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앤조이>에 실린 앳된 두 신학생 사진이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진압군에게 사망한 호남신대 문용동과 한신대 류동운이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5월 1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사회봉사부 사회문제위원회(임한섭 위원장) 주최로 열린 포럼 '5·18과 한국교회 그리고 신학도들'을 보도했습니다. 포럼에서 임한섭 위원장은 "5·18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통렬히 반성하고, 두 신학도의 행적을 통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고 김남주 시인은 "학살의 원흉이 지금 옥좌에 앉아 있다"고 절규했습니다. 많은 무고한 시민이 공권력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지 40년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학살 책임자 등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광주 항쟁을 폄하하는 극우 인사들의 망언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당사자와 목격자가 박정희 독재 권력에 의해 조작되어 신성화한 국가주의의 은밀한 지배 논리에 사로잡혀 침묵하는 까닭에, 학살의 진상을 밝히기가 힘든 것입니다.

한림대 한림과학원에서 펴낸 <개념과소통 20호>(2017년)에서 서강대 강정인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에서 박정희의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와 강고하게 결합한 국가민족주의라고 규정하고, 유신헌법 제정을 통해 그가 영도자 지위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하게 제도화했다고 분석합니다. 여기에 국가 주도적 경제 발전을 꾀하는 경제적 국가주의, 반공과 국가 안보를 이용하고 자주국방을 강조한 대외적 국가주의를 결합하는 것으로, 박정희는 국가주의를 전방위적으로 이용해서 시민사회의 순응성을 확보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고 주장합니다. 강 교수는 광주 항쟁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정권의 출범은 격렬한 민주화 투쟁을 촉발하게 해 결과적으로 국가주의를 약화하는 전환점이 됐다고 주장하지만, 각인된 국가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되어 반공적인 민족적 국가주의를 확립하는 시대에 어린 학생들이 이에 맞선 사건이 일어납니다. 1949년 3월, 파주 봉일천초등학교 학생 36명이 태극기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거부해 퇴학 처분을 받습니다. 학생들은 대원교회 주일학교에서 배운 대로 십계명 제2계명("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을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교회는 감시를 받았고, 최중해 담임목사도 경찰서에서 고초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이 사건이 매스컴 주목을 받자, 부통령 이시형 장로를 주축으로 국무회의를 열어,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국기에 주목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대원교회는 교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십계명 신앙비'를 세웠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아카데미가 2018년 11월 10일 주관한 경기도 고양·파주 지역 기독교 유적지 답사 때 이 신앙비를 눈여겨봤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최초의 교회인 대원교회는 1901년 주민 6명이 서울로 오가며 장사하던 중 복음을 접하고 예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1904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며 신자가 50여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지금도 언더우드가 세운 새문안교회와 서교동교회 등 20여 교회가 형제 교회로 교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원교회를 방문한 날은 하늘과 햇살이 눈부신 늦가을 오후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미국 공병대가 건축한 흔적이 남아 있는 예배당은 아담했습니다. 권력이 주도하는 국가주의에 대한 분별력이 약한 오늘날 한국교회는 십계명을 지키느라 퇴학까지 감수했던 초등학생들의 행동하는 신앙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파주 대원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국가주의를 이용한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 보수 교계 지도자들의 권력 유착은 심각했습니다. 1969년 9월 4일 한경직·조용기·김준곤·김장환 목사 등 기독교 지도자 242명은 '대한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고 '3선 개헌 지지와 양심 자유 선언을 위한 기독교 성직자 일동'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해 "강력한 영도력을 지닌 지도 체제를 바란다"고 천명했습니다. 민중 선교와 민주화 운동의 사회 선교를 반성경적이고 급진적이라고 성토하며, 정교분리를 주장하던 이들이었습니다. 특히 CCC(한국대학생선교회)를 세운 김준곤 목사는 군사독재 정권을 비호하는 데 앞장서서, 그 대가로 정동 러시아대사관 부지 일부를 하사받았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김준곤 목사는 1968년 5월 1일 대표적인 정교 유착 사례 '대통령조찬기도회'(1976년 '국가조찬기도회'로 개명)를 시작했고, 제2회(1969년)에는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명명하고, '군사혁명'은 하나님이 성공시켰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미화했습니다. 제3회 조찬기도회(1970년)에서는 "하나님이 세운 강력한 영도자가 정치력을 가지고 민족의 체질을 혁명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다고 설교했으며, 유신 체제 후 처음 열린 제6회 대통령조찬기도회(1973년)에서 10월 유신을 정신 혁명이라고 찬양하며,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1980년 8월 6일, 한경직·김준곤·정진경 목사 등은 광주 항쟁을 짓밟고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으며, 학살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추앙했습니다. 제가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총무로 일하던 1992년, 이 조찬 기도회에 참석했던 이들에게 이 기도회에 대한 사과 여부를 서면으로 질의했습니다. 이에 아현교회 김지길 목사와 성민교회 신현균 목사만 사과했습니다.

독재 권력과 야합한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 성경 구절은 로마서 13장 1절("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것입니다")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쓴 시대 상황이나 바울 사도의 의도는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력 추종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사용했습니다. 오늘날도 마태복음 22장 21절("그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라'")을 입맛에 맞는 정교분리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7년 크리스챤아카데미가 주관한 '지성적 신앙과 일상의 성화' 주제로 다룬 평신도 포럼에서 좌장이었던 미국 칼빈신학대 강영안 교수님은 최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는 말씀을 풀이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강 교수님은 "예수님의 왕권은 정치와 무관하다거나 이 세상은 예수님의 왕권 밖의 치외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영역이되, 예수님의 왕권, 예수님의 정치 방식은 세상 방식과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라며, 세금 문제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 통치권을 인정하지만,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게 마땅하다고 가르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강 교수님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얻는 승리로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받은 은혜로 세상에 들어가, 각각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썩고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일에 동역하기 위해 세상의 삶의 방식을 전복하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테두리를 넘어 삶의 환경을 돌아보고, 이웃의 억울함과 고통을 돌아보고 헌신하는 사람이 되자고 권면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서 강의하는 최종원 교수가 저서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초월한 공동체>(홍성사)에서 밝힌 입장은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국가주의는 유한하다. 신이 부여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에 맞서 순교를 택한 것이 기독교였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국가권력보다 더 지고한 가치였기 때문이다." (253쪽)

한국교회는 이집트의 국가주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신 하나님의 뜻을 새기고, 시대의 예언자로서, 인간을 종속하는 국가주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원교회에서 순수한 신앙심으로 퇴학을 자초한 선진들의 기개와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군부 정권에 맞서 산화한 두 신학도 문용동과 류동운의 저항적 영성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