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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예루살렘에서 당나라 장안까지
나의 고대 동방 기독교 유적 답사기(4)
  • 성기문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4.30 11:53

지난 3회에 걸쳐 중국 당나라 때 전래된 경교(기독교)를 향한 관심과 중단, 재개의 이유를 언급한 바 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역사 여행을 떠나 보기로 한다.

지금까지의 중국 당대 경교에 대한 논의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굴된 단편적이지만 방대한 유물들(십자가나 무덤 유적들)이거나 시안西安에 있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나 둔황敦煌 막고굴의 장경동藏經洞 등에서 발굴된 소수의 경교 경전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1차적이고 확정적인 유물들의 문제점은 우리에게 이해 가능한 역사 이야기로 재구성하기가 어려웠다는 데 있다.

중국 당대에 경교가 정말로 "유행"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중국 경교의 전말顚末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중국 경교를 제대로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이들을 파송한 지역 교회들뿐 아니라, 주위의 정치적 상황들과 이들이 파송된 중국의 여러 정치·경제·사회, 종교 문화 상황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는 중국 당대 경교를 전반적으로 균형 있게 이해하는 데 필수 요소들이다. 필자는 이러한 논의를 몇 차례에 걸쳐 중요한 쟁점 사항들과 함께 이야기할 것이다.

로마제국 분열에서
페르시아, 아랍제국의 등장까지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볼 때, 지중해 지역 기독교(지중해를 끼고 있는 지역들, 유럽·소아시아·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 등)는 크게 세 차례 분열했다. 첫째는 기독론과 관련한 시리아-이집트 지역 기독교의 분열이며, 둘째는 성상聖像 논쟁으로 발생한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의 분열이며, 셋째는 구원론과 관련한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분열이다.

기원후 7~8세기는 (유럽) 기독교 역사 속에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 시기였다. 수도원 운동, 프랑크왕국의 성립, 이슬람의 팽창, 동서 교회 분열(726년 성상 파괴령에 따른 로마교회와 정교회의 분열), 신성로마제국의 성립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의 수도원 운동은 6~7세기 시작된 유럽 "야만인들"(영국·아일랜드·프랑크·게르만족)에 대한 전도 활동과 관련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대제의 방대한 로마제국 동서 분할 통치 이후, 동로마제국(395~1453년)은 오스만튀르크 공격으로 멸망할 때까지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고 과거 로마의 영광을 이어 가고 있었다.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에게 지속적으로 침략을 받고 있었고, 410년 로마가 함락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로마제국은 동쪽 지역에 관심과 영향력을 더 끼치고 있었다. 동로마제국은 이전에 헬라 제국과 대결하던 페르시아(우리말 성경은 바사波斯로 음역)를 이은 셀레우코스 왕조와 파르티아(Parthia<=Persia)를 계승하는 사산조페르시아(Sassanian Persia) 제국과 대결하게 되었다. 613~636년 여러 차례 동로마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 페르시아는 동로마제국 손아귀에서 시리아·팔레스티나·이집트를 빼앗았다. 동로마제국은 실크로드의 경제력과 신앙적 배경인 예루살렘을 빼앗긴 것이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이 사산 제국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자국 내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는데, 종종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제국과의 야합을 의심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동로마로 역이민을 떠나거나 살해당할 위험에 항상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동로마제국이 이단시했던 동방교회 기독교인들은 사산 제국의 핍박에서 어느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자린쿠/자린쿠[2011:92, 95]를 보라). 심지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를 공격하던 아랍 사람들이 동방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방자"로 여겨질 정도였다.

주로 실크로드의 경제권을 갖고 동로마제국과 사산조페르시아 제국이 대립하던 당시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가 일으킨 새로운 세력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추가적으로 언급할 나라는 중앙아시아를 통제했던 튀르크突厥 제국이다. 이 튀르크 제국은 동쪽으로는 당과의 대결했고, 당 제국 초기 동서 튀르크 분열과 동튀르크 복속을 통해 당 제국은 페르시아, 동로마, 심지어 이슬람 제국과의 접촉 혹은 대결 구도를 이루게 되었다.

결국 이슬람 세력은 사산조페르시아와 동로마제국(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리게 된다. 우선 사산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이슬람 최초의 우마이야왕조(661~750년)가 있었다. 이 왕조는 두 번째 이슬람 왕국인 아바스왕조로 대체되고, 아바스왕조는 몽골 군대가 바그다드를 함락할 때까지 바그다드에 수도를 두었으며(749~1258년), 이후 카이로로 천도遷都했다(1261~1517년)(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김승철[2015]을 보라).

동방교회의 기원과 동전東傳

위에서 동방교회 기원에 대한 역사 지리적 토대를 개괄했으니, 이제 동방교회를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신모神母, 인모人母, 기독모基督母"라는 마리아 칭호 논쟁에서 비롯되었으며 에베소와 칼케돈 공의회에서 내려진 그리스도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 대한 결정을 서로마교회와 동로마교회가 지지하면서, 이를 지지하지 않는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교구 등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지면 관계상 자세하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와 같은 이단 정죄의 정당성은 20세기에 학자들과 가톨릭교회에 의해 재고되고 부정되었다). 이것은 교회사에서 신학적 입장과 지역적 요인으로 빚어진 세계 교회의 첫 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열은 하나의 통일된 제국의 통치자에게는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방 교회 전통은 로마를 중심으로 라틴어를 사용하고,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동방교회(Church of East)는 페르시아 지역과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와 중국에까지 전파되면서 예전 언어로 시리아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추가로 이집트에 있던 콥트교회는 콥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시리아어는 아람어의 일종으로,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사용하고 동방 기독교인들은 시리아어를 사용했다. 이와 같이 지리적·교리적 분리 혹은 특징은 지역별로 언어별로 교회가 나누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리아 지역을 근거지로 삼았으나,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그 중심지로 옮겨 가게 된 동방교회는 차차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동방교회가 갖고 있는 선교 중심적 특징, 역사상으로 그들의 체재 국가들과 주변 종교들로부터의 지속적인 핍박을 피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중국뿐만 아니라, 티베트에까지 교구를 넓혀 갔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중앙아시아 지역은 처음에는 불교가 도입되었고, 그다음에는 기독교 그리고 나중에는 중동 지역 이슬람교가 도입되어, 서쪽으로 북부 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역의 국가(적) 종교가 되었고 현재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세 유럽인들이 전설 속에서 그리워하던 "사제 요한"이 통치하는 동방의 기독교 국가는 존재할 기회가 없었다.

사산 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즈데게르드(Yazdgerd) 3세 치하(재위 632~651년)에 총대주교(patriach) 예수얍 II(Yeshuyab, 재위 628~643년)은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때가 사산 제국 군대가 마지막으로 잠시 아랍 군대를 이길 때도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자린쿠/자린쿠[2011:159]). 이러한 상황에서 페르시아의 동방기독교는 마니교와 마찬가지로 국교가 아닌 종교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마도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로까지 채택되었다는 점과는 크게 대조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페르시아 동부 지역, 즉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동방 기독교가 전파되고 그 수가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였다(이 부분은 황정욱[2005:52-56], 바우머[2016:323-26] 참조).

국가적 박해나 종교 간 경쟁과 갈등, 전란이라는 위기를 떠나 점차 동전하던 기독교는 또 다른 도전을 받게 되었다. 유럽 기독교는 1000년 넘는 기간에 유럽 북부와 동부에 사는 비문명화한 "야만인들"을 선교하려고 애썼다면, 아시아 기독교는 1000년 넘는 기간에 동부 아시아의 문명화한 "이교도들"을 선교하려고 애썼다.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전래되었던 불교와 동진하였던 기독교가 만난 곳, 그곳에서는 알렉산드로스대제를 통해 헬라 사상이 도달한 간다라 지역에 전파된 불교가 먼저 예술적으로 꽃을 피웠고, 이곳을 통해 불교는 동진해서 중국에 이르게 되었다. 동방 기독교는 무역상들의 길(silk road)을 따라 마침내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도착했다.(계속)

참고 문헌

김승철, 『최초의 이슬람 제국, 우마이야』(고양시: 좋은땅, 2015).
압돌 호세인 자린쿠/루즈베 자린쿠, 『페르시아 사산 제국 정치사』, 태일 역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1).
이노우에 고이치,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이경덕 역 (서울: 다른세상, 2010).
크리스토프 바어머, 『실크로드 기독교: 동방교회의 역사』, 안경덕 역 (서울: 일조각, 2016).
황정욱, 『예루살렘에서 長安까지』(오산시: 한신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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