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카리스마와 베뢰아 운동

서울 신길동에 위치한 성락교회는 여러 의미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김기동 목사라는 인물에 의해 개척과 폭발적 성장, 그리고 서글픈 쇠퇴라는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1969년, 개척 멤버 7명으로 시작한 성락교회는 본래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박종철 총회장) 소속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 김기동 목사의 신학에 관한 이단성 논란이 수차례 발생하자 교단을 탈퇴했다. 김 목사는 자신과 방향을 같이하는 교회, 목사들과 함께 기독교남침례회 교단을 세워 독립하기에 이른다.

한때는 극동방송 라디오 설교 코너에서 매주 설교를 방송하기도 하고, 기침 지방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이단 시비 이후 기성 교계와의 교류를 끊다시피 해 도심 속 거대한 외딴 섬 같은 교회로 지냈다. 그럼에도 성락교회는 자신들의 고립을 외로운 의인의 핍박으로 둔갑해 왔다. 귀신론부터 시작해 축사 시비, 마귀론 등 숱한 성경 해석상 이단 시비 논란이 계속됐으나, 한때 세계 침례교회 중에서 신도 수가 많은 교회에 손꼽히는 등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늘의 성락교회는 새로운 개혁의 목소리에 눈뜨고 있다. 성락교회에서 가장 큰 지분을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던 김기동 목사 신변을 둘러싼 문제는 구설수 차원을 넘어선 비상식의 극치로 일관됐다. 교회를 두고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세습 체제 갈등은 오히려 가벼운 문제로 내려앉았을 정도다.

이러한 쇠락의 징후는 소위 1인 카리스마의 종언과 직결되는데, 그 반대 지점에서 하나의 이례적 사건으로, 1인 카리스마 비상식에 대한 근본적 의문 제기와 대안을 촉구하는 이들이 성락교회 개혁이라는 키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움직임은 평신도 행동과 무관하지 않은데, 성락교회를 대표하는 또 다른 키워드인 '베뢰아 운동'의 기의記意 교환交換이 작동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락교회 신길동 본당. 김기동·김성현 부자 목사에 반대하는 이들이 2017년 3월 성락교회교회개혁협의회(교개협)를 만들었는데, 교개협 교인들이 이곳에서 예배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신도림동에 위치한 성락교회 크리스천세계선교센터. 김기동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이곳에서 예배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필자는 본 칼럼을 통해 김기동 목사와 그가 전개하는 성경 해석 스타일에 배어든 비신학적 요소를 다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스타일의 집산체라 할 수 있는 '베뢰아 운동'이 도리어 1인 목회자로 집중된 카리스마와는 대립하는 성격을 바탕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지금 주목해야 할 성락교회 건축과의 관계 역시 배제할 수 없기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베뢰아 운동'은 김기동 목사의 카리스마적 가르침과 무관하게 성경 사도행전 17:11-12에 기록된 베뢰아 사람의 행실을 모토로 전개된다. 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자는 메시지로 압축된다. 성경에 대한 자세가 신사적인 사람으로, 성경에 무릎 꿇는 겸손한 삶을 살자는 운동으로 시작한 '베뢰아 운동' 주요 내용이 신약 교회 운동, 성경 닮기 운동, 평신도 운동으로 대표된 것이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묻고자 한다. 과연 2019년, 오늘의 성락교회는 베뢰아 운동이 말하던 평신도 운동에 어떤 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가. 성락교회의 건축적 의미는 1인 카리스마에 의해 허울뿐인 장식에 머무르고야 말 위기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본 칼럼은 그 질문에 대한 현재진행형으로서의 답을 구하고자 한다.

현대 개신교회의 딜레마
– 성락교회 신길 본당

성락교회 신길 본당은 제11회 서울시 건축 대상 '금상'을 수상했다. 이 건축물은 건축가로서는 이른 30대 나이에 스타 건축가로 발돋움한, 현재는 대한민국 건축계 거장으로 자리 잡은 함인선의 데뷔작이다.

복잡함을 넘어 이질적 특성의 조합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영등포역 남쪽, 신길동 일대는 뚜렷한 그 지역만의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빼곡히 들어선 다세대·다가구 주택들과 그사이에 불쑥불쑥 솟은 아파트의 운집 정도가 전부인 이곳에 자리 잡은 서울성락교회 본당의 매스(Mass)는 그 위용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도림로를 향해 있는 성락교회 파사드(Facade)와 마주하는 순간, 필자는 고딕 양식을 떠올렸다. 엄밀히 말하면 유사 고딕 양식이다.

교회 설계자 함인선은 "고딕 양식을 차용하되 스타일로서가 아니라 그 정신을 닮도록 하자는 것"을 계획의 과제라 밝히며, 현대 개신교회가 가진 성과 속의 근본적 딜레마를 노출하는 도전을 감행한다. 그 도전이란, 교회는 곧 신의 자리라는 등식으로 지탱해 오던 중세로 대표되는 교회 인식에 맞서, 교회는 인간의 자리라는 모순 구조가 일으키는 생명의 긴장을 건축물 자체에 가감 없이 노출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러한 긴장은 개신교회에 있는 회중 교회 기능, 수평적 연대라는 기술적 바탕 위에 소위 말하는 신의 임현으로 상징되는 종교 시설의 정체성을 입히는 발전적 길항작용의 추구로 연결된다. 이러한 발전적 길항작용이 낳는 건축적 의미는 교회 구성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개신교회의 본령에 충실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성락교회 신길 본당은 다른 대규모 예배당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검소한 외양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건축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성락교회 예배당 외양은 노출된 구조와 설비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특징의 바탕 위에 종교 건물로서 장식을 덧붙인다. 이는 건축의 외부를 신의 자리에 대한 무자비한 존엄을 표현하는 중세 성당의 무리수를 최소화하고 시각적 감응에서 회중을 위한 교회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노출 방식을 전격 도입해 얻게 되는 낮아진 건물 높이, 화강석 마감, 베이스 판, 폴리 데크 등 검소한 외부 조형 방식과 재료가 도시 내 대형 교회가 지향할 건강한 예시를 제시했다.

아울러 성락교회는 현대 건축 공법이 총동원한 이른바 기술적 진보가 집약된 건축물이다. 기술적 진보가 상징하는 바는 회중 교회가 지향하는 진보적 신앙 태도를 지지하는 역동적 표현을 담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역동적 표현으로 가득한 공간이 이끌어 내는 반응은 1인 카리스마 체제로 무장해 온 성락교회의 내재적 전통과는 뜻 모를 대립 관계를 불러온다. 진보적 신앙 태도로 이어질 법한 건축물 자체가 지닌 사건이 개신교회에 있는 또 하나의 특징 평신도 행동의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지난날 성락교회를 지배한 분위기는 성경의 권위를 빙자해 목회자 권위를 앞세우는 정서가 주류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성락교회라는 공간은 평신도 행동이 켜켜이 쌓여 가는 정서의 저항을 담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평신도 행동의 키워드 저항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는 또 하나 있다.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할 때의 메시지가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연결되는 긴장과 습합의 경이를 일으키는 충돌 관계가 그것이다.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앞서 밝혔듯이 현대 개신교회 건축의 딜레마는 공간 구성과 내용은 회중 교회다운 기능을 갖췄지만 종교 건축물이라고 표방하는 외적 표현에서는 종교적 감흥을 고취하는 성스러운 표현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성락교회 건축은 종교적 감흥을 상징하는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의 귀환, 그렇게 내려앉은 인간의 자리에서 다시 신을 생각하는 내면의 신앙화를 이끌어 내는 거의 극단적 처방을 사용한다.

무엇보다 성락교회는 종교 시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속의 세계에서 성의 세계로 들어오는 과정에 요청되는 전이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다. 외적 표현에서 잠깐 드러난 성스러움을 담보한 건축 외양은 이내 교회 공간 내부에 포진한 회중 중심 공간에 의해 잠식된다.

이러한 잠식은 오히려 성과 속의 구분을 무화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인간다움을 지속하는 무심함으로 나타난다. 이제 내부 공간을 채우는 것은 성스러움의 경험을 외양에서만 찾지 않고 내재적 관점에서 채우려는 회중, 달리 말해 하나님 말씀을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평신도 행동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락교회 건축물 곳곳에는 성경적 상징들이 포진해 있다. 포탈 프레임으로 외부에 노출된 트러스 구조체의 모양과 붉은색이 가시면류관과 호렙산의 떨기나무를 연상하게 한다거나, 건물 양쪽 기둥 수가 열두제자 숫자와 같은 12개라는 것. 1층 로비에서 최상층 예배당으로 신자들을 유도하는 양쪽 계단 탑에서 볼 수 있는 '천상을 향한 문' 혹은 '야곱의 사다리' 이미지를 암시하는 천창과 벽화. 끝으로 예배당 앞에 있는 3층 로비 바닥 패턴을 통해 읽히는 혼돈으로부터 신의 당위성을 찾는 새로운 갈구에 대한 상징들의 역사가 그렇다.

이 상징들의 퇴적은 오히려 신의 자리를 인간의 몸과 정신으로 체현하기 위한 평신도 행동의 절정이 스며드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독재에 가까운 권위 없이도 교회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예고된 재앙이었을까.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것도 모자라 또다시 은퇴를 번복하고 주인 자리로 되돌아오려 했던 1인 카리스마의 노욕은 결국 평신도 행동에 의해 서럽게 발가벗겨지고 있다.

신길 본당 앞에서 김기동 목사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교개협 교인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평신도를 향한 한 걸음
한국교회를 향한 한 걸음

지금까지 성락교회를 이끌어 온 요소가 1인 목사의 카리스마로 이해하는 시선이라는 것이 지난날의 여론이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베뢰아'라는 키워드는 이제 1인 카리스마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엑소더스의 상징으로 새롭게 약동하고 있다.

평신도 중심의 예전 행위로 자연스럽게 몰입되는 성락교회 예배당 외부와 내부 건축의 공간적 수평성이 이제는 평신도를 향해 다가갈 수밖에 없는 영적 필연성임을 스스로 증명해 가고 있다. 그 필연성이 오늘의 성락교회, 그 불가해할 정도의 활력으로 폭발하는 평신도 행동의 저력을 이끌어 낸 것은 아닐까.

평신도 행동 이전의 성락교회는, 각종 스캔들과 비리의 온상이 된 현주소에 대해 교리의 비정상성이 극치에 이른 책임을 묻는 것 자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교회 공간을 멋대로 폐쇄하는 등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연상하는 비상식적 작태를 지속해 왔다. 그 결과, 교회 자체 이미지가 안팎으로 무너지는 자멸의 길로 가는 듯 보인다.

성락교회 안에서는 한국교회와의 건강한 소통과 연대를 갈구하는 수많은 평신도 행동의 외침과 절규가 계속되고 있다. 그 절규의 현재진행형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를 향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손길을 떠올리게 하는 진정한 소통의 질문이 되어 아프게 다가온다.

교회의 주인, 특별히 개신교회가 표방하는 종교적 신성은 1인 카리스마,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고등 사기의 마수가 아닌 항구적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한 걸음에 있다. 그 한 걸음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역사요, 주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준엄한 고백 위에 성락교회는 힘겹고 지난한 숨길을 이어 가고 있다. 그 숨길이 끊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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