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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은 멀지만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까닭은
나의 고대 동방 기독교 유적 답사기(3)
  • 성기문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4.11 18:33

<뉴스앤조이> 기록을 뒤져 보니, 이 기획 원고를 2회 연재하고 중단한 것이 어느새 13년 전, 즉 2006년 8월의 일이었다. 지난 글에서, 내가 고대 동방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1회)와 국내 유물 전시장(2회)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한반도에, 심지어 통일신라 시대에 경교景敎가 어떤 형태로든지 도래했고 그 증거가 있다는 주장은 김양선 목사가 언급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찬반양론 가운데 있다.

물론 기독교인이 한반도를 방문했거나 일시적으로 살았다고 그것을 공식적 선교(전도)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 경교도가 한반도에 머물렀는가, 일시적으로 혹은 간헐적으로 복음을 전했는가는 더욱 단정하거나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에서 경교 연구가 100여 년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는 외부로부터 기독교인이 한반도에 복음을 전했고 토착민들이 그것을 믿었으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당시 연재가 중단된 것은, 비록 서안(예전에는 장안)과 베이징 기독교 유적지를 수차례 답사했지만 참고할 자료가 여전히 빈약했다는 점도 있었고, 필자 자신의 지식이나 연구가 대단히 부족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일본의 사에키 요시로佐伯好郞 선생이나 중국의 주겸지朱謙之 선생의 경교 연구가 주를 이루었고, 국내 연구자들과 그들의 저작은 직접적 증거도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이나 한반도 내 경교의 영향력을 부풀리는 데 몰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빈약해 보이는 자료들도 고대어들과 현대 외국어들로 작성됐다. 검색하거나 직접 읽는 데 장애와 한계가 많았다. 그러면서 필자가 다른 일에 매진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마음만 남아 관련 서적들을 구매만 할 뿐 원고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던 이 연구는 최근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고대 동아시아 경교 연구에 대한 새로운 조망과 그동안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다. 새로운 조망은 유럽과 중국 모두에서 나타나는 경교 자체에 대한 연구의 증가와 경교의 존재 정황에 대한 연구의 증가 모두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동안 경교 연구는 외부 먼 나라 종교인데도 당나라에 의해 쉽게 받아들여졌고 쉽게 전파되었다는 특별한 종교였다는 점만 고려됐다. 이것이 과연 신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실제 역사적 사료들과 연구를 통해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었는지 검증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단지 중국 황제들이 기독교인이었다거나, 당나라가 기독교 국가였다는 신뢰하기 어려운 단정적 결론 혹은 전제로만 사용됐다.

사실 경교의 급속한 전파와 급속한 퇴락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이와 같은 놀라운 현상은, 아마추어 연구가들이나 학술 논문을 통해 당 정권과의 타협 결과였다느니 중국 문화에 대한 타협 결과였다느니 하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이 비록 기독교인들의 '상식' 속에서는 수긍이 되는 평가였지만, 실제 역사적 사료나 문화 현상 측면을 고려할 때는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동아시아, 특히 중국 당대 경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선입견을 재고하거나 폐기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당나라는 외부 종교를 어떤 관점으로 이해했고 어째서 받아들였는가 △정말 경교는 당나라에서 급속도로 흥왕했는가, 만약 그랬다면 어째서 그러한 독특한 현상이 가능했겠는가 △정말 경교가 당나라에서 급속도로 퇴보했는가, 만약 그랬다면 어째서 그러한 독특한 현상이 가능했겠는가를 물어야 했다. 종교가 정권의 비호하에, 혹은 정권의 탄압하에 처하는 현상은 단지 과거만의 일은 아니었다. 이러한 종교적 예속성은 현재도 발견되고 확인되는 것 아닌가.

경교의 확장과 쇠락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은 경교가 중국 문화와 어떤 관계였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교가 지나치게 외래 종교였기 때문에 쉽게 망했다고 보고, 다른 사람은 경교가 지나치게 중국에 동화되어 망하게 됐다고 보기도 한다. 후자의 증거로는 경교 비문이나 문서에 자주 등장하는 불교나 도교 혹은 심지어 유교적 용어들을 든다. 사람들은 이것이 경교의 혼합주의나 토착화의 부정적 측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는 명 말과 청 초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 선교를 할 때 다시 한 번 논란거리가 됐다. 조선 시대 말 서양 개신교 선교사들이 성경을 번역하면서, 혹은 일제강점기 때 기독교인들이 유불선 삼교, 전통 문화와 대결할 때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또한 선교 시대에 한국인 선교사들이 해외 피선교지에 가서도 동일하게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피선교지에서 외래 종교로 남아야 하는가, 현지 종교가 되어야 하는가.

결과론적으로 경교가 당나라에서 사라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오래전 일이니 재고의 여지가 없다거나 무의미한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교나 문화 혹은 토착화 측면에서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이와 같이 경교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혹은 재고가, 과연 고대 동아시아에서 흥왕했던 경교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할 기회가 될 것인가. 재고해서 교훈을 얻으려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경교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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