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구약의 제의와 속죄 사상이 난해하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거나 익숙지 않은 표현들과 제의 절차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레위기 해설서와 아울러 중요한 사상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들을 구매해 읽는 일은 시대적 사명이라고 하겠다. 최근에 출간된 이 주제와 관련한 책 가운데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레위기의 속죄 사상>(CLC)은 저자가 2018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 '속죄제와 배상제를 통해 본 레위기의 속죄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제출된 철학 박사 학위논문을 개정한 것이다. 본서는 텍스트언어학을 바탕으로, 구약의 중심 가운데 중심인 속죄제와 배상제에 대해 사려 깊게 통찰한 결과물이다.

본서는 박사 학위논문 틀을 유지하나 이 주제를 연구할 때 반드시 다루어야 할 단어와 표현을 상세하게 다루는 풍부한 부록을 제공한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사상이 그 언어와 행위를 통해 구체화하고 적절하게 실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레위기 핵심 제의와 사상에 대한 연구 방법과 전개 방식은 적합해 보인다. 게다가 본서는 구약 제의 체계에 대한 좀 더 완전하고 성숙된 논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관심이 필요한 저작이다.

본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관련 본문에 대한 철저한 주해('석의적') 작업이다(제3부). 레위기에서 속죄제와 배상제를 다루는 중심 본문은 레위기 4:1-5:26이다. 속죄제는 4장과 5:1-13에 등장하며 배상제는 5:14-26에 등장한다. 저자는 배상제도 함께 이해하고 있어야 속죄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양자 사이 차이점과 유사점에 대한 훌륭한 분석과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석의 연구는 텍스트언어학에 따라 원문 → 구조 분석 → 본문 주해 등의 순서를 통해 세부적으로 행해졌다. 본문의 세밀한 해석에 관심을 가진 독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추가적으로 다른 본문들에서 등장하는 배상제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끔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마지막 특징은 부록에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최근 몇 년간 주도적이었던 김경열 박사 견해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별히 안수가 죄의 이동이 아니라는 점,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우는 것이 죄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를 낸다는 점, 제물을 먹는 것이 속죄 행위가 아니라는 점 등과 같은 팽팽한 해석상 차이들을 논리적으로 잘 해명하고 제시했다. 그러한 점에서 레위기를 읽고 해석하고 설교해야 하는 한국교회 강단과 신도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해 준다.

<레위기의 속죄 사상> / 정희경 지음 / CLC 펴냄 / 452쪽 / 2만 2000원

평가

현대의 모든 레위기 전공자들은 현대 레위기 연구 창시자로 불릴 수 있는 제이콥 밀그롬(Jacob Milgrom)이라는 큰 산을 만나게 된다. 연구의 시작은 밀그롬을 넘어서는 일이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그러한 시도가 많이 제시됐고 지금도 여전히 제시되고 있다. 본서도 그러한 시도 가운데 하나다. 필자가 볼 때, 저자는 본서를 통해 밀그롬의 주장들에 적절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밀그롬은 레위기 제의가 성소 기물에 발생한 오염을 짐승의 피를 통해 정화淨化하는 데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사실 밀그롬에 대한 반대 혹은 극복의 시도는 밀그롬의 연구만큼이나 오래됐으며 현 상황에서는 거의 극복됐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본문에 대한 더 적절한 해석을 제시하려면 밀그롬 주장을 언급하고 인용하면서 적절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제3장 연구사'를 보라).

더 나아가 저자는 제물이 안수를 통해 오염됐다거나, 제사장이 먹는 것이 죄를 없애는 것이라거나, 진영 밖 정결한 곳에서 태우는 것이 죄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적절하게 논박했다.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에 대한 속죄 선언이 없으면 그에 대한 용서가 지연된다는 키우치 주장을 제대로 논박한 점은 크게 평가할 만하다.

몇 가지 동의할 수 없는 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안수와 관련해 죄의 전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전가(imputation)는 조직신학적 용어로 김경열 박사가 짐승에 대한 안수 기능을 설명하면서 다시 보편화했지만, 그가 주장하는 개념의 내용은 죄의 이동(transfer of sin)이다. 전가와 죄의 이동은 전혀 다른 개념이므로 혼동해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한국어 성경이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17:11)라고 번역하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번제단에 "피를 뿌린다"는 말이 없는데도 이러한 해석을 그대로 가져온 점(pp. 105~106), 제물을 태우는 일에 대한 향기로운 냄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향연을 기도와 일치시키는 것(p. 163쪽), 뜰이나 내성소 등에 사용되는 속죄제의 차이가 죄의 심각성이라기보다는 신분에 따른 책임감 차이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점(pp. 192~195쪽, 그러나 p. 206에서는 "대제사장이나 온 회중의 죄가 백성의 죄보다 [sic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을 잘 입증해 놓고서도 밀그롬 등이 주장하는 죄 트리오에 대한 이해를 답습하는 것(p. 226. 306ff. 등), 그리고 피를 제단에 사용하는 것("~를 향하여" 혹은 "~위에"를 의미하는가에 대한 히브리어 전치사의 의미)에 대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p. 210). 레위기 16장 자체를 나답과 아비후 문맥에서 주어졌다고 이해하면서도(p. 294) 직접적 인과관계를 통한 이해보다도 단지 매년의 절기적 속죄일 규례로 보는 점(p. 291), 성소의 속죄 행위를 사람들의 죄로 인한 오염된 성소 정화보다는 사람의 죄의 속죄로 보는 점(p. 299) 등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