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사랑의교회는 중요한 대법원 판결 두 개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오정현 목사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목사 자격을 결정하는 '위임 결의 무효 확인소송'이고, 또 하나는 사랑의교회 서초 예배당의 운명을 결정할 '도로점용 허가 처분 무효 확인소송'이다.

공교롭게도 두 재판 모두 1심과 2심에서 교회가 승소했지만, 대법원이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하면서 교회에 불리한 양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파기환송심에서 교회는 모두 패소했다. 대법원 최종 판단만 앞두고 있는데, 판결이 또다시 뒤집힐 확률은 매우 낮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오정현 목사 학력 의혹과 사랑의교회 서초 예배당 건축 논란을 정리했다. 더불어 최근 사랑의교회가 들고나온 '종교의자유' 탄압이라는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 살핀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한국교회에서 오정현 목사만큼 이력이 불분명한 목사도 없을 것이다. 40여 년 전 고등학교 이력부터 대학, 강도사 인허, 목사 안수, 박사 학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말끔하게 정리된 것이 없다.

오정현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이 말도 안 되는 의혹을 제기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은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근거가 있었고, 일부는 사실로 드러났다.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법원이 오정현 목사의 사랑의교회 위임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① 부산고 사칭 의혹
논란 일자 "검정고시 치렀다"

오정현 목사의 학적 중 '부산고'라는 기록은 총 2회 등장한다. 1986년 칼빈신학교 성적표(위)에는 'Busan High'라는 기록이, 2002년 총신대 학적부에는 '부산고 졸업'이라는 기록이 있다. 사랑의교회는 칼빈신학교 성적표의 경우, 부산에서 검정고시를 치렀다고 말한 것이 Busan High로 기록됐다고 주장한다. 또 주연종 목사는 총신대 학적부에 부산고 졸업 날짜, 군 복무 경력, 보증인 등 기재 사실의 80% 이상이 사실과 달라 신빙성이 없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사랑의교회 갈등이 가시화하기 전까지, 많은 교인이 오정현 목사가 부산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출신인 줄 알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오 목사가 직접 부산고 동문이라고 사칭한 음성이나 영상이 있지는 않지만, 그의 학적부·성적표, 설교 등을 종합하면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오정현 목사의 미국 칼빈신학교 성적표를 보면, 고등학교 학력(High School Attended)란에 'Busan High, Busan, Korea, Date of Graduation: 1974'라고 기록돼 있다. 이뿐 아니라 2002년 총신대 편목 과정을 이수할 당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신대원 학적부에는 '1977년 2월 25일 부산고등학교 졸업'으로 기재돼 있다.

오정현 목사는 설교에서 종종 '고등학교 시절'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온누리교회 부흥회에서 "나는 개척교회 목사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비 새는 집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2012년 7월 미국 헤브론교회 설교에서는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만 한 적이 없다. 나는 향토 장학금(부모가 보내는 돈)이 없었다. 그저 내가 벌어서 내가 공부해야 했다"고 말했다.

'학력 사칭' 의혹이 확산하자, 오정현 목사는 2013년 11월 사랑의교회 소식지 <우리>에 "이미 많은 분이 아시는 대로 저는 부산중학교를 입학하였고, 중학교 졸업 후 개인과 가정사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명했다. 이것이 오 목사가 처음 밝힌 그의 이력이었다. 실제 취재 결과 오정현 목사는 1974년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② 대학 입학 연도 '오락가락'
'관동대' 입학 의혹도 사실로

오정현 목사의 숭실대 입학 시기도 다 다르다. ①칼빈신학교 성적표는 1978년 ②숭실대 영문 성적표는 1978년 ③1982년 총신대 학적부는 1977년 ④숭실대 홈페이지는 77학번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 측은 오정현 목사가 1977년 관동대학교 입학 후 1978년 숭실대로 편입했기 때문에 기록이 다를 수 있다고 봤다. 관동대학교 입학 이력은 그간 드러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오정현 목사는 1974년 검정고시에 합격했기에, 곧바로 대학에 진학했다면 '75학번'이 되었어야 한다. 소문대로 그는 경희대에 입학했을까.

오 목사가 <인터넷 목회>(규장)라는 책을 낸 2001년.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교계 신문들에 실렸다. <국민일보> 2001년 3월 21일 '기독 출판계 국내 작품이 휩쓴다'는 기사에는 "경희대 영문과 출신인 오정현 목사의 저서에는 인문학적 지성이 배어 있다"고 나와 있다. <미주중앙일보> 2001년 8월 14일 '본국 기독 출판계 미국 바람'이라는 기사에도 역시 "경희대 영문과와 총신대를 졸업한 오정현 목사의 저서는 인문학적 지성이 배어 있고"라고 나온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는 숭실대(당시 숭전대) 영문과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 목사 저서의 저자 소개와 공식 홈페이지에는 '숭실대 영문과(B.A)'로 표기돼 있다. 현재 <국민일보> 기사는 "숭실대 영문과"로 수정됐으나, <미주중앙일보> 기사는 그대로 있다.

학교 이름이야 언론사가 실수했을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번에는 입학 시기가 제각각이다. 칼빈신학교 성적표에는 'Soong Jun Univ. 1978~1982'로, 1982년 총신대 학적부에는 '1977~1982 숭전대학교 영문학과 졸업'으로, 2002년 총신대 학적부에는 입학 날짜 없이 '1977년 2월 25일 부산고 졸업, 1982년 2월 23일 숭실대 졸업'으로 표기돼 있다. 숭실대 영문 성적표에는 'Date of Admission: March 6, 1978'로 기록돼 있다.

한편 숭실대학교는 2007년 홈페이지에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영문77)는 7월 16일, '숭실대학교 베트남 선교센터' 설립 기금으로 써 달라며 7000만 원을 본교 발전기금팀에 전달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오 목사는 숭실대 77학번, 혹은 78학번이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는 그간 대학 입학·생활 연도를 다 다르게 말해 왔다. 오 목사는 저서 <목회 트렌드 2000>(규장)에서 "대학 1학년 때인 73년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제자 훈련 사역을 배웠다"(231쪽)고 언급한다. 2006년 연변과학기술대 강연에서는 "제가 74년도에 대학 들어가서 OAT 카드를 배우고 난 후부터 매년마다 30년 이상을 이걸 했다"고 말했다. 2006년 세브란스병원 기독인의 밤 설교에서는 "제가 76년도에 대학생 시절일 때 강원도 예수원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4월 주일 설교에서는 "1975년 대학 생활을 하면서 신촌에 있는 선교 단체에서 제자 훈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헷갈렸을까. 그러나 보통 대졸자들은 자신의 입학 연도를 'OO학번'으로 기억한다는 점을 볼 때, 오정현 목사의 발언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정현 목사는 숭실대 입학 전 강릉에 있는 관동대를 1년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관동대 이력은 오 목사와 관련한 어떤 문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간 사랑의교회 교인이었던 황성연 PD와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갱신위)가 수차례 제기했던 관동대 입학 의혹에 대해, 사랑의교회 주연종 부목사는 3월 15일 기자와의 대화에서 "오정현 목사는 관동대 입학 후 1978년 숭실대에 편입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③ 목사 안수 놓고도 뒷말 무성
그가 받은 '강도권'의 정체는…

오정현 목사는 숭실대 졸업 후인 1982년,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한다. 성적표에는 1982년 개강 전 동계 강좌에서 예필(예습 필수) 과목인 헬라어를 이수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그는 1학기를 이수하지 않고 휴학계를 낸 후 미국으로 간다.

그는 미국에서 신대원 두 곳을 다녔다. 먼저 공부한 곳은 바이올라대학교(Biola University)의 탈봇신학교(Talbot School of Theology)다. 1982년 입학해 1986년 M.Div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했다. 이후 오정현 목사는 1986년 9월 칼빈신학교 Th.M 과정에 입학해 1988년 졸업했다.

오정현 목사는 1986년 10월 PCA(미국장로교회) 한인서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PCA에서 안수를 받으려면 강도사 인허를 먼저 받아야 한다. 오 목사는 칼빈신학교 재학 중, 신학교 소속 교단 CRC(북미주개혁교회)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아 이를 근거로 협력 교단인 PCA에서 안수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CRC는 2015년, 오정현 목사에게 준 인허는 '평신도 임시 설교권'이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평신도로서 설교할 권리를 받았다는 것이지, 목회자가 될 사람에게 주는 강도권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갱신위)는 이를 근거로, 오 목사가 강도사를 사칭했고 이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PCA가 목사 안수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문 표절은 유명한 이야기다. 오정현 목사는 1998년 남아공 포체프스트룸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에는 미국 바이올라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도 땄다. 그러나 이 두 박사 학위논문은 2013년 '표절'로 확인됐다. 이후에는 오 목사가 칼빈신학교에서 쓴 신학 석사 학위논문도 표절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PCA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1년간 강도사로 사역해야 한다. 오정현 목사는 CRC 교단에서 1년간 강도사 인허를 받았다며 이를 근거로 1986년 PCA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런데 CRC 교단 대표는 오정현 목사에게 부여한 강도권은 '평신도 임시 설교권'일 뿐, 교단 헌법에 규정된 정식 강도권이 아니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④ 총신대 편목 시기 '하버드'에
팩스 시험 보고 수석 합격
출석 안 해도 학점은 A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는 과정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PCA 소속인 오 목사는, 사랑의교회 담임목사가 되기 위해 예장합동으로 소속을 옮겨야 했다. 그는 2002년 총신대에서 편목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오 목사는 입학시험부터 특혜를 받았다. 그는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시험 당일 총신대에 오지 않았고, 미국 남가주사랑의교회 당회장실에서 FAX로 '원격 시험'을 치렀다. 당시 미국 시험을 감독했던 김용남 목사는 2018년 3월 <뉴스앤조이>에 "시험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고 말했다. 오정현 목사는 '수석 합격'했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2002년 오정현 목사 출입국 기록을 보면, 그는 2002년 3월 28일부터 2003년 3월 4일까지 342일 중 293일을 해외에 체류했다. 86%는 해외에 나가 있던 셈이다.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는데, 학점은 대부분 A 이상을 받았다.

같은 기간 오정현 목사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 과정(Resident Fellow)을 밟았다고 아예 자기 책에 써 놨다. 그는 저서 <통찰과 예견>(생명의말씀사)에서 "2002년 8월부터 2003년 2월 28일까지 만 7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집중해서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하버드에서 정말 지성의 욕구를 원 없이 푼 것 같습니다"(51쪽)라고 회고했다.

오정현 목사는 총신대 편목 과정을 이수하던 2002년, 총신대 대신 하버드대학교 연구 과정을 밟았다. 저서에서 그는 "의식의 리프레시를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2002년 8월부터 2003년 2월까지 7개월 간 "지성의 욕구를 원 없이 풀었다. 마음이 감동될 만큼 의식을 새롭게 하는 강렬한 지성의 햇볕을 쪼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석에서도 하버드대학교 재킷을 입는가 하면, 자신의 명함에도 하버드대학교 이메일 주소를 써 놓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⑤ 법원, 결국 "예장합동 목사 아니다"

갱신위 교인들은 2015년 6월, 위에 열거된 오정현 목사의 각종 이력 의혹을 총망라해 법원에 위임 결의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사랑의교회 손을 들었다. 1심에서는 재판부가 개입할 만큼 현저히 정의 관념에 반하지 않는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2심은 더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따져, 오정현 목사의 학력이나 이력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앞선 판결을 모두 뒤집었다. 2018년 4월, 대법원은 오정현 목사가 2002년 총신대 입학 당시 '일반 편입' 과정으로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해 다시 열린 서울고등법원 재판에서도, 오정현 목사가 예장합동 목사 자격을 아직 갖추지 못했으므로 위임 결의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는 다시 대법 판결을 앞두고 있으나, 이 판결이 다시 뒤집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랑의교회와 오정현 목사, 예장합동 교단은 급작스럽게 '단기 편목' 과정을 특별 개설했다. 3년간 없다가 갑자기 생긴 편목 과정 때문에, 오 목사 한 명을 위해 교단 전체가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결국 오 목사는 2월 25일부터 2주간 편목 과정을 수강했고, 사랑의교회는 노회에 오 목사 위임을 청원했다. 혹시나 대법원 판결이 불리하게 나오더라도, 오정현 목사가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직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오정현 목사는 예장합동 총회가 시행한 단기 편목 과정을 2주간 수강하고, 목사 자격을 확인받는 절차를 다시 거쳤다. 오정현 목사에게 제기된 의혹은 그를 흠집 내려는 게 아니라, 공인이자 교계 지도자로서 과거를 솔직하게 밝히고 정직한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오정현 목사 이력을 문제 삼는 것은 어떻게든 흠을 잡아 그를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목적이 아니다. 목사라면 투명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2013년 논문 표절이 드러났을 때, 사랑의교회를 비롯한 한국교회 교인들이 배신감을 느꼈던 지점은, 표절 자체가 아니라 오 목사의 반복되는 거짓말이었다.

학적부마다 기록이 다르고 오정현 목사 말도 오락가락이라고 지적하자, 주연종 목사는 너무 오래전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오 목사가 '1975년에 서울대를 다녔다'고 하면 의도적이겠지만, 말을 하다 보면 한두 마디는 엉킬 수 있다"며 "본인에게 물어보기보다는 각 대학 기관에 가서 확인하는 게 제일 정확하다"고 했다. 함께 있던 사랑의교회 커뮤니케이션실 관계자는 "숭실대 학적부 등을 검토해 추후 정확한 입장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오정현 목사는 자신에 대한 의혹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편목 교육 중인 총신대에서 3월 5일 만난 오 목사는 "나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과정을 다 밟았는데, 또 교육을 받고 있으니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죽어야지 생각하고, 예수님 보고 십자가 지는 마음으로 한다"고 했다. 오 목사는 기자에게 "마귀는 과거에 집중하지만 성령은 미래를 조명한다"면서, 과거 일에 더는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보자고 말했다.(계속)

오정현 목사는 옥한흠 목사의 부름을 받고 2003년 사랑의교회 2대 담임으로 부임한다. 사진은 2003년 8월 옥한흠 목사가 오정현 목사를 공항에서 맞는 장면.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심판대에 선 사랑의교회①] Mysterious Man
[심판대에 선 사랑의교회②] '영적 공공재'의 최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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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오정현 목사 '고교 시절', '대학 생활' 발언은 단순 말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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