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선하신가? 그렇다면 고통의 범위를 감안했을 때, 우리는 그분을 전능하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고통과 씨름하다>(새물결플러스), 16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많은 철학자가 던진 질문이자 많은 신학자가 풀어 보려고 했던 문제다. 끔찍한 재난을 목격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왔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이런 물음에 대응해 하나님이 여전히 전지전능하고 선하다고 변호하는 이론을 '신정론'(theodicy)이라고 한다.

신정론은 300년 전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고안했다. 하나님(theos)과 정당성(dike)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를 합친 말로 '하나님의 정당성'을 의미한다. 이번 글에서는 신정론을 다루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토마스 롱의 <고통과 씨름하다 - 악, 고난, 신앙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와 그레고리 보이드의 <하나님 탓인가 - 고통의 문제에 대한 뻔한 대답을 넘어>(SFC)다.

<고통과 씨름하다>(새물결플러스)와 <하나님 탓인가>(SFC).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고통을 탐구하는 여정

<고통과 씨름하다>는 빼어난 설교학자로 알려진 토마스 롱 교수(에모리대 석좌)가 썼다. 길지 않은 분량으로 신정론을 둘러싼 문제 전반을 어렵지 않게 살펴본다. 설교나 목회할 때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설교적 충언이다. 궁극적으로 성도와 같이 서 있어야 하는 설교자들과 함께,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통받는 세상에서의 삶의 진실들과 어떻게 한데 어울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는 노력이다." (18쪽)

먼저는 신정론이 서구 지성사에 어떻게 등장하게 됐는지, 근대 엘리트 철학자의 전유물이던 이 문제가 어떻게 대중화해 현대인이 신앙을 갖는 데 강력한 위협 요소로 자리 잡게 됐는지 탐구한다. 교회와 설교자가 대중을 위협하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직면해야 하는 이유를 살핀다. 그 후 신정론에 관한 대표 사상가 입장을 따져 본 다음, 고통의 문제를 놓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지 다루는 방향으로 내용이 이어진다.

<고통과 씨름하다>는 고통의 문제와 우리 신앙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저자는 고통과 악을 다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논의를 진행한다. 다양한 논의로 고통을 보는 시야를 넓혀 주고, 고통 속에서도 신앙이 가능할 수 있는지, 가능하다면 그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지 제시하고 있다.

"신정론은 교실 안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악과 고통에 관해 무엇을 행하고 계신지에 대해 선명하고 정확하게 생각할 때, 우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애매모호함과 의심으로 점철된 세상에서도 이 하나님의 역사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239쪽)

<고통과 씨름하다 - 악, 고난, 신앙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 토마스 G. 롱 지음 / 장혜영 옮김 / 새물결플러스 펴냄 / 256쪽 / 1만 2000원.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뻔한 대답'을 넘어서

<하나님 탓인가>는 '고통의 문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악과 고통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왜 그러한지를 성경 구절 해석에 기초해 논리적으로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뻔한 대답을 넘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기서 '뻔한 대답'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라고 하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전제를 말한다. 저자는 고통을 포함한 모든 것이 세심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라고 전제하는 이 관점을 '청사진적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하나님 탓인가>는 청사진적 세계관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이것이 왜 극심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 모습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과 충돌하는지 살핀다. 청사진적 세계관을 넘어서 하나님이 자신의 뜻에 저항하는 세력들과 영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전투적 세계관'을 대안으로 언급한다.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의 의미, 인생의 모든 일이 임의대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을 논증을 거쳐 밝힌다.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오해를 짚고, 피조 세계의 복잡성과 신비를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고통의 문제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그림을 제시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사물의 넓은 바다 한복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반역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은 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세계 역사에 있는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복잡한 요인들을 꿰뚫어 볼 수는 없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태도와 목적은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 탓인가>, 340~341쪽)

<하나님 탓인가 - 고통의 문제에 대한 뻔한 대답을 넘어> / 그레고리 A. 보이드 지음 / 김성민 옮김 / SFC 펴냄 / 366쪽 / 1만 1000원.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고통 다루는 손쉬운 방법은 없다

고통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 따름이다. 두 책이 가르쳐 주는 것은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손쉬운 방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통을 다루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고통이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인생의 중요한 문제라는 데 있다. 두 책은 고통이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고통을 통해 더 성숙해진다는 식의 서사가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오히려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상의 실제적인 고통, 곧 가설적 문제로서의 고통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고통 앞에서 그것이 하나님이 영혼을 빚기 위해 창조의 일부로 주신 도구라고 주장하는 신학은, 거기에 제아무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종말론이 가미되었다고 해도 기독교적이라 할 수 없다. 세상을 구속하기 위한 필수 요인으로 어린아이가 고문당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하나님은 악의 주체이며 도덕적 괴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고통과 씨름하다>, 142쪽)

두 책은 모두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고 선하시다 △무고한 고통이 존재한다는 네 가지 가설과 욥기에 대한 해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다.

신정론 전반을 다룬 <고통과 씨름하다>를 먼저 읽고,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기독교적 탐구로서 <하나님 탓인가>를 읽으면 수월하다. <고통과 씨름하다>는 <하나님 탓인가> 같은 견해가 지닌 맹점도 일부 지적하고 있다. <고통과 씨름하다> 저자가 신정론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보여 주는 설교집으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새물결플러스)를 권하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하나님 탓인가>를 쓴 그레고리 보이드의 관점은 '열린 신론'으로 알려져 있다. 열린 신론은,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시지만, 인간이나 영적 존재의 자유의지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신이 일어날 모든 사건에 대한 가능성을 예지하고 있지만 자유 행위자가 내린 결정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간다는 주장이다. 전통적 관점과 차이가 있다. 더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은 열린 신론에 대한 논쟁점을 찾아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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