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도 이제 결혼할 때 다 됐네. 언제 시집갈 거야? 갈 거면 빨리 가."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대 중반을 넘어서자 교회 어른들은 그동안 하지 않던 인사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때는 딱히 대응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며 상황을 모면했다. 내공이 좀 더 쌓인 30대 초반, 다른 대응 방법을 찾았다. "이제 부모님 걱정 그만시키고 결혼해야지"라는 말에 "그러게요. 기도 좀 해 주세요"라며 넉살 좋은 웃음을 날렸다.

이제 그만할 법도 된 것 같은데, 교회 어른들의 '결혼 확인' 인사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다르게 답했다. "은혜야, 좋은 소식은 대체 언제…"라고 물어 오면, "누구라도 소개는 시켜 주시고 그런 말씀 하세요"라고 (살짝 정색하고) 웃으며 응수했다. 내 나름대로 살길을 찾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자발적으로 비혼非婚을 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든 어떻든 교회에도 '싱글'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싱글을 보는 관점은 '결혼 못 한 사람'이라는 과거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최근 <싱글 라이프>(아르카)를 펴낸 심경미 목사(53)는 "교회가 좀 더 넓은 품으로 싱글과 함께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심 목사는 지난해 12월, 이 책 서론이라 할 수 있는 '교회는 왜 싱글들을 배려하지 않는가'를 시작으로 관련 글을 네 차례 <뉴스앤조이>에 게재한 바 있다.

심경미 목사는 '싱글'의 삶에 관심이 많다. 그는 한국교회가 싱글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심경미

한국교회에서 '싱글 라이프'를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목회자는 그리 많지 않다. 심경미 목사는 어떻게 싱글 라이프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심 목사는 지난해 신당중앙교회(정영태 목사)에서 사역을 마치고 현재 책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 장충동 한 카페에서 4월 5일 심 목사를 만났다.

- 한국교회 목회자 대부분은 결혼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결혼하지 않으면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교단도 많다. 이런 현실에서 싱글로 사는 삶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나는 20대 후반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예수를 영접해 교회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교회를 다니다 보니 교회 사람들이 물어보는 게 비슷했다. "결혼은 왜 안 하니", "언제 결혼할 거니" 등등, 그런 질문을 계속 듣다 보니까 그에 대한 답을 해야겠더라. 그래서 30대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여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30~40대 비혼 여성에 대해 공부했다.

공부하다 보니 이것이 현대사회에만 있는 일도, 나 혼자 고민한 문제도 아니더라. 그것을 알게 되면서 자유함을 얻었다. 삶의 무게중심을 '결혼'에만 둘 게 아니라 인생을 길게 보고 구체적으로 계획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결혼하겠지' 하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결혼과 관계없이 현재 삶을 살아가는 나를 더 알고 사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싱글 라이프'에 대한 개념을 나름대로 세우게 됐다.

- '싱글'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말인가.

책에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비혼'이라는 단어 역시 결혼 여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단어다. 하지만 '싱글'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나의 상태를 그대로 설명한다. 싱글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태어날 때도 혼자 태어나고 죽을 때도 혼자 죽지 않나. 인생 주기 전체를 놓고 볼 때, 언젠가는 결혼할 수도 있지만 이혼·사별 등으로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비혼보다는 싱글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저는 결혼 상태에 있지 않은 사람을 '비혼'보다 '싱글'이라고 부르기를 개인적으로 선호합니다. 비혼도 어쨌든 결혼과 연관된 단어로서 나의 상태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상태가 결혼과 연관되어, 혹은 비교되어 규정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혼보다 싱글을 선호합니다." (21쪽)

- 한국 사회 특히 한국교회에는 혼기가 지나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을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는 시선이 있다.

'싱글 라이프'는 벗어나거나 탈피해야 할 삶이 아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존중받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이다. 싱글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하는 문화가 주는 두려움을 탈피할 때 자신이 주도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현재 싱글로 사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이 결혼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결혼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까 지금 자기 상태가 어떤지, 뭘 원하는지 물어보면 정작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삶이라고 해도 내가 삶의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

두려움을 탈피하려면 먼저 내가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한번쯤은 결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거다. 결혼과 동시에 내 자아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결혼해도 바뀌지 않는 게 맞다.

심경미 목사가 사역하면서 만난 다양한 싱글들 이야기를 풀어낸 <싱글 라이프>에는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이 담겼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책에 실제 싱글들 사례가 많이 들어가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책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부목사로 9년간 사역하면서, 교인들과 부대끼고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곳인지 알게 됐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오래 교회에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교회 현장에서 지내면서 직접 만나고 목격한 사례를 담았다. 교회는 유독 싱글을 배려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아빠, 엄마,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교회에서 사역하다 보니 가족 구조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 구조로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부모 가족도 많다. 교인 구성이 이렇게 다 다른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 외 사람들은 전부 배제하게 된다.

"교회 공동체에는 결혼한 사람, 이혼한 사람, 사별한 사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좀 더 마음을 열고, 다양한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서는 고아와 과부, 곧 사회적 약자의 삶을 배려하라고 요청합니다. '왜 고아와 과부를 배려하라고 요청할까?'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가족과 결혼 제도에서 소외된 고아와 과부를 무례히 대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고아와 과부를 알아서 잘 존중해주고 함께 어울려 살았다면, 굳이 이들을 보호하라고 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93쪽)

- 책을 읽어 보니, 꼭 결혼한 적 없는 싱글만 배려해 달라는 건 아닌 것 같다.

교회가 신봉하는 '정상 가족' 범주에 들지 않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교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매너 있게 대하려면 교인들의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싱글 라이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다. 주변을 돌아보면 싱글로 살아가는 사람, 싱글의 부모, 싱글의 자녀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나 역시 30대 초반까지는 싱글을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나의 이야기이며, 인생 주기에 따른 삶의 한 양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을 접하는 사람들도 교회에는 다양한 이유로 싱글로 사는 교인들이 있음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 '싱글 친화적 교회'가 가능할까.

한국교회 교인들은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자는 데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공부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한다면 한국교회가 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 많은 교회 공동체가, 이제는 더 넓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싱글을 품어 주고 곁을 내주는 곳이 되면 좋겠다.

"싱글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이며 긍휼입니다.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내 모습 그대로 나를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교회 안에서 싱글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나 견해를 마치 하나님의 마음인 것처럼 전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싱글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르게 인식하고, 싱글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합니다." (246쪽)

<싱글 라이프> / 심경미 지음 / 아르카 펴냄 / 256쪽 /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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