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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통해 발견한 '세월의 순례'
캐나다 토론토대학 존 다도스키 교수 에세이
  • 존 다도스키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4.17 16:44

2015년 애틀랜타(Atlanta)에서 열린 미국종교학회(America Academy of Religion, AAR)의 한국 종교들과 관련한 모임들 가운데 하나는, 2014년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신학적 응답을 다루었습니다. 저는 이 모임에 참석했고, 세월호 참사가 낳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엄청난 고통에 깊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한때 고등학교 교사였던 적이 있어, 한 번의 참사로 한 고등학교의 거의 모든 생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저 역시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지도자들의 지도력이 다양한 수준에서 너무도 부족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언론 매체들을 통해, 저는 그 여객선의 선원들과 정부가 보여 준 이러한 지도력의 부재를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제가 깨닫지 못했던 것, AAR 모임이 저에게 일깨워 줬던 것은, 바로 그곳에 종교적 지도력의 과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 중 많은 이가 이번 참사는 "하나님께서 화를 내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근본적으로 비난하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신정론을 펼쳤습니다. 목회자들의 지도력 부재는 고통을 받은 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 주었습니다.

AAR 모임에서 영감을 받은 저는 2016년 여름에 세월호 참사의 많은 희생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추모관을 찾았습니다. 비탄에 빠진 유가족들은 박물관과 유사한 형태의 이 추모관을 건립했는데, 사람들이 그 슬픔을 달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청각 자료를 설치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래사장 이미지가 투사된 LED 화면 위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터치스크린 장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조문 메시지를 남겼을 때, 희생자들 삶이 그러하듯, 그것은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남겨진 메시지 위에 다른 사람이 메시지를 남기면, 앞 사람이 남긴 메시지는 사라진다. – 역자 주). 그곳에는 커다란 여객선 모형도 있었는데, 한쪽 면을 보이도록 잘라, 여객선이 나르던 차량들과 트럭이 배열돼 있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 여객선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알게 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벽에 설치된 약 24개의 스크린에서 반복 재생되는 영상들이었습니다. 각 스크린은 참사가 발생하기 몇 분 전 여객선 CCTV에 담긴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들은 줄곧, 매우 일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여객선 식당에서 가족의 식사, 다양한 그룹 안에서 웃고 있는 청소년들, 아이들의 놀이, 각각 다른 단체에서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어른들 등등).

제가 추모관에 있는 동안 그곳을 안내하던 이는 자원봉사자였습니다. 그는 정부가 추모관 직원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 근무할 수 없게 되어, 유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정기적으로 자원봉사하기로 결정됐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당시 추모관 운영 책임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갈등이 벌어져 정식 직원이 근무할 수 없게 됐다. - 역자 주). 이 자원봉사를 통해, 유가족들은 어쩌면 의도치 않게 고인들을 위해 끊임없이 추모 기도를 할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분이 제 어머니예요"라고 말하며, 그 안내원은 여객선 내 매점 가판대에서 햇반을 구입하고 있던 화면 속 한 여성을 가리켰습니다. 그 안내원은 2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제 시선을 다른 화면으로 돌려, 자신의 어머니가 친구들에게로 돌아와 같이 앉은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햇반을 산 이유는 라면보다 싸서예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애틋한 기억으로 미소를 짓는 듯 했습니다. 그가 자기 어머니의 평소 습관들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그 친밀감에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오빠가 식사하는 식탁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던 4세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배가 기울자 놀라 경악하고 있는 화면을 그에게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살았습니까?"

그러자 그 안내원은 여자아이는 살았지만, 그녀의 부모와 오빠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제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 소녀가 가족의 식탁에서 떨어져 있었던 그 몇 걸음의 거리가 삶과 죽음을 갈라놓게 했다는 말인가. 바로 그 순간, 저는 한국 고유의 단어인 '한'에 담긴 고통의 깊이와 관련해 지난 몇 해 동안 많은 한국 학생들이 저에게 말해 주었던 것을 더 깊은 수준에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내원은 제 통역사에게 저의 방문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저 또한 깊은, 어쩌면 영원할 감동을 받았습니다. 떠나기 전, 저는 터치스크린에 애도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검지손가락으로 단어들을 그리자 위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마치 모래 위에 쓴 것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습니다.

"당신들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입니다—캐나다와 미국으로부터(Your suffering is our suffering—Canada and USA)."

떠나는 길에 저의 한국어 통역사가 'Sewol'은 문자적으로 '세월'을 의미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세월호의 희생자들과 슬퍼하고 있는 유가족들이, 다음 세대들이 깊이 되짚어 보아야 할 영구적 선물을 이 추모관 안에 남겨 놓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월호가 순례자들이 삶의 평범함, 삶의 덧없음, 그리고 때때로 닥치는 비극적 불확실성 안에서 삶의 고귀함을 되새기게 할 수 있는 집단적 원형의 상징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구조된 4세 여자아이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그 아이는 마치 소피아(Sophia, 지혜)와 같이, 잔해 가운데서 일어나라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비극의 한을 품은 우리 영혼의 영속적 회복력을 보여 주고 있으며, (우리 영혼이) 깊은 비극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더 커진 인애로 다시 일어나 고통을 받는 모든 이를 감싸고, 삶의 소중함을 새로이 깨닫게 됨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2017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에

변역: 고봉찬, 박재찬

존 다도스키 교수(Professor John Dadosky) /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회 신학자 버나드 로너간(Bernard Lonergan) 전문가이며,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과 불교에도 조예가 깊다. 한국과 한국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문화와 종교를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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