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하나의 현대적 해석학 방법론> /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지음 / 김진섭, 류호영, 류호준 옮김 / 이레서원 펴냄 / 536쪽 / 3만 3000원

설교자는 항상 어떻게 그리스도를 설교할 것인지 고민한다. 이를테면 구약 설교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는 이들은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약 설교의 신학적 근거를 대 보라고 물으면 난처해한다. 구약에서의 그리스도 설교는 난해한 주제이자 설교자의 짐이다. 개신교 목회자로서,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 그래서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식이 예표로서의 그리스도다.

예를 들어,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라는 방식이다. 이러한 예표, 또는 모형론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신학적 난제를 불러오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풍류, 알레고리로 가야 할까. 알레고리가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결코 지혜로운 방법은 아니다. 그렇다면 구속사적 관점에서 풀어내야 할까. 그렇다. 최근 들어 수많은 목회자가 구속사로 구약을 풀어내고 있으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속사救贖史(history of redemption)는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며 예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속을 완성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 이것이 구속사의 전체 맥락이다. 구약은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고, 신약은 그리스도에서 출발해 심판으로 나아간다.

문제는 이러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다. 또한 모든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라합이 걸어 두었던 빨간 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는 것일까. 원시 복음으로 불리는 창세기 3장 15절을 요한계시록의 뱀으로 곧장 연결할 수 있는가. 연결해야 한다면,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의 주장을 개략적으로 살핀 다음, 필자의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저자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미국 칼빈신학교(B.D.)와 신학대학원(M.Div, Th.M.)을 졸업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을 가르쳤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다. 설교학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구약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은 이레서원에서 2002년 번역 출간한 책을 개정해 펴낸 것이다

이미 접했던 그레이다누스의 책은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SFC), <성경 해석과 성경적 설교>(여수룬)이다. 이전에 접한 책이라 내용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번에 개정됐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일었다. 번역자를 보강해 세 분이 동참했다. 여러 사람이 번역에 동참하기 때문에 단점도 있지만, 그만큼 협의하는 과정을 통해 보완하고 오류를 잡아낼 수도 있었으리라. 1~4장은 류호영 교수, 5~7장은 김진섭 교수, 마지막 8장은 류호준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문체의 통일성 등을 위해 김진섭 교수가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번역에 동참한 류호영 교수는 저자의 제자다.

필자의 관심은 저자가 어떻게 알레고리와 문학비평 사이의 긴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만큼 구약을 본문 삼아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은 쉽지 않다. 1장에서 저자는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밝힌다. 저자의 주장을 직접 들어 보자.

"신약 교회는 나사렛 예수님의 탄생, 사역, 죽음 부활, 승천 모두를 하나님의 옛 언약 약속들의 성취로 선포되었으며, 또한 성령님을 통한 이 예수님의 오늘날의 임재와 그의 임박한 재림을 선포했다. 간단히 말해,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구속사의 전 영역이란 문맥에서 선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30쪽)

과연 그렇다. 신약을 천천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 다른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신약이 그리스도를 전파할 긴급성과 필연성이 촉구되는 것은 당시 상황 때문이었다.

우리는 신약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구약이 예언한 그 메시아이며,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언을 성취했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안다. A.D. 50~120년에 기록된 신약 문헌들은 예수가 누구신지에 대한 변증서이자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설명하는 해설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구약의 성취이자, 율법이 지났음을 알리는 표지판이었다. 예수는 구약의 성취이면서 동시에, 대안이며 궁극적인 성경의 목적이기도 했다. 그 어떤 소식이나 사실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 설교가 긴급하고 중요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영원한 사망에 대한 치료제이다. 죄로 죽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그리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긴급하게 반드시 전해져야 할 메시지이다. 이는 소망, 화목, 하나님과의 화평, 치료, 회복, 구원, 영생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41쪽)

마틴 로이드 존스도 자신이 신약을 설교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긴박성과 직접성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명징하게 드러난 신약을 설교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구약까지 설교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로 반문한다. 물론 로이드 존스도,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구약도 설교했다.

구약은 상대적으로 필요가 없는 것일까. 저자는 구약이 설교되지 않는 이유를 △교회력에 따른 설교집 사용 △비평적 진영의 구약 연구 △구약 거부 △구약 설교의 어려움을 꼽는다. 필자의 경우, 구약과 신약을 50% 정도 비율로 설교해 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설교자는 10대 2 정도에 머물고 있다.

차준희 교수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12개 교단 27개 교회 주일 오전 설교를 전수 조사했을 때 설교 본문 중 신약은 63.5%, 구약은 35.6%로 집계됐다고 한다(<국민일보> 2011년 12월 15일 자). 구약의 경우, 본문의 45.9%가 이사야서인 점을 감안하면, 구약은 이사야서 외에 거의 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 구약을 설교하지 않을까. 저자는 도널도 고완의 주장을 빌려 와 구약과 신약의 "비연속성"(56쪽)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구약을 어떻게 설교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이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기는 하지만, 많은 본문을 봤을 때 심판하시고, 정죄하시고, 죽이시고, 파괴하시는 분이다. 신약의 예수는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고자 초대교회 마르키온은 구약을 부정하고, 신약에서 심판에 관련한 구절을 뽑아 버리고 자신만의 성경을 만들었다. 현대 목회자가 마르키온처럼 하지는 않아도, 말시온처럼 파악되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구약을 어떻게 바르게 설교해야 할 수 있는지 모범을 제시한 연구서나 책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구약은 구약대로, 신약은 신약대로 설교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신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눅 24:27 등 참조). 구약을 구약대로 둘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구약을 설교할지가 난제인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구약 설교는 인물 중심 설교다. 인물·주제 설교는 교훈적으로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를 2장 첫 부분에서 다룬다.

어떻게 구약에서 그리스도 중심 설교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3장에서 6장까지 역사적·교리적·성서적 해석의 관점에서 주도면밀하게 주장해 나간다. 저자는 5-3장에서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점진적 구속사의 길 △약속-성취의 길 △모형의 길 △유비의 길 △통시적 주제의 길 △대조의 길이다.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 부분과 이곳을 더 자세히 설명한 6장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필자는 구약을 설교할 때 종종 모형론을 사용한다. 모형론은 일종의 상징과도 같으나, 구속사 맥락에서 역사 속에 실현된 유비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은 성전의 모형이다. 이후 광야에서 만들어진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예루살렘성전은 예수 자신으로 교체된다[그레고리 빌 <성전신학>(새물결플러스) 참조].

히브리서 기자 말대로, 구약은 그림자요 모형이다. 즉 진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신약이 온전히 밝히지 못하고, 다 설명하지 못한 많은 부분을 구약을 통해 밝힐 수 있다. 신약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창조와 타락, 구속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세밀하게 그려진 구약에 바탕을 둔다. 예수님은 사단과 싸울 때 "기록되었으되"(마 4:4, 7, 10)라고 말씀하신다. 즉 구약을 인용하시고, 구약으로 싸우신다. 구약 역시 사단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의 말씀임이 분명하다. 모형론의 특징은 '역사적', '하나님 중심적', '의미심장한 유비'이다(375쪽). '확대 상승'(376쪽)이라는 특징도있는데, 예수께서 요나보다 더 큰 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표현하신 대목에서 알 수 있다(마 12:41-42).

7장에서는 구약 본문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이르는 열 단계를 제시한다.

①회중의 필요에 주의하면서 설교 본문을 선택하라.
②본문을 그 문예적 문맥에서 읽고 또 읽어라.
③본문 구조의 개요를 만들어라.
④본문을 그 자체의 역사적 배경에서 해석하라.
⑤본문의 주제와 목표를 명확히 표현하라.
⑥본문의 메시지를 정경과 구속사의 문맥에서 이해하라.
⑦설교의 주제와 목표를 명확히 표현하라.
⑧알맞은 설교 양식을 선택하라.
⑨설교 개요를 준비하라.
⑩설교문을 구어체로 작성하라.

8장에서 설교의 실제를 제공한다. 어떤 것이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인지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구약 설교가 부담스러운 이들이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정현욱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담임목사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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