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설렘과 욕망이 공존하는 곳

제주를 떠올릴 경우 우리가 전형적으로 하는 기대가 있다.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가장 우아한 자태를 지닌 곳이어야 한다는 것. 그러한 기대와 다르게 제주, 그중에서도 서귀포시를 보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소도시와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기대의 배반이라고 봐도 어쩔 수 없지만, '제주'라는 기대에 반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특성을 품은 것처럼 아쉬움으로 물든 곳, 그런 곳이 제주인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건축학적 관점에 빗대어 제주를 살피면, 그 아쉬움은 더하다. 환경친화적 요소를 담은 이국적인 느낌의 관광지라는 설렘을 담보로 한 기대, 신혼여행 등으로 물들어 있는 추억의 어느 한때를 빼놓고 나면, 제주의 건축, 도시 풍경은 어느새 자본과 욕망에 찌든 세속 도시의 단면과 적실히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욕망에 뿌리를 둔 건축은 '제주'라는 토속적 지역성이 품은 고유의 미학을 기형적 측면으로 확대 생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근거 없고 유치한 인습, 기형적으로 비대화한 풍토성으로 회칠된 제주의 풍광은 섬이라는 고립성과 조탁되면서 암울한 하향 평준화를 이루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토착화된 건축, 돌파구로 기능해야 할 교회 건축 역시 제주라는 특징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박제에 가까운 전형적인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묘한 신비를 머금은 교회, 순수하지만 마냥 약하지만은 않은 제주 강정교회 예배당 건축에 대한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오늘날 제주와 교회, 더 나아가 프로테스탄트 교회 윤리의 한 지평인 '없으나 있는'1)의 미학 출현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두 가지 키워드는 △무채색 △노출 콘크리트다.

강정교회 예배당 전경. 사진 제공 양상호

무채색의 건축

제주 강정교회는 말 그대로 제주에 있는 교회다. 보통 지역 교회를 떠올려 보면, 그 지역 특성 및 전통과의 어울림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라는 지역 특성이 갖는 이질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강정교회의 경우, 예배당 외형이나 스타일, 건축 이미지로 제주와 공간적 어울림을 시도하려는 의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지역 이미지를 넘어서서 보편적 인간 내면의 지역성에 집중한 의도가 더 도드라진다. 그리고 그 내면의 지역성에 의해 완성된 내적 이미지로서의 생명력이 제주라는 지역을 더 선명히 밝혀 주는 효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적 이미지가 돌출된 가장 상징적인 지점은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노출 콘크리트 마감재의 본격 도입에 있다.

무회無懷, '마음을 비우고 건축을 한다'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 무회건축사무소 소장인 김재관, 그의 회심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강정교회는 제주라는 지역이 지닌 건축성에 빚진 작품으로는 보기 어려운 탈지역적 특징으로 접근하고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 요구의 첨단에 노출 콘크리트가 있고, 무채색의 바탕이 존재한다.

노출 콘크리트의 순수성

노출 콘크리트의 순수성은 아름답다. 제주 강정교회 예배당은 여러 수준 있는 건축적 가치들을 함유하고 있지만, 건축물에 사용된 재료인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언급 하나만으로도, 한국교회 건축의 허세 작렬하는 졸렬한 풍경을 일소하는 일갈로 기능하기도 한다. 강정교회 예배당의 질감은, 노출 콘크리트라는 특별하고도 강렬한 내면적 깊이를 쏟아 내는 재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하지만 공사 초기, 교회 측 관계자들에게 노출 콘크리트 마감재 사용은 상당히 위험한 시도로 이해되었다. 자칫 흉측한 덩어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공사가 중단될 정도로 격렬한 토론과 논의를 거친 뒤에야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 완공까지 이르게 된 강정교회 예배당, 그 우여곡절의 역사는 노출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지닌 질감에 대한 이질성과 거부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우여곡절의 역사였지만, 교인들은 그 역사를 건물 마감재로 전격 도입한 노출 콘크리트 공법에 동화된 시간으로 읽어 냈다. 노출 콘크리트의 꾸미지 않는, 장식하지 않는 심미적 순수성에 강력하게 동화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콘크리트는 건축물의 마감 형성에서 늘 숨겨지고 가려진 조연 역할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콘크리트 자체가 건축물의 마감재가 되는 순간, 그 투박하고 거친, 가공미가 느껴지지 않는 건축물 본연의 질감은 단숨에 순수성의 상징으로 화하여 보는 이를 압도하고 만다. 더욱이 그 질감을 에워싼 건축 주체들의 기능이 교회로 집중된다면, 보이지 않은 신의 임재를 갈망하고 임재의 지속을 위해 기도하는 성의 공간일 경우, 가공되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의 자연스러움은 그 자체로 영적 측면에서 성역화를 이룬다.

강정교회 예배당의 특징은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건물 마감재로 전격 도입했다는 것이다. 사진 제공 양상호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우선적 가치는 인공미를 배제한 순수성을 드러내는 효과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더 균질한 콘크리트 벽면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섬세한 시공 작업이 요구된다. 콘크리트가 가져다주는 잿빛 질감이 그윽하면서도 즉물적인 양가적 감성에 맞닿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렇기에 기성 건축 마감재를 사용할 때보다 인건비나 재료 투입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 갖고 있는 강력한 또 하나의 특질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이다. 한 번 도입하면 형태를 수정하거나 변개할 수 없는 공법의 특성 때문에, 제주 강정교회 예배당 역시 일필휘지의 붓감이 드러내는 즉흥적 감흥과 맞닿아 있다.

즉흥성과 본연성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교회는 내부로 진입할 때 노출 콘크리트를 대표하는 순수성을 적실히 반영한다.

정묘한 세계를 향한 몰입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자는 예배당 앞마당에 멈춰 섰다. 필로티 형식의 데크에서는 직사각형으로 정돈된 작은 연못이 보인다. 진입구 역할을 하는 연못인데, 교회에서 이런 종류의 연못을 발견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연못은 이 경우 세례 혹은 침례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성의 공간에 들어서기 전, 순수에서 비롯된 예식을 향한 몰입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필로티에서 예배당으로 가려면 오른쪽의 완만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의 첨단에 종탑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십자가가 놓여 있다. 짙은 어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느낌을 주는 십자가는 마치 어둠과 절망의 끝에서 사도 바울이 경험한 신과의 조우,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계단을 오르면 텅 빈 공간이 나오는데, '교제의 마당'이라 이름 붙여졌다. 빈 공간에 가만히 서 있으면 하나의 입구가 보인다. 예배당 회중석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다시 홀이 나오고 정면 양쪽으로 출입문이 나온다. 문을 열면 전면에 둥근 스크린이 있는데, 그 스크린을 돌아서야 제단을 비롯한 예배당 안이 훤히 보인다.

예배당 오른편에 솟아 있는 종탑. 사진 제공 양상호

강정교회 예배당이 지닌 건축학적 특징은 폐쇄성과 개방성의 동시 지속이다. 외연으로만 보면 강정교회 예배당은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 사면 어디서나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필로티에서 계단, 종탑, 교제의 마당, 예배 공간을 거쳐 다시 현관과 내측 잔디 마당에 이르는 동선이 서로 각자 분리되고 독립적 공간으로 있으면서도 통로만큼은 막힘없이 연결돼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숨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섬이라는 태생적 고립의 특성을 지닌 제주라는 지역성이 여과 없이 분출되는 순간이다.

화려할 정도로 아낌없이 소통이 이뤄지는 외부와 다르게 예배당 안은 심각할 정도로 미니멀하다. 직사각형의 평면 공간으로 구성된 예배당은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다.

특징이 되는 부분이라면 제대 뒤 벽면이 전부다. 제대 뒤 벽면이 직선의 날카로움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맡은 듯 보인다. 이러한 특징 정도가 교회 실내를 대표하는, 악센트를 주는 한 포인트로 기능할 뿐이다. 이렇듯 강정교회 예배당 내부는 외부의 간결함과 마찬가지로 극도로 미니멀하다.

이게 이 예배당의 건조한 외양에 악센트를 주는 요소다. 천장의 창으로 내려오는 빛이 이 거친 벽면에 떨어지면서 부드러우면서 고양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꾸밈이나 별다른 장식 없이 펼치는 소박한 빛의 연출이다.

자연, 전통,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회 건축 평론의 가장 중요한 특질 중 하나는, 신의 임재와 관련해 시간을 압도하는 절대 가치에 대한 무류無謬한 발견에 있다. 강정교회 예배당의 무류한 특징 중 하나인 무채색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강정교회 예배당은 색채 사용을 극히 절제해 결과적으로 요란하지 않은 무채색 건축으로 제주라는 지역을 점유했다. 유채색은 십자가와 철제 난간 등 몇 군데 철제 부분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안과 밖은 회색 톤의 도장으로 마감하고 있으며, 회중석 뒷면의 목재 패널도 회색에 가까운 톤을 사용하고 있다. 강조하는 포인트로 보이는 회중석으로 된 입구 부분도 특이한 채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채색의 압도적 도입으로 강정교회는 마치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사물과 같은 일상 이미지 혹은 자연의 일부와 같은 형태로 녹아들게 된다. 오래된 바위 위에 머무른 이끼처럼 무정형의 상태, 강정교회는 어쩌면 그 깊은 무채색 심연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교회 전통의 본질과 프로테스탄트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무채색을 주 테마로 삼고 있는 강정교회 예배당은 프로테스탄트의 존재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진 제공 양상호

교회 전통의 본질에는, 바울의 가르침인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있는 것을 없는 것 같이' 원리가 작동되는 것 같다. 프로테스탄트는 교황 제도의 엄숙함과 이콘의 경건미로 자신을 내세우는 가톨릭이나 기타 종교와 다르다. 저항의 종교 프로테스탄트는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렇지만 자연의 일부처럼 세상과 소통하는 전통 아닌 전통을 추구하는 데 그 본령이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강정교회 예배당은 교회 전통,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본질을 무채색과 노출 콘크리트의 반미학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외연적 과시와 강탈의 점유욕에 사로잡힌 현대 교회 건축이 이 예배당을 유의미하게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1) '없으나 있는'의 교회 윤리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신다'는 로마서 4장 17절의 생명 원리를 바탕으로 전개된 사유 전개에 기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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