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깨운다', 30년의 구호

"평신도를 깨운다." 1984년 초판(<평신도를 깨운다>, 옥한흠 지음, 두란노 펴냄)이 나온 이후 2019년 현재까지, 35년간 한국교회 평신도 신앙 훈련의 모토가 된 구호입니다. 열심으로 불신자를 '전도'하고, 성심으로 초심자를 '양육'하고, 헌신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선의로 이웃을 '구제'하는 평신도의 신앙. 이렇게 △전도 △양육 △구제 △봉사라는 네 가지 사명으로 평신도를 깨워서, 교회 사역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 훈련 기본 내용입니다.

은혜가 많았지요. 지금도 이 은혜는 여전히, 상당히 남아 있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소개받는 감격을 맛보았고, 냉정한 세상에 살다가 다정한 교회에서 위로도 받고, 평신도의 열심으로 교회도 날로 성장하는 보람에, 수천수만 선교사가 복음 들고 해외로 나가는, 자랑스러운 한국교회의 10~20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들의 교회, 우리들의 신앙은 안녕하신가요?

'잠자는 평신도', 30년의 결실

구체적으로 이름은 특정하지 않겠습니다. '평신도를 깨우는' 일에 대성공을 거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교회와 그 교회 평신도들은 불신자들을 대규모로 전도하고, 초심자들을 조직적으로 양육하고, 교회에 대한 사랑과 순종을 극대화하고, 많이 모은 물질로 국내외 구제에 명성을 올린, '평신도를 깨우는' 신앙의 대성공 모델입니다.

그중 교회 성장으로 명성을 올린 한 교회는 교단 헌법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목회 세습을 단행해 예수님의 이름과 한국교회 명성과 소속 교단의 기능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 훈련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다른 한 교회는 불법 건축과 편법 목회로 온 세상과 교계로부터 지탄받으면서, 한국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교회 안팎의 사람들의 사랑과 자랑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평신도를 깨우는' 신앙의 모범 사례인 이 교회들의 평신도들이, 사실은 교회 세습이나 불법 목회 피해자가 아니고, 오히려 '교회의 명성을 위해서', '교회를 너무 사랑해서', 교회와 목회의 불법과 편법과 교만에 순종하고 묵인하고 지지하며 조장하는 '잠자는 평신도'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30년 동안 열심히 평신도를 깨웠는데, 30년 지나서 보니 그 평신도들은 모두 교회에서 졸고 있는 '잠자는 (교회 속의) 평신도'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허무한 신앙의 결실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부인하고 싶지요? 그러나 이것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욕먹는 기독교
- 불편한 현실, 그러나 직면해야 할 진실

20년 전 우리는,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 진리를 모르는 불신자라고 욕했습니다. 10년 전 우리는, 성 추문을 내거나 교회 재산을 유용하는 일부 목회자의 개인적 일탈 때문에 기독교가 욕을 먹는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욕하기도 어렵고, 일부 목회자들만 욕하면서 꼬리를 자르기도 어렵습니다.

이른바 장자 교회들의 만행과 장자 교단들의 마비로 교회 전체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불신자들이 오히려 교회를 걱정해 주고 있는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욕먹는 기독교를 더 이상 불편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들 자신을 욕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직면해 직진으로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퇴행적이고 무정하며 냉혹한 양상을 보이고, 교회적으로도 수치심을 잃은 파탄의 모습을 보일 때, 우리가 그저 "평안하다. 평안하다" 자위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예레미야 23:17).

2000년 전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셨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회개하라' 하신 말씀은, 곧 '너 자신을 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요한1서 1:8). 우리가 우리들 자신을 욕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적 불순종입니다. 우리가 우리 기독교인의 실상과 교회의 부족함, 평신도 신앙의 왜곡과 실패 양상을 인정하고 규명하며 고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순종의 시작입니다.

욕먹는 기독교에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회 제도(운영), 그리고 평신도들입니다. 평신도들이 목회자를 욕하면 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교회 이동 현상이 나타납니다.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과 교회 제도를 욕하게 되면 교회의 틀 자체를 떠나 방황하고 고민하는 가나안 신자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독교인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신도들이 자신의 신앙 현실과 그 왜곡 현상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욕하고 비판하는 일을 시작하면, 유효한 신앙적 회개와 교회 개혁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평신도가 교회를 깨운다'
- 담대한, 그러나 현실적 소망

아무리 기독교가 욕을 먹어도, 교회들이 흔들리고 기독교인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저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힘을 믿습니다. 교회가 흔들리고 기독교인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 또한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기독교의 본질적 진리를 더욱더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슬퍼하거나 절망할 일이 아닙니다.

과거 어느 시기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명이 '불신자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요청하는 것이었다면, 오늘 이 시기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명은 '신자들의 죄', 즉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고 기독교 신앙을 오염하는 기독교인들의 죄와 현실 교회 잘못들을 규명하고 회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후퇴가 아니고, 기독교의 전진입니다!

평신도들이 목회자들을 욕하는 것에는 이제 다소 진력이 납니다. 힘에 취한 목회자들은 아무리 욕을 해도 결코 반성하지 않고, 힘이 없는 목회자들을 계속 욕하는 것은 미안하고 민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평신도들이 목회자들을 욕하는 일에 너무 많은 힘을 쓰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교회 제도나 교회 운영을 욕하는 것에도 이제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실상 거의 절대적인 '개교회 체제'로 움직이는 한국교회의 제도적 현실로, 교회 제도와 교회 운영에 관한 모든 논의에는 결코 속 시원한 해결과 만족이 불가능한 객관적 한계와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무시하고 주관적으로 이상적 개교회와 목회를 소망하면서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교회 현실에 낙담하고 절망하는 것에는, '지나친 기대가 지나친 실망을 낳는 어리석음', 곧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의 어리석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목회자들의 수고에 가만히 앉아 수동적으로 신앙의 구경꾼 역할에 만족하던 평신도들은,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신앙을 이끌어 가는 신앙의 주체로서 거듭나야 합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평신도를 깨워 교회 일만 시키다가 교회도 망치고 평신도들도 망친 명성 높은 교회와 사랑 많은 교회들의 실패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말입니다. 평신도들은 더 이상 개별 교회의 제한된 틀만 바라보고 개별 교회의 명성과 성공을 자랑하는 '개교회주의의 신앙적 우물'에서 벗어나, 공교회(universal church)의 넓은 비전과 자유로운 힘을 알고 누려야 합니다.

30년간 '평신도를 깨운다'는 화두로 시작한 평신도 신앙 훈련이 30년 후 '잠자는 (교회 속의) 평신도'라는 허무한 결실을 낳았습니다. 이 실패를 놓고 목회자들을 욕하는 것도 지치고, 교회 제도를 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면, 이제는 남을 욕할 것 없이 평신도들이 스스로 일어나 스스로를 욕하고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평신도 신앙의 방향과 왜곡된 내용을 갱신하고, '평신도가 교회를 깨운다'는 담대한 희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담대한 희망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이었고, 초기 교회의 생존과 시작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이었으며, 개신교 종교개혁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불과 백수십 년 동안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 기독교가, 지금의 흔들림과 모욕 때문에 믿음의 희망을 잃고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 방법의 한계가 나타나면 고치거나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고, 이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뚫으면 됩니다.

지금 수만의 목회자와 수만의 교회가 상당한 곤경에 빠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수십만 수백만의 진지하고 열심 있는 기독교인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물론 평신도라는 존재는 완전하지 않고, 오히려 연약하며 부족합니다. 신앙적으로도 수동적이고 신학적으로도 이해가 얕고, 생활적으로도 너무 바쁘고, 조직적으로도 빈약하고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평신도들이 세상 속에서 모여 서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대답을 찾고 실천을 시작하면 됩니다. 혼자서는 할 수도 없고 쉽게 지치고 절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럿이서 뜻을 모아 함께하면 지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좌절하거나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돌아가면서 서로 도와 가면서 해 나가면 됩니다.

이미 몇몇 단체 몇몇 군데에서 여러 사람이 이런 집단적 노력을 상당 기간 시도하면서, 평신도 신앙 운동 가능성과 자신감, 희망의 싹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면서 이 사회의 각 곳, 각 지역, 각 분야에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용기를 내고 더 넓게 힘을 모으면 됩니다. '평신도가 교회를 깨운다'는 오늘의 소망은 담대하지만 무모한 소망이 아니며, 이 길도 막히고 저 길도 막히고 답답하고 절망감을 주는 오늘의 시점에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소망입니다.

'평신도의 상상력',
첫 번째 이야기의 시작

이런 취지로 '평신도들이 주체적으로 만나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좋은교사운동, 기독법률가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경영연구원 등 한국교회의 평신도 대중 단체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평신도의 상상력', 약칭 '평상平床'이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연합 토론회를 마련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앞으로 매년 분기별로 3개월마다 토론회를 만들고 여러 이야기와 주제를 통해 평신도들의 집단적 고민과 깨달음, 질문과 대답을 차분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축적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교회에서는 마이크도 없이 수동적으로 앉아 듣기만 했던 평신도들이 모여서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토론하면서 대답을 찾는 자리입니다. 평신도들의 마이크입니다.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평신도의 상상력' 첫 번째 이야기는, 부활절 하루 전인 2019년 4월 20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합니다. 제목은 '기독교는 왜 욕을 먹는가'입니다. 욕먹는 기독교에 대한 평신도들의 신앙적 고민과 책임, 평신도 신앙의 구체적 회개와 회복 방안을 다 함께 논의하고 찾아가는 자리로 만들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욕먹는 기독교와 평신도의 고민'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제('한 사람의 상상력' - 이병주 변호사)가 있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신뢰운동본부장 조성돈 교수, 좋은교사운동 강영희 선생, 기독경영연구원 김세중 부원장, 기독법률가회 조원익 변호사의 패널토론('여러 명의 상상력')에 이어, 참가자 모두가 조별 토론을 통해 각자의 상상력을 '우리들의 상상력'으로 만듭니다. 이후 전체 토론을 통해 '모아지는 (평신도의) 상상력'으로 다시 세상과 교회로 나아가는 순서로 진행될 것입니다.

기독교를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우리의 신앙을 고민하고, 한국교회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형제자매들을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평신도의 상상력 첫 번째 이야기'에 초대하며 환영합니다. 현장 토론에도 적극 참여해 주시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라이브 등 온라인 토론에도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많은 토론에도 주인공이 되어 주시기를 초청합니다.

그동안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던, 그리고 무언가를 해 보고는 싶지만 무언가를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던, 한국교회의 진지하고 용감하고 착한 평신도 형제자매들이 다 함께 힘을 내서, 하나님을 믿고, '평신도가 교회를 깨우는' 새 역사를 만들어 보자고 권유하며 도전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노력과 회개를 통해 우리 각자의 신앙과 한국교회를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뜻을 이 땅 위에 탄탄하게 이루어 나가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이병주 / 변호사, 기독법률가회 사무국장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평신도의 상상력(평상)' 모임 안내

※첫 번째 이야기: 기독교는 왜 욕을 먹을까
※공동 주최: 좋은교사운동, 기독법률가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경영연구원
※일시: 2019년 4월 20일(토요일) 오후 2시~5시 30분
※장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창비서교빌딩 지하 2층(6호선 망원역 1번 출구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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