차장에서 부품을 떼 오는 일을 한다. 중동 상인과 난민들이 늘어나면서 오늘날 장한평과 답십리 일대는 이슬람 타운으로 변했다. 거리에는 한국어와 아랍어를 병기한 상가들이 들어섰고, 이슬람 예배당과 할랄 음식점도 생겼다.

시리아 난민은 대부분 인도적 체류자 신분이다. 2018년 기준으로, 지금까지 난민 심사를 받은 시리아인 1153명 중 4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고, 1120명은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었다. 인도적 체류자는 정식 난민이 아니다. 한국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체류'뿐이다. 한국어 교육이나 법률 상담 혹은 의료 지원은 받을 수 없다. 기독교 난민 지원 단체 희망의마을센터(정연주 센터장)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2017년 문을 열었다.

아랍 난민들에게 '미스터 주'라고 불리는 정연주 센터장. 그는 30년 가까이 중동에서 선교사로 지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정연주 센터장, 중동서 30년 가까이 사역
2017년 희망의마을센터 개소
"난민들에게 주민센터 같은 곳"

희망의마을센터는 시리아를 포함한 아랍계 난민들에게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의사, 변호사가 의료 및 법률 상담을 지원한다. 센터는 법무부에서 지정한 이민자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한국 문화와 관습, 역사 등을 교육한다.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 있는 희망의마을센터를 6월 11일 방문했다. '중고차 상담', '각종 부품 매입' 등이라고 적힌 간판들 사이로 아랍어와 한국어가 함께 적힌 희망의마을센터 입간판이 보였다. 정연주 센터장은 "자동차 시장에서 일하는 아랍계 난민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난민 제도는 외국인 등록증 하나 주고 나면 끝이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포화를 피해 온 이들에게 기본적인 안내는 해야 하지 않나. 희망의마을센터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큰 갈등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의마을센터는 2017년 정식 개소했는데, 정연주 센터장은 그보다 앞서 비슷한 활동을 해 왔다. 정 센터장은 글로벌호프 소속 선교사로,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각각 11년, 16년 사역했다. 그의 전문 분야는 의료와 특수교육이다. 한국인 의사들과 함께 현지인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가끔 현지인을 한국 병원에 소개해 의료 연수도 받게 했다.

정 센터장은 2013년 이집트 의사와 함께 연수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매일 저녁 이주 노동자 지원 시설에서 의료봉사를 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 시리아 난민에게서 장한평 소식을 접했다. 시리아 내전 때문에 많은 난민이 모여들고 있는데, 이들을 위한 지원 시설이 아무것도 없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 센터장은 같은 해, 답십리에 있는 한 할랄 음식점을 빌려 의료·법률 상담소를 열었다. 마침 개인적인 사정으로 현지 사역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시점이었다. 이후 식당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정 센터장이 소속한 글로벌호프가 사역 취지를 이해하고 정식으로 지원했다. 사무실을 마련하고, 희망의마을센터라는 간판도 달았다.

"장한평 일대는 이미 아랍계 난민들로 하나의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동네에는 저마다 주민센터가 있지만, 난민들은 한국어가 서툴고 행정을 잘 몰라서 문턱이 높다. 희망의마을센터는 여러 지역을 떠돌던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비춰 주며 안내해 주는 주민센터 같은 곳이 되는 게 목표다."

사무실 안에는 두 개의 커다란 공간이 있다. 한 곳은 난민들이 한국어나 법 상식 등을 배우는 교육장이고, 다른 곳은 진료실이다. 교육은 매주 2회, 무료 진료는 매주 1회 진행한다. 정 센터장은 매번 서울과 경기 북부에서 70여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뿐 아니라 이집트·리비아·튀니지·예멘·모로코 등 다양한 국적의 난민이 찾아온다.

한국어 교육를 듣고 있는 모습. 표정이 밝다. 사진 제공 정연주

교육을 마치고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제공 정연주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중동 청년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산모·아동 위해 만나하우스 오픈
출산 정보, 한국어·아랍어 교육
아랍계 엄마들이 만드는 커뮤니티

희망의마을센터는 산모와 아동도 지원한다. 올해 초, 산모들이 아이들과 자유롭게 와서 지낼 수 있는 '만나하우스'를 마련했다. 산후조리원과 보육 시설 기능을 합친 곳이다. 이곳에서는 출산에 필요한 지식과 저렴한 비용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공공 의료원을 알려 준다. 아이들에게는 한국어와 아랍어를 가르친다. 정 센터장은 "난민들 중에는 어린 산모들이 많다. 이들에게는 임신 때 어떻게 몸을 가눠야 할지,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려 주는 이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혈혈단신 한국으로 넘어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산모들에게 희망의마을센터 주민들은 기꺼이 마을이 되어 준다. 올해 태어난 로미싸의 엄마는 예멘에서 온 10대 후반 여성이다. 정 센터장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몹시 불안하고 우울한 상태였다. 처음 임신을 경험했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려 주는 이가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이모는 8000km 떨어진 본국에 있었다.

정연주 센터장은 다른 엄마들이 산모의 친정엄마와 자매가 되어 줬다고 말했다. 희망의마을센터에서 알게 된 이집트·리비아·시리아 엄마들이 예멘 산모의 사정을 듣고 도움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저마다 음식을 싸 오고 아기 옷가지와 용품들을 가져다줬다. 초보 산모에게 젖을 물리는 법부터 아기 목욕시키는 방법 등을 가르쳐 줬다.

"엄마들이 그렇게 나설 줄 전혀 몰랐다. 다들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이의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던 거다. 한 엄마가 그러더라. 미스터 주가 우리를 도우니 우리도 돕는 거라고(미스터 주는 정연'주' 센터장 별명이다. 자존심이 센 중동 남성들이 여성에게 도움을 받는 걸 인정하기 싫어 미스터라고 불렀던 게 이제는 애칭이 되었다. – 기자 주). 난민들은 절대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올해 초에 태어난 로미싸.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사진 제공 정연주

희망의마을센터는 모국어도 중요하다며 한국어와 함께 아랍어를 교육한다. 사진 제공 정연주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다. 피부색이나 언어 때문에 차별하지 않는다. 사이좋게 지낸다. 사진 제공 정연주

"적응 강요하는 건 또 다른 폭력
난민 위한 전인격적 지원 시급"

희망의마을센터가 난민들을 지원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안팎에서 부딪히는 왜곡된 시선과 차별이다. 정 센터장은 한국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의식과 제도는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난민들에게는 한국 사회가 낯설다. 언어도 다르고 음식부터 모든 게 익숙하지 않다. 이들에게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어서 빨리 한국 생활에 적응하라고 하는 건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목숨을 걸고 전쟁을 피해서 온 이들이다. 이들의 처지와 문화를 존중하며, 이민자 통합 프로그램 같은 것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교회가 난민을 단순히 전도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러 대형 교회와 대학생 선교 단체가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매해 희망의마을센터를 찾는다. 정 센터장은 일부 기독교인 자원봉사자가 전도를 목적으로 난민들에게 접근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난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내게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급한 건 전인격적 지원이다.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난민들도 이런 속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꾸 강요하면 영접했다고 거짓말할 수 있다. 가짜 난민, 가짜 영접을 만들어 내는 건 오히려 교회의 무례하고 무리한 선교 때문이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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