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재작년 12월 개봉한 영화 '1987'은 6월 민주 항쟁을 그린 작품이다. 시민 수백만 명이 거리에서 '호헌 철폐'를 외치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같은 공간에서 촛불을 들며 대통령 탄핵을 외쳤던 순간이 오버랩됐다. 한국 현대사는 투쟁으로 인권을 되찾아 온 역사다.

민주 항쟁 이후 광장은 다양한 목소리로 채워졌다. 여성·장애인·노동자·농민에 이어 고등학생까지 거리로 나와 '인권'을 외쳤다. '독재 타도'라는 외침이 30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목소리로 분화한 건, 거시 담론에 가려 있던 소수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인권과 인권들>(그린비) 저자 정정훈 연구원(서교인문사회연구실)은 "지식인들 중심으로 전개된 국내 인권 운동이 1990년대 이후 당사자 중심으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이들이 사회운동에서 독자적 의제를 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청어람ARMC(양희송 대표)는 5월 24일 '억압과 차별에 저항한다, 어떻게? - 90년대 이후 한국 인권 운동 새겨보기, 그리고 기독교의 자리'를 주제로 월례 강좌를 열었다. 국내 인권 운동사를 세대론 관점으로 분석한 정정훈 연구원은, 한국 보수 개신교가 인권에 기여한 바가 전무하다고 혹평했다.

정정훈 연구원은 한국 보수 개신교가 인권에 기여한 바가 전무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1970년대 1세대 인권 운동
군부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
1990년대,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당사자들 직접 참여 시작

한국 사회에서 인권 단체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다. 1972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설립되고, 1974년 내국인이 만든 최초 인권 단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인권위원회가 발족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불교인권위원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정정훈 연구원은 1세대로 분류되는 1970~1980년대 인권 운동의 주요 의제는 '민주화'였다고 말했다. "당시 군사정권이 시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었다. 민주화 혹은 사회운동을 하다가 잡혀간 양심수들의 고문·의문사·실종 문제를 중심으로 인권 운동이 전개됐다."

군부독재가 무너진 후, 1990년대부터 국내 인권 운동은 전환을 맞는다. 권리를 박탈당한 당사자들이 직접 단체를 조직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3년 인권운동사랑방·다산인권상담실이 만들어지고, 1994년 성소수자 단체인 초동회·친구사이·끼리끼리가 발족했다. 1995년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네팔인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며 이주 노동자 처우 문제가 처음 공론화됐고, 1996년에는 장애인 인권침해와 시설 비리로 얼룩진 에바다복지원 사태가 발생했다.

정 연구원은 "1세대 주도 그룹이 종교인·교수·언론인 등 지식인 계층이었다면 2세대 주도 그룹은 당사자들이었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2세대 인권 단체들이 국제사회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인권 기준과 지적 토대를 마련하고, 오늘날 인권 운동을 주도하는 그룹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진보 복음주의 그룹도 인권 이슈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국내 인권사에서 보수 개신교의 자리
"에큐메니컬 교회만 조직적 기여,
복음주의·보수 개신교, 인권 이슈 침묵
2000년대부터는 '반인권' 행태"

정정훈 연구원은 40년의 국내 인권 운동사에서 보수 기독교가 차지하는 지분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인권사는 보수 개신교와 무관한 이야기다. 국내 인권 운동에 조직적으로 기여한 곳은 에큐메니컬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복음주의 그룹'도 이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 연구원은 "1980년대 진보 성향의 복음주의가 한국 기독교에 유입됐지만, 이들이 인권 운동에는 특별히 기여하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공명선거 운동 등에 참여하긴 했지만 활동이 저조했다. 1990년대부터 복음주의 그룹은 성장세를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인권 이슈에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인권 운동과 무관한 길을 걸어온 보수 개신교는 이제 앞장서 인권 증진을 가로막고 있다. 정정훈 연구원은, 2000년대 들어 보수 개신교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학생 인권조례 반대 운동을 벌이며 오히려 반인권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권리"를 의미한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정정훈 연구원은 기독교가 인권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인권 운동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긍정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인권을 인본주의로 간주한다. 마치 죄를 지은 인간이 자기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인권을 신본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여긴다. 이런 몰이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보수 개신교의 태도를 바꾸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개신교가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를 먼저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노동·구타·감금·성폭행 등 각종 인권유린이 발생한 형제복지원과 에바다복지원은 모두 기독교 기관이었다. 정 연구원은 한국교회가 인권 문제를 논하기 전, 과거 잘못했던 일들을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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