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성애 활동가들의 가짜 뉴스를 듣고 있자면, 이들은 '동성애'를 '동성 간 성관계'로, '동성애자'를 '동성 간 섹스 중독자'로 상정하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성소수자를 괴물로 묘사하며 두려워하고 경계할 뿐, 그들을 직접 만나 제대로 이야기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뉴스앤조이>는 6월 1일 열리는 제20회 퀴어 문화 축제에 앞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들은 가짜 뉴스로 점철된 상상 속 괴물이 아닌,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입니다. 특히 올해는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섣불리 성경 해석을 들이밀기 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교회가 그들의 신앙이, 인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말레이시아의 공식 종교는 이슬람. 전체 인구의 65%가 무슬림이다. 한때 영국에게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에는 남녀 간 성기 결합 외 성관계를 형사처벌하는 '소도미법'이 여전히 존재한다. 영국 본토, 인도, 홍콩 등지에서는 최근 이 법이 사라졌지만, 이슬람 영향 아래 있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최대 20년형에 처할 수 있는 근거 법률이 된다.

사문화한 '소도미법'을 폐지하라는 UN의 반복적인 권고에도 말레이시아는 꿈쩍하지 않는다. 전직·현직 총리 모두 동성애자는 절대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구의 9%만이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하는 곳. 이런 곳에서는 '살기 위해서'라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침묵을 지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당연한 일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다. 분 린 니요(Boon Lin Ngeo) 목사(49)는 말레이시아 사회에 커밍아웃한 1호 동성애자다. 2006년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했는데 2호, 3호는 없었다. 그는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힌 처음이자 마지막 공인公人이다.

니요 목사는 말레이시아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낸 첫 공인이다. 그는 현재 뉴욕 헌터칼리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MCC뉴욕 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목사로서 커밍아웃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게 아니다. 니요 목사는 목사가 되기 전에도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공인이었다.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말레이시아언론회가 주는 최고기자상을 비롯해 언론 관련 상을 수차례 받았다. 이미 언론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던 그였다.

니요 목사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화권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 인사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도 소수인 중국계다. 중국어가 모국어이기도 한 그는 중국 본토,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강연하러 다닌다. 중화권 기독교인, 특히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게이 목사'로서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긍정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지 전하고 있다.

"기뻐하는 대만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니요 목사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인 5월 17일 대만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대만의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과 동성 결혼이 합법화하는 순간을 함께했다. 이후 한국에 들어와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 주일예배에서 설교하고, 한국 LGBT 운동을 이끄는 활동가들을 만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니요 목사를 5월 2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교회가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 그렇기에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더 숨어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동성애자,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동안 <뉴스앤조이>가 만난 성소수자는 대부분 자기부정의 시간을 거쳐 스스로를 긍정하게 됐다고 했다. 니요 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니요 목사는 이미 4~5세 때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르다는 것만 알았지 그게 '동성애'인지는 몰랐다고 했다.

"내가 멋진 남성들을 동경하고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알았지만, 동시에 이 감정을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다른 이에게 밝히면 안 되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이 나의 이 감정을 알게 하면 안 된다고 직감했다."

니요 목사가 나고 자란 말레이시아에서는 동성애가 허용될 수 없었다. 허용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런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린 니요가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는 "세상에 동성애자라는 건 없다. 동성과 성관계하는 나쁜 이성애자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성애자를 창조하시는 분이지, 동성애자는 창조하시지 않는 분"이라고 설교했다.

하나님은 실수로 니요 목사를 창조하신 것일까. 남성에게 끌리는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으며 울면서 기도하고 금식했다. 하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여성을 만났다. 그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천사를 보내신 줄 알았다. 서로를 알아 갈 무렵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변화하고 싶다. 당신이 나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여성도 흔쾌히 동의했다.

결혼이 지속됐다면 지금의 니요 목사는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9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에 합의했다. 결혼하면 바뀔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아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오히려 떠날 수 있게 놓아주는 게 맞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소울 메이트처럼 지냈던 아내는 지금도 니요 목사의 '베스트 프렌드'다.

한국을 찾은 니요 목사는 섬돌향린교회 5월 19일 주일예배에 참석해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다른 사람을 위해 커밍아웃하다

니요 목사는 30살이 되어서야 자신을 긍정하게 됐다. 긍정이 바로 커밍아웃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공인이긴 했지만, 미국에서는 그저 아시아인 동성애자에 불과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바꿔 놓은 것은 뉴욕의 한 교회에서 받은 '환대 경험'이었다.

"이혼한 뒤 학업을 위해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때 처음으로 LGBT도 그대로 긍정하는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 나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형제자매들에게 거짓말할 필요도, 숨을 이유도 없었다. 꼭 집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 준 그 경험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니요 목사는 2006년 자신의 인생 여정을 기술한 책을 말레이시아에서 출간했다. 숨기고 살 수도 있었고, 그렇게 해야 안전했다. 하지만 어린 니요가 떠올랐다. 그는 "내가 10대일 때 누군가 나서서 '나도 게이야. 두려워하지 마'라고 이야기해 줬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젊은 세대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말레이시아에서 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서 그의 가족들, 친구들도 모두 니요 목사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됐다. 어머니도 '동성애자'라는 말을 처음 듣고 처음에는 힘들어했다. 하지만 니요는 커밍아웃 전에도 후에도 그대로 '아들 니요'였다. 떠나간 친구도 있었지만, 니요 목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니요 목사는 커밍아웃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더 알게 됐다고 했다. 많은 10대 LGBT가 자신이 괴물인 줄 알고, 혼자만 그런 줄 알고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커밍아웃이 이슈화한 뒤 어떤 사람이 니요 목사의 어머니를 찾아와 "사실 내 아들도 게이"라고 이야기하는 일도 있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 기독교다. 그래서라도 목사인 내가 커밍아웃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천편일률적으로 반동성애를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 성경이 동성애자들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고 싶었다.

커밍아웃은 '가시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성애자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중요하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진짜 눈앞에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보스턴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한국에서 온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커밍아웃했더니 너무 충격을 받더라. 한 번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래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편이다."

목사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더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11살 때 목사가 되라고 부르신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니요 목사는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이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보살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커밍아웃 같은 미친 짓을 하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니요 목사는 "한국교회가 동성애자를 사랑해서 반대한다"면 자신을 초청해 이야기를 먼저 들어 봐 달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사랑해서 반대한다"는 한국교회,
나를 초대하라

한국 상황을 놓고 대화할 때는 꽤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얼마 전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 징계 무효 소송을 담당하는 판사는 "동성애에 반대하고, 동성애자 혐오에도 반대한다"는 교단의 입장이 무슨 뜻인지 알려 달라고 학교 측에 주문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같은 말과 같은 맥락인데, 이 말이 모순이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니요 목사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는 개신교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난센스"(nonsense)라고 딱 잘라 답했다. 그는 겉으로는 그렇게 포장하겠지만, 결국 답을 정해 놓고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교회에 나를 초대해 달라고 도전하고 싶다. 동성애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 삶을 먼저 들어 봐 달라.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가. 내 말에 동의하지 않고 비판해도 괜찮다. 하지만 판단하려면 먼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 의견대로 판단하고 확정하고 싶은 것이지, 사랑하는 게 아니다."

성경 해석을 독점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소위 말하는 동성애 정죄 구절을 놓고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한 가지 해석만 강요하는 건 독재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니요 목사는 "조금 더 이성적으로 논쟁을 해야지, 왜 한가지 답만 정해 놓고 따르라고 하는가. 독재자들만 그렇게 한다. 우리 하나님이 독재자인가"라고 되물었다.

니요 목사는 기독교인 정체성과 성소수자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커밍아웃을 주저하는 이들을 향해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조언했다.

"다른 사람으로 살지 말라.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오직 하나뿐인 그 창조물로 살아가자. 게이로 사는 것, 커밍아웃하는 것, 다 힘든 일이다. 대가도 크다. 하지만 우리는 소수고, 하나님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창조하셨다면 분명 당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을 것이다. 그 힘은 분명히 당신 안에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다. 주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은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역사도 교회도 계속 변화했다. 변화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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