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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고려인, 어디 사람?
  • 희정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4.02 13:05

고려인은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등에 거주하는 한민족이나 그들의 후손을 이르는 말입니다.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에 연해주 지역으로 대규모 이동하여 정착, 이후 1937년에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을 포함 세계 각지에 80만 명의 고려인이 있다고 추정됩니다.

'고려인독립운동기념비' 건립 비용 모금을 위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펀딩 사이트 '같이가치'에 공동 게재되고 있습니다. 고려인독립운동기념비 건립은 연해주 등지에서 이뤄진 고려인의 항일 항쟁 역사를 대한민국 땅에 기록하기 위한 것입니다. 낯선 땅에서 굴하지 않고 삶을 지켜 낸 이들, 더 나아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러나 이름 없이 잊힐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작업에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5만 명의 고려인독립운동기념비 건립자가 되어 주세요. - 고려인독립운동기념비건립국민추진위원회

후원 참여: 신용협동조합 131-017-209819 안산희망재단
기념비 건립 모금을 위한 스토리 펀딩 사이트 바로 가기

국경 너머의 고려 사람

1863년, 연해주 노보고르드스키국경감시소 담당관은 군 총독에게 짧은 보고를 한다.

"한인 13가구가 빈곤과 굶주림 및 착취를 피하여 비밀리에 남우수리스크 포시예트 지역의 치진헤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 보고서는 후에 러시아 극동 지역의 한인 거주 사실을 담은 최초의 공식 문서가 된다.1) 당시는 조선 말기, 같은 해 12살 왕(고종)이 등극한다. 몇 해 뒤 대홍수가 북부 지방을 덮치고 굶주린 사람들은 세금 수탈이 없는 비옥한 땅을 찾아 어디든 가야 했다. 국경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연해주 지역에는 어느새 러시아인보다 더 많은 조선인들이 모여 살게 됐다(1890년 말 러시아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조선말을 하는 사람이 2만 6005명이라 한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벼를 경작하며 자신들을 '고려 사람'이라 불렀다. 러시아어로는 카레이스키(корейский). 번역하면 '코리아' 사람. 우리는 이들과 그 자손을 '고려인'이라 부른다.

반복되는 삶, 잊혀진 이야기

150년 후, 고려인들은 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강제 이주와 소비에트연방 붕괴 등 이들을 둘러싼 역사는 삶의 터전을 자꾸만 휩쓸고 가고, 이주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이들의 증조모는 조선에서, 조부모는 극동 연해주에서, 부모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났다. 도돌이표처럼 그 자신은 부모가 조선 땅이라 부르던 한국에 온다. 종일 낯선 땅을 개간하던 고려인 1세의 역사는 변두리 공장 담장 안에서 반복된다.

이들은 일터에서 질문을 받는다. "어디 사람이냐." 우즈베키스탄 (등) 국적을 가졌으나, 러시아 말을 쓰고, 조선의 문화를 지녔다. 답하지 못하고 서툰 한국말로 되묻는다.

"나는 러시아 사람인지, 우즈베키스탄 사람인지, 한국인인지."

그의 혼란은 '이곳에선' 중요하지 않다. 국내 8만 명이 있다고 추정되는 고려인들을 우리는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 체류 자격 등 비자와 각종 정책은 고려인들을 공단 옆 가난한 동네에 몰아넣고, 저렴한 노동력으로만 존재하게 한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고려인 4세는 역사 수업 시간에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안중근 의사도 고려인이라는 사실 아세요?"

(안중근 의사는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했다. 고려인 1세대라고 부를 만하다. 당시 연해주 일대에 항일 의병으로 참가한 고려인 수는 1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저 그 한마디. 교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외국에서 왔기에 말이 어눌하고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이 하는 소리일 뿐이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듣던 수많은 고려인 선조들의 이야기는 '이곳에' 머물지 못한다.

1910년 3월 24일 안중근 의사가 순국 이틀 전에 유언을 남기는 장면. 두 아우 정근, 공근과 프랑스인 홍석구 신부가 곁에 있다.

어디 사람, 존재하는 사람

이야기는 머물지 못해도 사라지진 않는다. '내가 어디 사람인지' 묻는 이들은, 그러나 1세대 고려인을 기억한다. 항일 항쟁에 참여했다는 자부심, 강제 이주의 슬픔, 개척의 자부심, 변주를 거듭해오며 지켜낸 문화와 공동체… 이 모든 이야기는 가슴에 켜켜이 쌓여 자신들의 역사와 정체성, 그러니까 '고려인'을 만들어 왔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어 안중근 의사를 언급한 고려인 4세는 '고려인'이 여기 존재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들의 지나온 역사는 이야기되지 않고, 이들의 현재는 논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무심함과 이들의 '존재'가 연재를 시작한 이유이다. 4세대에 걸친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 삶을 여덟 번의 이야기에 담고자 한다.

다음 이야기: 3차례의 이주, 4세대의 삶(1)

1) Ким Сын Хва, Очерки по истории советских корейцев. Алма-Ата, 1965.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의 원인과 과정>(이원용 동국대 연구교수, 2011)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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