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점심시간이 되자 6~7명이 한꺼번에 가게로 들어왔다. 손님은 대부분 근처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장인과 가게가 있는 상가 오피스텔에서 온 입주민이다. 메뉴는 텔러·되너·또띠아 케밥. 세트로 주문하면 튀긴 감자와 음료가 나온다. 홍주민 목사가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자, 주방에 있는 압둘람(23)의 손이 바빠졌다.

압둘람은 케밥 머신을 이용해 능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잘라 냈다. 얇게 썰린 고기를 양배추·당근·양파·토마토 등과 함께 빵에 담았다. 홍 목사는 쟁반에 케밥과 음료수를 담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은박지에 쌓인 케밥은 따뜻하고 묵직했다. 한입 베어 물자 알싸한 향과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옆 테이블에 있는 남성들은 유럽·중동에서 느낀 맛이 그대로 난다며 케밥을 남김없이 해치웠다.

수원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YD케밥하우스는 5월 16일 개업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예멘 난민들을 돕고 있는 홍주민 목사가 한국디아코니아협동조합(김상기 이사장)과 함께 가게를 열었다. YD는 'Yemen Diakonia'를 줄인 말로, '예멘인을 섬긴다'는 뜻이다. 홍 목사는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압둘람을 고용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디아코니아학을 공부한 홍주민 목사는 사단법인 한국디아코니아를 설립해 평소 목회자·신학생을 대상으로 디아코니아 신학을 가르쳐 왔다. 평생 교육과 연구에만 열중해 온 그가 어쩌다 수원역 인근 상가에서 케밥을 팔게 됐을까. 5월 21일 YD케밥하우스에서 홍 목사와 압둘람을 만났다.

압둘람(사진 왼쪽)과 홍주민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홍주민 목사는 난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전쟁이나 정치적 위협을 피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들이라고 개념만 알고 있었지, 직접 만나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 홍 목사가 난민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해 5월이다.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료 목사들과 함께 성금 500만 원을 모아 제주이주민센터를 방문했다.

직접 보고 들은 예멘 난민의 생활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예멘인들은 작은 방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고, 돈이 없어 매일 한 끼만 먹고 있었다. 수중에 있는 돈이 다 떨어져 노숙할 처지에 놓인 이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다섯 차례 제주를 방문하며 예멘인들과 관계를 맺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말, 예멘인 난민 자격 심사를 끝내고 출도 제한 조치를 해제했다. '인도적 체류' 자격을 받은 대다수 예멘인들은 육지로 올라와 직업을 구했다. 홍 목사는 예멘인의 생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다. 예상과 달리, 예멘인들은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임금 체불과 부당노동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홍 목사는 "지금까지 예멘인 40여 명의 취업을 도왔지만, 대부분 오래 일하지 못했다. 아무 이유 없이 임금을 안 주거나, 각종 명목으로 원천징수해 계약보다 돈을 적게 줬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16~17시간씩 중노동을 시키는 곳도 있었다. 국내 난민 제도가 부실해 이들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케밥하우스 모습. 오피스텔 입주민과 인근 직장인이 주 타깃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홍주민 목사는 예멘 난민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업종으로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창업 공모전을 알게 됐다. 입상하는 단체는 창업 자금 1000만 원을 지원받고, 중간 평가에 합격하면 추가로 40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홍 목사는 선·후배 목사들과 한국디아코니아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모전에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 그는 "대다수 예멘인이 말레이시아 레스토랑·카페·빵집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이들과 식당을 차리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창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난민을 돕는다는 말을 듣고 여러 곳에서 도움을 줬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전주안디옥교회(오성준 목사)는 바자회에서 얻은 수익금 3000만 원을 기부했다. 같은 교단 한 목사는 나중에 잘되면 갚으라며, 전셋집 보증금에서 3000만 원을 빼서 줬다. 평택 미군 기지 앞에서 케밥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선교사 부부는 고기 조리법과 가게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 줬다.

압둘람이 케밥을 만들고 있다. 말레이시아 레스토랑에서 2년간 요리했던 경험이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고객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되너 케밥. 뉴스앤조이 박요셉

현재 케밥하우스에서는 압둘람과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일하고 있다. 압둘람은 예멘 수도 사나에서 차로 4시간 떨어져 있는 앱(ibb) 출신이다. 3년 전, 반군이 도시를 점령하자 형들과 함께 외국으로 도망쳤다. 압둘람은 2년 동안 큰형과 함께 말레이시아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큰형은 비자를 받았는데 자신은 받지 못해 혼자 한국에 왔다고 했다.

케밥하우스에서 일한 지 일주일도 안 됐지만, 압둘람은 지금까지 일한 곳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서 배를 탔다. 지난해 말 육지에 올라온 뒤로는 시멘트·떡·김치 공장 등을 거쳤다. 그는 고된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계약대로 돈을 안 주는 사장 때문에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왜 돈을 안 주냐고 얘기하면 사업주들은 하나같이 그럴 거면 나가라고 했다고 전했다.

압둘람은 하루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향에는 엄마·아빠와 누나들이 살고 있다. 매달 생활비를 보내며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그리운 마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압둘람은 내전이 종결되는 대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주민 목사는 매장을 늘려 가며 예멘인을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시작 단계라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업이 안정화되고 경험이 축적되면 이어서 2·3호점을 낼 것이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사람들은 난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동네 음식점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면서 사람들 인식이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난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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