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족들은 고통과 분노에 싸여 있다. 세월호 가족 곁에서 5년을 함께한 박인환 목사(화정교회)는 "대부분이 마음의 병과 육체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50도 되지 않았는데 돋보기를 써야 글 읽을 수 있는 사람,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걸린 사람,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실수하는 사람 등 증상도 각양각색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겪는 이 '트라우마'는 근본적으로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데서 비롯한 것이지만, '천국'만을 강조하는 한국교회 문화가 이를 조장한 측면도 있다. 특히 고난주간에 부활절을 앞두고 발생한 참사는, 슬픔에 빠졌다가 금세 환희로 바뀌는 기독교 전통의 아이러니와 맞물려 가족들의 고통을 더한다.

한국기독교연구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개혁을 위한 목회자 모임 '새물결'은 4월 15일 감신대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신학과 목회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는 보스턴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셸리 램보(Shelly Rambo) 교수의 저서 <성령과 트라우마>(한국기독교연구소)를 주제로, 한국교회가 세월호 참사처럼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살펴봤다.

트라우마에 대한 신학과 목회 세미나가 4월 15일 감신대에서 열렸다. 트라우마를 죽음과 부활 사이의 '성토요일'과 연결해 해석하고, 세월호 가족처럼 우리 주위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아이가 천국 갔는데 왜 우느냐"는 교인들
희생자 13명인데 성명서 하나 못 쓰는 목사
"더는 '천국 위로' 이야기 통하지 않는다"

박인환 목사가 담임하는 화정교회는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 양이 다녔던 교회다. 박 목사는 세월호 가족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소개했다. 그는 가족들이 교회와 이웃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는 유족들의 분노와 슬픔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것이 비신앙적이라고 단죄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천국에 갔는데 왜 아직도 우느냐"는 교인들의 말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했다고도 전했다.

믿는 사람들이라면 고통에 공감해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희생자가 13명 발생한 교회 목사는 나보다 13배 슬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성명서라도 하나 쓰자고 하니 그것마저도 다 거절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교회에서 외면당하고 상처 입었지만, 신앙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다. 가족들은 4년간 매주 수요일 아침 성경 읽기 모임을 했고, 목요일과 일요일 안산 합동 분향소 기독교 부스에서 예배를 했다. 박인환 목사는 "세월호 가족들이 교회와 목사들에게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고난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다. 이제 기복적이고 이원론적인 한국교회 설교는 유족들에게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고 했다.

박 목사는 "더는 '이 세상은 헛되니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위로받자'는 식의 얘기는 안 된다. 성령과 구원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한다. 교회는 아픔당하는 자의 곁에 서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흉내라도 내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인환 목사는 "아이가 천국 갔으니 그만 슬퍼하라"는 식의 어쭙잖은 위로는 오히려 고통만 가중한다고 했다. 곁에서 묵묵히 함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상익 교수(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가 트라우마의 특성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트라우마란 정서적으로 압도되는 심각한 스트레스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겪는 사회적 고독감, 건강 악화, 절망과 분노 등은 정상적인 반응이고,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 대부분이 대개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나면 회복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회복이라는 개념은 그 사건을 망각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한 교수는 "회복은 사건을 잊거나 그 일을 떠올렸을 때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회복은 덜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처 능력에 더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다. 한상익 교수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정리한 죽음의 5단계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세월호 가족들은 아직 분노 단계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봤다. 그는 "가족들이 주장하는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 단계를 넘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익 교수는 박인환 목사가 소개한 일화처럼, 섣부른 충고는 당사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구분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라는 식의 일상적인 충고는 피해야 한다. 트라우마 상태는 스트레스 상태와 달리 경험하지 못한 위급 상황이므로 평소의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일반적인 충고가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칼 구스타프 융의 "정신 치료의 목표는 환자를 거의 불가능한 행복의 상태에 두는 게 아니라 고통을 참는 철학적 인내와 견고성을 키워 주는 것이다. 삶의 충족과 전체성은 고통과 기쁨의 평형을 요구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억지로 행복하게 하려 하지 말고, 아픈 이들과 같이 있어 주고, 그들에게 공감하려는 자세를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승리만 강조하고 수난은 얼버무려"
죽음과 삶의 중간 '성토요일'
고난의 시간 제자들과 함께한 성령

<성령과 트라우마>를 번역한 박시형 목사는 "부활 승리만을 강조하는 승리주의를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과 죽음, 삶이 공존하는 성토요일의 성령처럼 고난을 견디며 실존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성령과 트라우마>를 번역한 박시형 목사(야곱의우물교회)는 교회 내 만연한 '승리주의'가 트라우마를 간과하고 상처 입은 자들의 고통을 가중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죽음 뒤에 오는 부활로 승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승리를 강조할수록 수난은 얼버무려진다. 고난주간이지만 성금요일에 수난을 이야기하고, 이틀만 지나면 부활절이 된다. 성토요일, 예수님 무덤에 있던 절망의 토요일에는 예전적으로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 승리를 이야기할수록 절망과 고통은 뭉개지고, 침묵되고, 억압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형 목사는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월호 가족이 승리주의 가득한 메시지를 견딜 수 없었던 것도 그 이유다. 부활절 강단에서 선포하는 내용은 전부 다 우리에게 희망이 온다는 내용이다. 나는 아직도 암흑 가운데 있는 삶뿐인데, 고통과 절망뿐인데,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느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령과 트라우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건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다. 셸리 램보는 죽음의 상징 성금요일, 생명의 상징 부활주일 사이에 낀 토요일을 '죽음과 삶의 사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이를 '중간'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성령이 고통 속에 있는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램보는 요한복음 19장 30절 "영혼이 떠나가셨다"는 표현을, 원어(파라디도나이)로 봤을 때 "영을 넘겨주셨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시형 목사는, 예수의 죽음과 함께 성령이 제자들에게로 넘겨졌다고 했다. 이 성령은 부활 이전, 삶과 죽음이 뒤섞인 '성토요일'에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목격자이자 증인이었던 성토요일의 성령이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박 목사는 "전통적으로는 고통을 통해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한다.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의 승리로 구원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성토요일의 성령론에 따르면, 구원의 원천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서 버티고 있는 사랑, 목격하고 증언하는 사랑이다"고 말했다. 이것은 '성토요일의 성령론'이 아직도 고통 가운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라고 했다.

이은선 교수(세종대 명예)는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고통, 죽음과 트라우마의 현실이 심각한데도, 한국교회는 이를 들여다보지 않고 승리의 부활과 성공, 빠름의 이야기만을 선호한다. 그런 현실에서 이 책의 가치가 빛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셸리 램보가 새로운 개념을 통해 성토요일의 성령을 상상한 것처럼, 한국교회도 유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와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신학을 상상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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