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6월 1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퀴어 문화 축제는 해마다 신기록을 갱신한다. 2000년 대학로에서 70여 명이 모여 시작한 것이 지난해에는 6만 명, 올해는 8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가 됐다.

각국 대사관, 인권 단체, 정당 등 다양한 부스가 마련됐다. 기독교인을 위한 부스도 있었다. 올해에는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성공회 교회들 부스와 로뎀나무그늘교회 부스가 자리를 잡았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성공회 나눔의집들과 길찾는교회, 나무공동체 등이 함께했다. 이들이 준비한 주요 프로그램은 '축복식'이었다.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하고 위로했다. 나눔의집협의회 오상운 원장은 "성소수자들은 외부에서 혐오 발언을 많이 듣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라는 걸 알려 주고 싶어서 기획했다. 그리스도인들이 혐오와 차별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뎀나무그늘교회는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사진 틀을 만들었고, 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을 축복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실제로 기독교인들이 부스를 많이 찾았다. 현직 목회자 자녀인 한 성소수자는 아직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목사인 아버지가 툭하면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은 다니는 교회에서 세례받을 때 커밍아웃을 했다가 세례를 못 받았다고 했다. 목사의 동성애 혐오 설교를 지속적으로 들으며 괴로워하는 성소수자도 있었다. 교회에서 상처받는 존재들을 위한 축복 기도가 이어졌다.

"무지개빛 사랑이신 하느님, 이 시간 당신의 사랑과 은총에 기대어 축복하오니, OOO 님의 손을 붙드시고, 그가 당신을 찾을 때마다 홀로 두지 마시고, 당신의 천사를 보내 주소서.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의 삶에 어둠이 다가올 때마다 끝내 이겨 내어 찬란하고 멋진 날들을 살게 하소서."

퀴어 퍼레이드 행렬의 앞줄은 목회자들이 채웠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무지개예수'는 부스를 세우지 않았다. 대신 퀴어 문화 축제의 꽃으로 불리는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올해 퍼레이드 코스는 역대 최장 길이인 4.5km였다. 서울광장을 출발해 소공동, 을지로입구, 종로, 광화문을 돌아 다시 종로, 을지로입구를 거쳐 서울광장까지 오는 코스다.

무지개예수는 트럭을 타고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목회자들은 트럭 바로 앞에 섰고, 각종 깃발과 휘장을 든 행렬이 뒤를 따랐다. 기존 찬양을 개사한 '퀴어 주의 친구', '퀴어 사랑하심은', '나는 퀴어 열차' 등을 불렀다. 빠른 비트의 노래를 부를 때는 찬양 집회를 방불케 했다.

민중 엔터테이너 야마가타 트윅스터도 트럭에 올랐다. 사람들은 찬양 한 곡 한 곡이 나올 때마다 환호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올해도 퍼레이드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다만, 지난해처럼 수십 명이 단체로 팔짱을 끼고 드러눕는 일은 없었다. 개인이 트럭 앞에 눕거나 무릎을 꿇는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경찰이 달려들어 떼어 냈다. 지나가는 시민은 퍼레이드에 호응했다. 무지개예수 트럭을 보고 사진을 찍거나,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올해도 트럭 앞을 막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최장 코스, 최다 참석자 기록을 세운 이번 퍼레이드의 행렬은 약 1km였다. DJ진호, 가수 류아가 '춤추는 세대', '춤추며 찬양해', '예수 나의 첫사랑 되시네' 등을 EDM(Electronic Dance Music) 스타일로 바꿔 불렀다.

현장에서 만난 성소수자들은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20대 기독교인인 한 성소수자는 퍼레이드 도중 아는 찬양이 나와서 깜짝 놀랐고, 이를 계기로 끝까지 걸었다고 했다. 그는 "평소 교회에서 (존재를) 숨겨야 했는데, 오늘 이렇게 내 존재를 드러내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처음이다"고 말했다.

20대 게이 남성은 찬양을 부르면서 이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교회만 가면 위축됐다.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늘 많은 사람과 함께 찬양하면서 하나님은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는 분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