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독법률가회·기독경영연구원·좋은교사운동 등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들이 '평신도의 상상력' 세미나를 열었다. 첫 번째 모임에서는 '왜 우리는 욕먹는가'를 주제로, 평신도들의 신앙관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한국교회 교인들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헌신과 봉사를 하고 있다. 새벽 기도와 수요·금요 기도회, 교회학교, 주방, 주차…. 무언의 압박으로 봉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쁨'으로 교회를 섬긴다.

그러나 세상이 교회를 향해 보내는 시선은 따갑다. 세금 한 푼 안 내려는 집단, 세습이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으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신앙 좋다는 교인 중에는 이런 상황을 보며 복잡다단한 심경을 지니는 이가 적지 않다. 혹자는 죄는 목사가 짓는데 욕은 교인들이 먹는다며 억울해하고, 어떤 이는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다른 이들을 보며 혀를 차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그런 목사와 교회를 떠나 '가나안 교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교회 허리를 떠받치는 평신도 교인들이 모여 '왜 우리는 욕을 먹는가'를 고민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기독경영연구원·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독법률가회·좋은교사운동 등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평신도의 상상력' 첫 번째 모임이다. 4월 20일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모임에는 60여 명이 참석했다.

"예수 피만 이용하려는 '흡혈귀 신앙' 버려야"
초심자 신앙에서 '씨름하는 신앙'으로

이병주 변호사는 교인들이 일주일의 대다수를 보내는 삶의 현장을 귀하게 여기자고 했다. 노동을 귀하게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씨름하는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목사와 교회 제도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이날은 철저히 '평신도' 관점에서 교인 스스로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먼저 '욕먹는 기독교와 평신도의 고민'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병주 변호사(기독법률가회)는 아직도 한국교회 교인들이 초심자 수준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는 "초심자 단계에서 누리는 신앙은 '위로받는 신앙'이다. 하나님을 처음 만나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위로를 받는다. 감격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살 수는 없다. 세상에서 먹고살면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경력직 신앙'이 되었다면, 막연히 위로받는 데에서만 그칠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며 '씨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이 성숙했는데도 여전히 위로와 성공만을 구하는 것은 '흡혈귀 신앙'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피를 흘리려 하지 않고 예수의 피만으로 살겠다는 흡혈귀 같은 이기적인 신앙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주 변호사는, '씨름하는 신앙'이란 세상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과 부딪치며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씨름하는 신앙이 아니라고 했다. 이는 오히려 평신도를 잠재우는 결과만 낳았다고 했다.

"우리가 배워 온 '잘 믿는 평신도'는 개인 경건 생활과 전도·양육·구제·봉사를 열심히 하는, 교회에 충성하는 평신도다. 그런데 이런 평신도를 양성하는 데 성공한 교회들을 보라. 불법 세습과 편법 목회를 지지하는, 잠자는 평신도들을 만들어 냈지 않나. 교회도 망치고 목회자도 망치고 평신도들도 망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변호사는 세상과 교회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훈련을 하자고 했다. 거룩함만 강조하면서 세상에서 도피하려 하면, 오늘날 교회 모습처럼 사회문제는 무관심하고 개인 경건 생활만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사회 참여도 필요하다고 했다.

생업에도 충실하자고 했다. 이 변호사는 "많은 교인이 노동은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목사나 NGO 활동가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먹고사는 일은 나와 가족에 대한 책임을 실현하는 것 아닌가. 사실은 노동과 생업의 세상이 더 처절하고 치열한 신앙생활의 장이다. 여기에서 우리 평신도들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주 변호사는 '씨름하는 신앙'을 실현하기 위해 개별 교회를 넘어서는 평신도 신앙을 갖자고 제언했다. 그는 "우리가 섬기는 개교회는 교회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 개교회 성공만을 추구하는 신앙은 교회라는 우상숭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교회, 한국교회 전체의 평신도로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씨름하는 신앙'을 전개하자"고 말했다.

"평신도, 판을 바꿔야 한다"
훈련 후 다시 홈으로 돌아오지 말고
세상에 나아가 섬기는 모습 보여야

세미나 참가자들은, 교회에서 봉사하고 위로받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부딪치며 씨름하는 신앙이 요구된다고 했다. 사진은 2017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에서 교인들이 봉사하는 장면(기사와 직접적으로 관계없음).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병주 변호사 발제에 이어, 주최 단체에서 한 명씩 패널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신뢰운동본부장 조성돈 교수(실천신대)는 평신도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고 말했다. 조 교수는 "평신도라는 단어는, 목회자 그룹과 구분된 개념으로 사용한다. 구분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대체할 어휘가 없기도 하다. 평신도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평신도를 미흡한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세상에서 일하다가 남는 시간에 교회 오니, 부족한 죄인 같아 보인다. 그러나 판을 바꿔야 한다. 목사는 왜 세상 속으로 못 쫓아오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평신도의 자리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다. 하나님나라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면 그곳에서 사역하는 게 더 큰 의미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교인이 교회에 종속됐다는 생각을 바꾸고, 판을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빠져나가도 교회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헌금이 줄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무슨 짓을 해도 성장한다는 게 아니라,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교인이 줄어든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판을 바꾸고, 생각을 바꿀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독경영연구원 부원장 김세중 교수(아주대)는 세이비어교회를 통해 본 사회적 책임의 실현 가능성을 말했다. 그는 교인 150명에 불과한 미국 세이비어교회가 연 2000만 달러(약 227억 원)가 넘는 규모로 사회적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규모라면 한국에서는 20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 교인들은 1루, 2루, 3루를 돌아 다시 홈으로 들어온다. 훈련받아 봐야 교회 성장과 봉사를 위해 돌아오는 것이다. 세이비어교회처럼 3루까지 갔을 때, 홈으로 돌아오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교사운동에서 활동했던 강영희 교사는, 사회적 고난을 겪은 이들과 함께할 때 주변인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에서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고 불경을 외우며 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우상숭배라고 생각했던 행위가 가족들에게는 위로였던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무작정 피켓을 들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세월호 가족을 도왔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너를 보니 더 이상 교회 욕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기독법률가회 조원익 변호사는 대학에서 민법을 배우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법원은 2006년 교회를 탈퇴한 교인들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내놓으며 "법원의 판단과 이에 근거한 집행만이 분쟁을 종식하는 유일한 수단인 경우가 적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교회 내 분쟁은 이 세상의 일반적 분쟁과 차이가 없다는 법원 판단을 보고,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세상과 무엇이 다른가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교인들을 도로 위 운전자로 비유했다. "과거에는 교회가 법도 만들고 체제도 만드는 룰 메이커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너희 착한 행실로 너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다. 먼저 우리가 법을 준수하고,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교인들이 50분간 그룹 토의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주제 발제와 패널 토의에 이어, 참석자들은 약 50분간 그룹별로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 세미나들과 다르게 평신도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장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참석자들은 '평신도란 누구인지' 개념을 세우고 '평신도 신학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좋은 교인은 모범적인 시민이 되어야 한다"며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지키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목회자들은 교단과 교파 나뉘어 있지만, 평신도들은 그것을 넘어서는 협력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보편 교회로서의 연대를 모색해 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한 청년은 "생각해 보니 오늘 이 자리에 청년이 없다. 앞으로 청년들이 왜 한국교회를 외면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임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침석한 고직한 선교사(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는 현재 대형 교회 문제에 맞서고 있는 교인들이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 선교사는 "우리가 사도신경 외울 때마다 거룩한 공교회를 고백한다. '너희 교회 문제'라거나 '또 싸운다'는 인식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적어도 문제 하나는 꼭 해결하고 가자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목광수 교수(서울시립대)는 "생산적인 상상력들이 많이 공유된 것 같다. 오늘 나온 새로운 상상력들은 혼자 갖고 있지 말고, 평신도들끼리 나누고 뭉쳐야 한국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평신도의 상상력' 세미나는 이날을 시작으로 2019년 총 4번 모일 계획이다. 2분기 세미나는 6월 22일, 송인규 교수(한국교회탐구센터)에게 강의를 듣고 '새로운 평신도 신학의 시작'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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