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라미(가명)는 3년 전 한국에 입국했다. 그의 고향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다. 라미는 열네 살 때 내전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는 길이었고,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혼자가 된 라미는 다른 전쟁고아처럼 거리를 떠돌았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라미의 친형이 라미를 시리아에서 탈출시켰다.

라미는 레바논에서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 인천국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미성년자 라미를 송환 대기실에 14일간 구금했다. 이후 라미는 시민단체 도움을 받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이제 경기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다니며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전국대학생위원회가 2월 27일 개최한 토크 콘서트에서 소개된 시리아 난민 라미의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1월부터 우리 사회에 있는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청년·여성·장애인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번 행사 주제는 '우리 곁의 난민'이다. 이재정 의원이 사회를 보고, 배우 정우성,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어필), 김영아 대표(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예멘 난민 이스마일이 패널로 참석했다.

패널들은 난민을 하나의 사람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할 것을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시리아 난민 라미
"공항 송환 대기실 생활도
총성·포성 없어서 아늑해"
"난민, 생각 이상으로 심한 트라우마
생존 위해 목숨 건 피신"

패널들은 난민을 하나의 사람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할 것을 주문했다. 이일 변호사는 라미를 상담하면서, 공항 송환 대기실에 갇혀 있던 시간이 괴롭지 않았는지 물었다. 미성년자를 장기간 구금한 일을 출입국사무소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오히려 안전해서 좋았어요."

라미는 포탄이 터지거나 총성을 들으며 잠을 자지 않아도 돼 좋았다고 했다.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누가 다쳤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됐다. 24시간 내내 불이 켜져 있고 잠자리도 변변치 않은 송환 대기실이었지만, 전쟁 공포와 위협이 항상 도사리는 다마스쿠스 거리보다 아늑하고 안전했다. 그런 대답을 들으며 이일 변호사는 라미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난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트라우마와 아픔을 겪고 있다. 이들의 삶을 한 사람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에 왔는지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배우 정우성은 정부와 사회가 난민을 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 정우성 씨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난민을 만나 그들의 처참한 생활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이들을 보호해야 할 이유에 대해 결코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지난해 한국 사회 안에 반난민 정서가 확산되자, 정부와 시민들이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정우성 씨는 지난해 11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고 했다. 이곳은 예멘을 탈출한 난민들이 가장 먼저 찾는 나라다. 그는 그곳에서 열악한 삶을 사는 예멘 난민들을 보며,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 씨는 "난민들은 더 나은 삶,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피신하는 게 아니다. 이들에게 피신은 선택이 아니라, 목숨을 건 어쩔 수 없는 여정이다"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예멘 난민과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그는 한국이 대다수 예멘 난민 신청자에게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 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 나라 예멘은 파괴되고 있다. 그 누구도 지금 예멘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한국인이 위험에 처한다면 우리도 반드시 당신을 도울 것이다. 그러니 위험에 처한 예멘인을 도와 달라."

혐오·차별 조장하는
난민 정책 개선 주장
"찬반 프레임 벗어나
어떻게 수용할지 질문해야"

난민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민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제도와 여론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이일 변호사는 정부가 시행하는 난민 제도가 정작 난민의 권리를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외국인 정책 계획에는 기본적으로 난민을 어떻게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지 포괄적인 정책이 없다. 지난해 예멘 난민이 몰려오자 정부가 여론에 쫓겨 다닌 것도 이 때문이다. 난민 제도도 보호보다 색출과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난민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예멘 난민을 상대로 시행한 출도 제한이 대표적 예다. 그는 "정부의 조치로 사람들은 마치 난민이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해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됐다. 난민이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구성원이라는 시각을 정부가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일 변호사는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이 오히려 난민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경아 대표는 난민을 수용할지 말지 찬반을 묻는 언론의 태도를 지적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많은 언론이 시민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다수 매체가 난민을 수용할지 말지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질문은 마치 난민과 국민을 대립 관계로 만들어,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언론과 시민사회가 찬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난민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난민에게 정말 물어야 할 것은, 왜 가족과 집을 떠났는지, 한국에서 무엇을 바라는지 등이다. 지난해 난민 이슈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난민을 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멘 난민 이스마일은 난민을 대하는 사람들 태도가 언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5월 예멘 난민 신청자가 제주에 왔을 때, 대다수 도민은 경계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언론에서 난민 수용을 반대하거나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성격의 보도가 나오자, 여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인종주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전염병과 같다. 지난해 제주에서 보낸 시간은 인간으로서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스마일은 "직업을 구해도 노동법을 몰라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어려움이 많다. 이에 대해 알려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난민이 실제로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문화에 융화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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