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적 의미로서의 독립 교회

지금이야 교단의 간섭 없이 교회를 운영하는 형식을 표방한 '독립 교단'이 존재하지만 한길교회가 설립될 1957년, 곧 해방과 6·25 전쟁 직후 상황에서 독립 교회는 감히 생각하거나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길교회는 이른바 3무를 표방하며 '예수 정신을 따르는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던지는 교회 활동의 시금석을 본격화했다. 교파, 유급 목회자, 그리고 예배당 없는 교회 구현에 대한 고민이 그것이다.

물론 지금의 한길교회에는 예배당이 있다. 유급 목회자도 상주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 해서 한길교회가 선택했던 초기의 3무 의지 자체가 변질했다고 볼 수는 없는 신앙 의지가 계속되고 있다. 이 의지는 필연적으로 교회 예배당 건축물 구현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건축물은 공간 점유를 목적으로 한다. 그 점유 가치는 건축물의 존재 이유와 규모를 결정하는 정체성과 정비례한다. 예배당 건축물의 존재 가치는 종교가 추구하는 전통성과 궤를 같이하는데, 그 궤를 추적하다 보면 근원적인 종교 건축물의 지속 의지 천명으로 귀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길교회가 추구하는 전통성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정신을 추구하는 그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사람마다, 교파마다 예수 정신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배제할 경우 하나의 정서적 공통분모가 도출되는데, 그 공통분모의 한 축에 무교회주의, 혹은 예수 본연의 정신 추구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예배당 전경.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교 한길교회는 1957년 교파에 속하지 않는 교회로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우치무라 간조,
그리고 김우현 목사

<성서조선>, 그리고 무교회주의로 대표되는 우치무라 간조에 대한 가치 평가는 비교적 편차가 큰 편이다. 진정한 예수 정신에 집중했다는 평도 있지만, 그다지 본받을 만한 예수 정신의 발로는 아니라는 평도 있다. 당대의 정치사상 조탁이라는 비난도 받는 편이다.

하지만 무교회주의, 그 원의元意를 관통하는 정신적 결의만큼은, 성서의 가치만으로 혹은 예수의 가치만으로 대표되는 최소주의 흐름에 잇대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 최소주의 흐름은 1966년부터 한길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우현 목사도 뜻을 같이했다.

김우현 목사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신학교에 입학해 공부한 뒤 귀국 후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927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안동교회 4대 목사로 부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안동교회 목사 부임 시절 그의 나이는 30대 초반, 비교적 젊은 나이였음에도 교회 주보를 처음 발행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1)

이러한 김우현 목사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영향을 받았던 사상이 무교회주의였다.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서일 뿐이며, 교회와 그 관습은 기독교를 담아내는 껍데기."

그리스도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금언과도 같은 위의 신조가 바탕이 된 무교회주의는 김우현 목사 신앙 정신에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무교회주의의 흐름은 예수 정신의 유일한 계승을 목표로 하는 한길교회 흐름과 맥을 같이했다. 그 순간순간이 한길교회의 오늘로 이어져 온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전통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 은혜로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고 유급 목회자를 두지 않으며 교회당을 짓지 않겠다는 3무의 의지로 시작한 교회. 한길교회는 이후 소위 말하는 기성 교회와 비슷한 조직화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길목마다 자신들이 세운 교회 설립 정체성을 고려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놓지 않는 의지 또한 지속해 온 것을 보게 된다.

교인들 투표를 통해 교회 명칭이 결정되는 과정, 1958년 당회장·장로·집사 등으로 구성된 기성 교회의 제도가 가진 단점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교회 위원을 선임하는 등의 활동들이 교회 설립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우치무라 간조, 김우현 목사 등으로 연결되는, 제도와 교리를 우선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밑바탕을 계승해 온 태도 또한 조직화의 길목마다 한길교회가 보여 준 정체성 숙고의 흔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한길교회가 예배당을 신축하기로 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 중에 앞서 말한 정체성 숙고의 흔적이 절정에 이른다.

정체성 숙고의 절정,
교회 건축

한길교회는 예배당 신축을 결정한 뒤 건축의 원칙을 그들 스스로에게 천명하고자 한다. 교회 예배당을 짓되 아름답고 정결한 교회당을 유지하겠다는 의지, 이웃 주민들에게 교회 건축물 자체가 공해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의지를 주요 원칙으로 천명한 것이다.

여기에 한길교회는 교회 건축의 가장 중요한 핵심 변수인 건축비 조달에 관해서도 원칙을 제시했다.

결코 헌금을 강요하지 않는다. 건축 헌금을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돈에 국한한다. 특히 소요 건축비 총액을 단 한 번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 이러한 의지가 바탕으로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예배당 신축을 향한 비전은 최소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교회 건축 원칙으로 스며든 것 중 하나가 아담하고 가족적인 분위기 조성이었던 것도 그 고민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에 위치한 한길교회 예배당은 여느 예배당 건축물보다도 검소하고 단출한 외형과 구성 요소를 갖고 있다. 적벽돌로 조적한 교회 외관에서 풍기는 단아함으로 시작된 교회 분위기는 작고 아담한 교회 마당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흡사 도심이 아닌 지방 소도시의 한 교회를 떠올려도 전혀 어색할 게 없는 분위기의 여일함은 교회 건축물을 통해 어떠한 자기과시나 독자적 성스러움을 표현하려는 의도 자체를 소거하는 의지로 충만했다.

교회 내부 역시 마찬가지다. 대지 160평에 건물 120평 규모인 결코 크지 않은 예배당 내부는 고전적이라 할 만큼 전통적이었다. 단출한 장의자, 낮은 강대상, 소박하지만 정결한 화분 등이 놓여 있는 형국이 그 전통의 검소함을 대표하고 있다. 벽면 내부에 있는 일정한 간격의 적색 장식 기둥이 유일한 특징이라면 특징일지도 모르는 한길교회 예배당 안팎은 이렇듯 신축하기로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다짐한 건축 원칙을 지켜 낸 결과물이다.

외관은 적벽돌로 조적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 경우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건축학적, 혹은 미학적으로 딱히 특정할 만한 것 없는 예배당 건축물에 대해 무엇을 평한다는 것인가. 평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기서 교회 건축 평론에 대한 제질문諸質問은 한 층위 더 깊이 파고들 것을 요청받는다.

예수 정신, 그리고 원칙

한길교회가 마지막 건축 원칙으로 천명한 것이 있다. 바로 한국교회가 유일하게 존중해야 할 가치인 종교개혁적 소임을 다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표현한 결과물이 교회 머릿돌에 종교개혁일인 10월 31일을 새겨 넣는 것으로 표현됐다.

종교개혁은 어디서 시작했는가. 예수 정신 회복에 근거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 정신의 원형을 탐색하고 인간 존재의 본령 또한 예수 정신에 뿌리내리려는 태도는 개신교회 핵심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종교개혁의 모태는 예수 정신, 그중에서도 말씀 선포다. 말씀 선포의 강고한 본령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으려는 영적 집념이 개신교회 안팎의 문화와 공간 점유 가치로서의 예배당 미학을 결정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길교회가 선택한 예배당 미학의 궁극엔 무교회주의 사상 저변에 흐르는 최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제반 요소의 고려 없이 최소주의 관점만으로 볼 때, 한길교회는 절정의 미학을 성취하고 있다. 예수 정신의 온전한 구현 외에는 관심 두지 않으려는 태도, 그 태도가 미학적 표현으로 적실히 구현된 현장. 한길교회는 바로 그 현장의 한복판에 서 있다. 외롭거나, 더없이 충만하게.

1) 김우현 목사에게도 그늘이 있다. 그는 3·1 운동 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하지만 일제 말기, <기독교신문> 사장을 지내면서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등 전쟁 지원을 위해 조직된 단체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등 일제에 협조한 행적 때문에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중 종교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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