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국은 '자살 공화국'으로 불린다.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2018년 자살 예방 백서>를 보면, 한국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자살률 1위다. 2016년 한 해에만 1만 309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36명 꼴이다.

자살은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가리지 않는다. 기독교는 자살을 금기시하지만, 신앙인 중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살 자체도 문제지만, 2차 피해도 심각하다. 크리스천 자살자 유가족의 경우 상실감에 더해 신앙적 죄책감에 시달린다.

기독교 자살 예방 센터 라이프호프(조성돈 대표)는 2011년부터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힐링 콘서트를 개최해 왔다. 유가족 돌봄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자살을 죄라고 정죄하기 전에 남은 유가족을 먼저 위로하자고 제안했다.

처음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예배를 드린다고 공지했을 때 교계 반응은 냉랭했다. "하다 못 해 지옥 간 사람들을 위해 예배하느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라이프호프는 물러서지 않았다. '목회 지도자 자살 예방 교육', '기독교 자살 유가족 연합 예배 및 문화 행사', '서울시 살사(살자사랑하자) 프로젝트'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실무는 라이프호프 사무총장 장진원 목사(도림감리교회)가 맡았다.

장진원 목사는 크리스천 자살자 유가족을 위해 교회를 개척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장 목사는 크리스천 유가족들에게 신앙적·목회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2015년 도림감리교회를 개척했다. 한 자리 숫자로 출발한 교회는 현재 아이·어른 합쳐 40여 명이 다닌다. 전체 교인 중 ⅓은 자살자 유가족이다.

도림감리교회가 있는 동네는 기성 장로교회와 이단으로 규정된 성락교회(김기동 목사)가 양분하고 있었다. 전도 경쟁이 치열했다. 개척 당시만 해도 이런 동네에서 '작은 교회'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장진원 목사는 3월 28일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작은 교회는 안 된다'며 우리 교인을 자기 교회로 전도하는 곳도 있었다. 교회에 '귀신'이 씌웠다며 시비를 거는 곳도 있었다. 무례함이 판을 쳤다"고 웃으며 말했다.

유가족을 위해 시작한 목회였지만, 지역사회도 염두에 뒀다. 교회 개척 전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장 목사는 "상당수가 교회에 반감이 강했지만, 충분히 섬길 수 있는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에 비해 낙후한 지역이고, 다문화 가정이나 독거노인 비율도 높은 편이었다"고 했다.

회심 연구하다 자살 문제에 집중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정신 건강 또는 삶의 고통 문제"

장 목사는 도림감리교회를 개척했을 당시 '작은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장진원 목사는 이중직에 가깝다. 일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자살 예방과 관련한 상담·강의 등을 한다. 평균 한 달에 5회 이상 자살자 유가족들을 상담한다. 개인·단체 등을 포함하면 1년 평균 100회 정도 상담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자살 예방과 관련한 활동은 10년 넘게 이어 가고 있다.

처음부터 자살에 관심을 둔 건 아니다. 목회사회학 박사 논문을 쓸 당시에는 '회심'에 관심이 있었다. 믿음을 고백하거나 표적을 받는 일차원적 회심이 아닌 한 개인이 완전히 변화하는 회심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이런 차원에서 마음을 바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극단적 회심일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장 목사는 "반대로 '진짜 회심'은 (자살을)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연구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장 목사가 돌보는 크리스천 자살자 유가족 상당수는 기존 교회에서 소외를 경험했다. 자살 문제를 쉽게 꺼낼 수 없어, 결국 스스로 교회를 떠난 이가 많았다. 보듬고 위로해 줘야 할 교회는 유가족을 부담스러워했다. 장 목사는 자살 자체에 왜곡된 인식을 갖다 보니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흔히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교리적 정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자살 문제는 믿음의 약함과 강함 문제도, 영적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이미 자살은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 삶 속에서도 예외가 없는 상황이 됐다.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정신 건강 내지 삶의 고통, 아픔의 문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전보다 '지옥 간다'는 이야기는 덜 나오는 듯한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자살자만큼이나 고통받는 유가족을 교회가 품어야 한다."

장진원 목사는 크리스천 유가족 중 장례 예배와 추도 예배를 못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살자를 위한 장례 예배 문제로 교회가 둘로 갈린 사례도 있다고 했다.

"교회가 유가족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자살을 교리적으로 정죄하기도 한다. 상실감과 죄책감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기 위해 노력하는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서라도 믿음을 놓지 않으려는 유가족의 몸부림은 고귀하다."

자살은 한국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장진원 목사는, 교회가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생명 구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영혼 구원도 중요하다. 다만 교회는 세상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자살의 원인이 되는 우울증·정신병 등을 복음으로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신, 자살 예방 캠페인 등을 진행해야 한다. 실질적인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면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도림감리교회 예배당은 지하에 있다. 장진원 목사는 지하라서 임대료가 싸고, 마음껏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다고 했다. 장 목사가 예배당에서 세미나 발제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도림감리교회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마다 유가족을 위한 '마음 이음 예배'를 드린다. 유가족 10명 정도가 참석하며, 예배 후에는 친교 및 상담을 진행한다. 간혹 유가족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추모 예배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도림감리교회에서 추모 예배를 대신 하기도 한다.

도림감리교회는 크리스천 유가족 자조 모임 '로뎀나무공동체'도 운영한다. 유가족들은 여기서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 장진원 목사는 "상처 입은 유가족이 삶의 희망을 회복할 수 있게 적극 돕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라이프호프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과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필요할 경우 방문 상담도 가능하다.

문의: 070-8749-2114(라이프호프 마음이음 상담 전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