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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100주년과 목소리 없는 사람들
[사건과 신학] 정의·인권·인류애 위해 연대해야
  • 박흥순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3.28 16:47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가 '사건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앙고백과 응답을 신학적 접근과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칼럼을 게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학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3·1 운동 100주년'입니다.

"저 여인 하나 구한다고 조선이 구해지는 게 아니오."
"구해야 하오. 어느 날엔가 저 여인이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지난해 방영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최유진과 고애신이 나누는 대사 중 하나다. 일본군에게 폭행당하는 조선 여인을 구하려고 나서는 고애신이 자신을 막아선 최유진에게 반문하는 장면이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로 빼앗기고 잃어버린 나라를 구하는 일에 빈부귀천과 남녀노소가 없다는 외침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선뜻 나섰던 그 선택이 정말로 옳은 결정이었는가.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묻게 된다.

한국교회는 3·1 운동 100주년을 어떤 방식으로 기념했는가. 한국교회는 당연하게도 연합해서 100주년 공동 예배를 드리고, 기념 세미나와 심포지엄 그리고 창작 오페라와 음악회 등 문화 행사를 진행했다. 청년과 청소년 참여를 독려하며 구국 기도회를 열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외치고 애국가를 불렀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100주년을 기념하며 3·1 운동 당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며 자랑스럽게 기억했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특별하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한국교회와 신자에게도 특별하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특별한 것은 그 정신과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특별한 방식과 관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특별했는가. 교단을 대표하는 목회자와 신학자, 학자와 전문가 목소리는 두드러지게 전면에 나타났다.

100년을 기념하고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는 중장기 계획이나 프로젝트를 기대한 것은 순진한 일이었을까. 개인 영역에 머물고 있는 관점을 공동체 영역으로 확장하는 사회적 함의를 꿈꾸는 것은 비현실적인가. 최소한 3·1 운동을 통해 온 세계에 외치려 했던 '정의'(justice), '인도주의'(humanism/human rights), '인류애'(cosmopolitanism)라는 핵심 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계획이나 행사가 한국교회와 신앙 공동체에 구현되길 기대했다. 3·1 운동 정신에 비추어본 한국교회 현실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성찰하고, 반성하길 바랐다. 하지만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3·1 운동 당시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던 과거 기억을 다시 불러 되뇌며 감격해했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했던 대다수 중심에는 남성 목회자, 신학자, 학자가 있었다. 하지만 3·1 운동 당시 저항하며 해방을 꿈꾸었던 다양한 사람들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지식 계층이 독점했던 독립과 해방운동은 자연스럽게 신분이나 지식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확장됐던 것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을 포함한 민중 계층은 지식 계층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민족 독립과 해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았다. 분명히 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3·1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됐다. 따라서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간과 장소에 이 사람들이 전면에 드러났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으로 대표되는 민중 계층이 주도하고, 기획하고,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가 미흡했다는 것은 정말로 커다란 아쉬움이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민감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목회자와 신학자, 학자와 전문가가 독점해 왔던 중요한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민중 계층에 양보하거나 연대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사실 3·1 운동은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독립운동이자 해방운동이었다. 3·1 운동은 지식 계층과 신분이나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었던 축을, 학생·노동자·농민을 포함한 민중 계층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같이 인식을 확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주변과 주변부 사람들을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주변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또 다른 주변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결단하도록 요청했다. 주변부와 가장자리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코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주변부와 가장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했다. 3·1 운동은 계급, 성별, 신분, 인종을 초월해 협력하고 연대해서 만들어 낸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3·1 운동은 정의와 인권, 그리고 인류애를 만천하에 알렸던 저항운동이며 평화운동이었음을 기억한다. 적어도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정의'와 '인권' 그리고 '인류애'라는 핵심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계급과 차별을 넘어서 평화와 공존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3·1 운동 정신이리라. 지난 3월 17일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인천공항에 갇혀 난민 심사를 요청하는 앙골라 출신 루렌도 씨 가족을 포함한 난민과 이주민을 기억한다. 또한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에서 총격 테러로 죽음을 당한 50명 희생자를 추모한다. 한국교회가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려 한다면 '정의', '인권', '인류애'라는 가치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박흥순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 사건과신학팀,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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