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수 지원 자격을 '본교 건학 이념에 부합되는 기독교인'으로 한정한 숭실대학교(황준성 총장)가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사건은 2017년 10월, 한 민원인이 "숭실대가 교직원을 뽑을 때 교인 혹은 세례 증명서를 필수로 제출하도록 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내면서 시작됐다. 그는 "교직원 직무 수행에 종교가 불가결한 요소가 아님에도 기독교인만 교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은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숭실대가 교직원 지원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공공 교육이라는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지 종교 지도자 양성 기관이 아닌 점 △교육부 감독을 받는 곳으로 종교 단체와 구별되는 점 △교직원들의 업무가 영적 또는 종교적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이 없는 점 등이 이유였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10일, 숭실대에 이같이 권고했다.

인권위 권고를 전달받은 기관은 90일 이내에 권고 이행 계획을 회신해야 한다. 숭실대는 2019년 2월 25일,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된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교직원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학교법인 정관 1조에 "기독교 신앙과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에 의거하여 국가와 사회 및 교회에 봉사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고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인권위는 정관 1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에 의거하여"라는 부분이 숭실대의 주장과 충돌한다고 봤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을,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교육기관이 종교를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 헌법·국가인권위원회법·직업안정법 등을 지키지 않는 것은 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은 교육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인권위 권고는 강제성이 없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경고 의미를 지닌다. 숭실대가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인권위는 지난 3월 중순 위원 11명 전체가 참여하는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인권위는 숭실대 사례가 종교를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내용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숭실대학교는 신규 교원을 채용할 때 출석 교회, 세례 여부를 필수 요소로 확인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교 사학이 건학 이념 수호를 내세워 기독교인만 교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은 숭실대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과거 숭실대학교와 한 학교였다가 분립한 한남대학교 역시 교직원 자격을 '세례교인'으로 제한해 왔다.

한남대도 이 문제로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 2005년, 건축학과 교수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려던 한 비기독교인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기독교 대학이긴 하지만, 건축 같은 일반 학문까지 꼭 기독교인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권위는 한남대의 교수 자격 제한이 종교를 바탕으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해 시정 권고를 내렸다. 역시 한남대가 △기독교학과가 있기는 하지만 종교인 양성 기관, 즉 신학대학교가 아닌 일반 종합대학이라는 점 △설립 목적 또한 기독교인 배출과 목회자 양성이 아니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유능한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한남대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남대는 교수 채용 시 지원 자격을 세례교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두 대학은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한 대학이기 때문에 건학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만 채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학교는 기독교 학교이면서 동시에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고등교육기관이다. 2017~2018년도 회계 기준으로 숭실대는 약 262억 원, 한남대는 약 353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이는 모든 국민의 세금이라고 볼 수 있다.

한성대학교 이사장과 동덕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는, 기독교 이념으로 설립한 학교는 나름의 기준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자율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손봉호 교수는 4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 세금을 받아 운영하게 되면 특정 종교를 이유로 자격을 제한하면 안 된다. 그건 기독교 대학뿐만 아니라 불교 대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동덕여대 이사장직무대행을 지낸 바 있는 박경양 목사(평화의교회)는 숭실대의 행보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숭실대가 내세운 건학 이념이 '우리는 기독교인만 받겠다'는 게 아니지 않나. 최근 숭실대의 행동은 보수화하는 한국교회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박경양 목사는 숭실대가 기독교 정체성을 내세우며 기독교인만 채용하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목사는 "한국은 이미 다종교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종교를 바탕으로 타 종교인 혹은 종교가 없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가. 학교에서 이런 행동을 정당화한다면 소위 기독교 기업이라는 곳들도 그렇게 할 때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런 행동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종교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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