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경교유행중국비' 상부 이수. 가운데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당대 경교 역사의 상당 부분은 앞서 언급한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비문에 의존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이 비문이 다른 지역 중요한 비문들(로제타, 베히스툰 등)처럼 이(다)중어 비문이었다면, 우리가 다루게 될 문제의 상당 부분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었을 것이다. 비문의 측면側面 등에서 언급된 시리아어들은 비문 제작 시기나 제작 자체 및 제작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둘째로 중국어 표현이 좀 더 구체적이었다면, 나머지 문제도 해결되었을 것이다. 셋째로 이 역사 서술을 보충해 줄 만한 다른 역사적 사료가 풍부했다면 지금까지 여러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선 글에서 내내 강조한 것처럼 직접적인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당대 경교에 대한 부정확한 해석과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점에서 필자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중국 당대를 다루는 역사책들(<구당서>, <신당서>, <당회요>, <자치통감> 등)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와 목적으로 기록된 사료들과 불교 자료들을 비교 분석해 좀 더 포괄적이고 검증 혹은 추론이 가능한 역사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제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내용을 선별적으로 인용하면서 필자가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통해 당대 경교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 논의를 진행해 보자.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大秦 景敎 流行 中國 碑

大秦寺 僧 景淨 述

粤若。常然眞寂。先先而无元。窅然靈虛。後後而妙有。總玄樞而造化。妙衆聖以元尊者。其唯我三一妙身。无元眞主阿羅訶歟。判十字以定四方。鼓元風而生二氣。暗空易而天地開。日月運而晝夜作。匠成萬物。然立初人。別賜良和。令鎮化海。渾元之性。虛而不盈。素蕩之心。本無希嗜。洎乎娑殫施妄。鈿飾純精。閒平大於此是之中。隟冥同于彼非之內。是以三百六十五種。肩隨結轍。竸織法羅。或指物以託宗。或空有以淪二。或禱祀以邀福。或伐善以矯人。智慮營營。恩情伇伇。茫然無得。煎迫轉燒。積昧亡途。久迷休復。于是我三一分身。景尊彌施訶。戢隱眞威。同人出代。神天宣慶。室女誕聖于大秦。景宿告祥。波斯覩耀以來貢。圓廿四聖有說之舊法。理家國于大猷。設三一淨風無言之新教。陶良用于正信。制八境之度。鍊塵成眞。啟三常之門。開生滅死。懸景日以破暗府。魔妄于是乎悉摧。棹慈航以登明宮。含靈于是乎旣濟。能事斯畢。亭午昇眞。經留廿七部。張元化以發靈關。法浴水風。滌浮華而潔虛白。印持十字。融四炤以合無抅。擊木震仁惠之音。東禮趣生榮之路。存鬚所以有外行。削頂所以無內情。不畜臧獲。均貴賤于人。不聚貨財。示罄遺于我。齋以伏識而成。戒以靜愼為固。七時禮讚。大庇存亡。七日一薦。洗心反素。眞常之道。妙而難名。功用昭彰。强稱景教。惟道非聖不弘。聖非道不大。道聖符契。天下文明。太宗文皇帝。光華啟運。明聖臨人。

大秦國 有上德。曰 阿羅本。占青雲而載眞經。望風律以馳艱險。貞觀 九祀。至于 長安。帝 使宰臣 房公玄齡。總仗 西郊。賓迎 入內。翻經 書殿。問道禁闈。深知正眞。特令傳授。貞觀 十有二年。秋七月。詔曰。

道無常名。聖無常體。隨方設教。密濟羣生。大秦國 大德 阿羅本。遠將經像。來獻上京。詳其教旨。玄妙無為。觀其元宗。生成立要。詞無繁說。理有忘筌。濟物利人。宜行天下所司。

即于京 義寕坊。造 大秦寺 一所。度僧廿一人。宗周德喪。青駕西昇。巨唐道光。景風東扇。旋令有司。將帝寫眞。轉摸寺壁。天姿汎彩。英朗景門。聖迹騰祥。永輝法界。

案西域圖記。及漢魏史筞。大秦國 南統珊瑚之海。北極衆寶之山。西望仙境花林。東接長風弱水。其土出火綄布。返魂香。明月珠。夜光璧。俗無祲盜。人有樂康。法非景不行。主非德不立。土宇廣闊。文物昌明。

高宗大帝。克恭纘祖。潤色眞宗。而于諸州。各置 景寺。仍崇 阿羅本為鎮國大法主。法流十道。國富元休。寺滿百城。家殷景福。聖厯年。釋子用壯。騰口於東周。先天末。下士大笑。訕謗于西鎬。有若僧首羅含。大德及烈。並金方貴緒。物外高僧。共振玄綱。俱維絕紐。玄宗至道皇帝。令寕國等五王。親臨福宇。建立壇塲。法棟暫撓而更崇。道石時傾而復正。天寶初。令大將軍 高力士。送五聖寫眞。寺內安置。賜絹百匹。奉慶睿圖。龍髯雖遠。弓劍可攀。日角舒光。天顏咫尺。三載。大秦國 有僧佶和瞻星向化。望日朝尊。詔僧羅含。僧普論等。一七人。與大德佶和。于興慶宮修功德。于是天題寺牓額戴龍書。寶裝璀翠。灼爍丹霞。睿扎宏空。騰凌激日。寵賚比南山峻極。沛澤與東海齊深。道無不可。所可可名。聖無不作。所作可述。肅宗文明皇帝。於靈武等五郡。重立景寺。元善資而福祚開。大慶臨而皇業建。代宗文武皇帝。恢張聖運。從事無為。每于降誕之辰。錫天香以告成功。頒御饌以光景衆。且乾以美利。故能廣生。聖以體元。故能亭毒。

我建中聖神文武皇帝。披八政以黜陟幽明。闡九疇以唯新景命。化通玄理。祝無愧心。至于方大而虛。專靜而恕。廣慈救衆苦。善貸被羣生者。我修行之大猷。汲引之階漸也。若使風雨時。天下靜。人能理。物能清。存能昌。沒能樂。念生響應。情發自誠者。我景力能事之功用也。

大施主金紫光祿大夫。同朔方節度副使。試殿中監。賜紫袈裟僧伊斯。和而好惠。聞道勤行。遠自王舍之城。聿來中夏。術高三代。藝博十全。始効節于丹庭。乃筞名于王帳。中書令汾陽郡王。郭公子儀。初總戎于朔方也。肅宗俾之從邁。雖見親于臥內。不自異于行閒。為公爪牙。作軍耳目。能散祿賜。不積于家。獻臨恩之頗黎。布辭憩之金罽。或仍其舊寺。或重廣法堂。崇飾廊宇。如翬斯飛。更効景門。依仁施利。每歲集四寺僧徒。虔事精供。僃諸五旬。餒者來而飰之。寒者來而衣之。病者療而起之。死者塟而安之。清節達娑。未聞斯美。白衣景士。

今見其人。願刻洪碑。以揚休烈。

詞曰眞主无元。湛寂常然。權輿匠化。起地立天。分身出代。救度無邊。日昇暗滅。咸證眞玄。

赫赫文皇。道冠前王。乘時撥亂。乾廓坤張。明明景教。言歸我唐。翻經建寺。存歿舟航。百福偕作。萬邦之康。高宗纂祖。更築精宇。和宮敞朗。遍滿中土。眞道宣明。式封法主。人有樂康。物無灾苦。玄宗啟聖。克修眞正。御牓揚輝。天書蔚映。皇圖璀璨。率土高敬。庶績咸熙。人賴其慶。肅宗來復。天威引駕。聖日舒晶。祥風掃夜。祚歸皇室。祅氛永謝。止沸定塵。造我區夏。代宗孝義。德合天地。開貸生成。物資美利。香以報功。仁以作施。暘谷來威。月窟畢萃。建中統極。聿修明德。武肅四溟。文清萬域。燭臨人隱。鏡觀物色。六合昭蘇。百蠻取則。道惟廣兮應惟密。强名言兮演三一。主能作兮臣能述。建豐碑兮頌元吉。

大唐 建中 二年 歲在作噩太簇月 七日 大耀森文日 建立 時 法主僧寕恕知東方之景衆也

朝議郎前行台州司士叅軍 呂秀巖 書

1. 대진국大秦國의 대덕大德이라 불리는
아라본阿羅本은 누구인가

당대 문헌의 대진국은 어디였을까. 당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돌궐(투르크)을 지난 서역西域의 확대된 지역들에 현재의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지역을 차지했던 비잔틴제국, 페르시아제국, 그리고 신흥 아랍제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이라는 말은 국이라는 말의 동의어로, 중국 사방 나라(영역)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서역, 동역, 남역 등).

문제는 중국에 들어온 경교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로마교회도 비잔틴을 중심으로 한 교회도, 심지어 페르시아제국에서 유래한 교회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이와 관련한 갈등의 역사는 4회 차 기고문 참조). 그 점에서 이들이 사용했던 '대진'이라는 표현은 중국 입장에서 동쪽 끝(서쪽 바다 접경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며(Li Tang 2002:84), 당시에 사람들이 그들을 대진인이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대진(+국)이라는 말은 '경교도의 나라'라는 의미로도 사용된 것 같다.

대덕이라는 칭호는 당나라 때 최초로 사용된 승려 직분이다. "지혜와 덕망이 높은 승려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현장 법사가 불경을 번역하던 곳에 참여한 승려들을 대덕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초창기 대덕들은 (후대에 붙여진 존칭이라고 해도) 불경 번역과 관련된 전문 담당자들을 의미했던 것 같다.

아라본의 정확한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고대나 현대 중국어의 외국어 표기 방법론은 그 나름의 음차音叉와 표의表意의 혼용, 적당한 생략이라는 '문제점' 때문에 원발음이나 이름을 재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악명惡名 높다. 그래서 아라본의 원이름 혹은 발음에 대한 추측이 다양할 뿐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혹자는 라반(Lord)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아라본이 '야발라하[Yaballaha]'/'아브라함' 혹은 '알로호 푸노야'(하나님의 돌이키심, aloho punoya)을 당시 관습에 따라 음역한 말이라는 설이 지지를 받고 있다(자세한 논의는 Journal of Asian History 2002:193 참조). 현대 중국어는 아브라함을 다르게 읽는다(亚伯拉罕 혹은 亚巴郎).

2. 선교사 일행의 장안 도착과 이후 일들

당 이전도 마찬가지지만, 당대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다양한 목적으로 중국을 출입했다. 즉, 상업, 외교사절, 학술 혹은 전도를 목적으로 출입했고, 대단위 규모로는 전쟁이 가장 큰 원인을 차지했다. 우리가 살피려는 선교사 방문은 그 유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주로 인도에서는 불교승들이 (인도)불교를 전하려고 찾아왔다.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기독교뿐 아니라, 토착 종교들이었던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선교사들이 찾아왔으며, 그 후에는 이슬람 선교사들도 찾았다. 이들은 대부분 상인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상인들도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했으나, 실제 의미에서 전문 전파자(선교사)들도 있었다. 물론 당에 국내외로 출입했던 종교인들은 주로 불교 진영에 많았다. 인도로 불경을 찾아 떠났던 구법승求法僧이나, 중국으로 불교나 불경을 배우러 왔던 한반도와 일본의 구법승이 있었다. 반대로 인도나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중국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이방 승려들도 있었다. 중국에 온 승려들은 주로 불경을 번역하고 전하는 데 전념했다.

우리 여행 가운데 본격적인 여행은 선교사 일행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카라반들이 중국 국경 관문에 도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선교사들과 카라반들은 중국 국경관리들에게 심문을 받고, 이들의 대우와 입국과 관련해 황제에게 중대한 윤허를 받을 때까지를 기다려야 한다. 황궁 관료들은 페르시아에서 온 선교사 일행을 어떤 등급으로 받아들여 종교 전파를 허용할지 판단한다. 즉 입국을 거부할지, 관련자(외국인 상인들이나 이민자들)들에게만 허용할지, 전국에 전교를 허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바우머 2016:327).

특히 이것은 기본적으로 당의 중서성中書省 내 조견인납朝見引納(사대교린 문제를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일)을 담당하던 통사사인通事舍人의 판단과 결정에 따랐을 것이다. 물론 "황제가 재상 방현령으로 하여금 의장대와 함께總仗[이 부분은 해석자들마다 다른 해석을 내린다] 서교에서 손님들을 맞아 장안성 내로 들어오게 하였다"(帝 使宰臣 房公玄齡。總仗 西郊 賓迎 入內)고 언급하는 경교 비문을 보면, 서역에서 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황제로부터 최고의 예우와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은 페르시아제국의 외교사절이 아니라 종교 사절로는 매우 특별한 취급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융숭한 영접과 대우 배후에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재상 방현령이 선교사 일행을 맞이 했다는 서교西郊는 장안 성 밖의 지역을 의미하는 동서남북의 교외郊外 가운데 "서쪽 지역"을 의미한다(각 교외마다 중요한 국가 의례가 매년 거행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이 '서교'를 장안 성 밖 서쪽 지역이라고 번역했는데, 이와 같이 일반명사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다. 수도의 장안 성 밖 서쪽 지역西郊은, 옛날 중국이나 한반도에 있는 나라들의 경우 정부 관료가 공적으로 성 밖으로 나가서 외교사절을 맞이하는 지역이었다. 그곳에는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외교사절 등이 임시로 머무는 거처 루나 방 혹은 관이 존재했다.

외국에서 귀빈이 도착하면, 이들을 5등급으로 나누어 차등 대접했다고 한다(大唐開元禮 참조. 영접에서 알현과 주연酒宴 등의 절차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세자나 고위직 관료가 직접 나가 영접하는 다채로운 의식郊迎儀을 수행하고, 앞서 말한 장소에서 쉬었다가(당연히 중국 국경에서 수도까지 먼 길을 여행했으니) 장안의 주요 성문(아마도 서문金光門)을 통해 들어갔을 것이다. 이 노선은 장안을 서와 동을 관통하는 도로로, 서시西市를 지나 황궁 주작문을 통과하면 승천문가承天門街 왼쪽에 홍려시鴻臚寺(외국에서 온 공식 방문객들을 영접하고 관리하며 배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에 이른다(다쓰히코 2006:137).

홍려시 구획안에 서쪽으로 홍려객관鴻臚客館(외국 손님들이 머무는 숙소)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서대문이 아니라, 서남쪽에 있는 숭례문南大門을 통해 들어왔다. 이미 국경뿐만 아니라, 황성으로 이르는 여러 지역을 통과하면서 이들과 관련해 여러 번의 조사와 보고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황성에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황제를 공식적으로 알현하려면 길일을 택해야 하고, 많은 다양한 절차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계속)

당나라 수도 장안의 지도. 출전 https://namu.wiki/w/%EC%8B%9C%EC%95%88%EC%8B%9C.

참고 자료

KAHAR BARAT, "ALUOBEN, A NESTORIAN MISSIONARY IN 7 TH CENTURY CHINA," Journal of Asian History Vol. 36, No. 2 (2002), pp. 184-198.
세오 다쓰히코, 『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 최재영 역 (서울: 황금가지, 2006).
크리스토프 바우머, 『실크로드 기독교: 동방교회의 역사』, 안경덕 역 (서울: 일조각, 2016).
교영의 항목, 박미애, "고려-송-거란 빈례에서의 차의례에 관한 소고," 『한국예다학』창간호 (2015): 79-88.
대덕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4184
서교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7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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