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8월 발간한 '지방 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상호 연구원은, 전국 228개 시·군·구를 조사한 결과 189개(39%) 도시가 소멸 위험 지역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5년 전 조사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방 소멸의 바람은 농어촌 낙후 지역일수록 거세다. 군민 4명 중 1명이 농업에 종사하는 충청남도 예산군도 매년 인구가 줄고 있다. 2005년 9만 1000여 명이었던 예산군민은 지난해 8만 2000여 명으로 감소했다. 예산군은 2013년부터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100년간 지역 주민과 함께했던 교회도 지방 소멸의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대한성공회는 2017년 예산군 읍내에 있는 예산교회를 잠정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예산교회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예배당은 오랜 기간 방치돼 있었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인구 유출 등의 영향을 받아 사제와 교인들이 모두 교회를 떠난 것이다. 예산교회가 1927년 설립한 신명유치원도 같은 해 폐원됐다.

대한성공회가 예산교회 예배당과 부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중, 신학생들이 이 소식을 접했다. 성공회 신학대학원 성직 과정 원우회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이대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교회는 지역 주민과 오랫동안 교감하며 존재해 온 지역의 일부였다. 신학생들은 예배당을 재건해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예산교회 재건 프로젝트, 'Again 1917, 일어나요 예산교회'다.

대한성공회는 2017년 예산교회를 잠정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심규용 전도사를 1월 28일 예산교회에서 만났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는 장항선을 타고 1시간 40분 만에 예산역에 도착했다. 예산교회는 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주택가 사이에 붉은색 벽돌로 지은 아담한 예배당이 주변과 잘 어울려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벽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주변을 둘러싼 담장은 금세라도 허물어질 듯 금이 가 있었다.

심 전도사는 "오랫동안 교회가 방치되어 있었다. 처음 왔을 때 마당에 잡초가 사람 머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신학생들이 수시로 와서 교회를 정비했다. 담장도 도시 재생 사업 지원을 받아 다시 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산교회를 인구 감소로 침체한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북돋는 공간으로 가꾸고 싶다고 했다. "가난한 시골 교회가 주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예배당과 유치원 부지를 활용해 주민들과 어린이들에게 문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100년 역사 지닌 예산교회
지역 내 교육의 장으로 기능
2000년부터 고령화
인구 유출로 교세 약화

예산교회는 100여 년 전 3칸짜리 초막에서 시작했다. 1900년대 초, 강화에 상륙한 성공회 신부들은 한반도 내륙으로 선교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충남 예산에도 전도의 바람이 불었다. 김만준 전도사가 1917년 4월 예산교회를 세웠다. 같은 해 11월, 주민 6명이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

한국 근대사에서 교회는 예배뿐 아니라 교육·의료 등 신식 문물을 보급하는 곳이었다. 예산교회는 '성공회 강습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주민들과 아동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1927년에는 예배당 옆에 신명유치원을 세웠다. 예산군 최초의 유치원이었다.

예산교회는 한때 문을 닫기도 했다. 1941년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외국인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 1943년 4월 예산교회를 폐쇄하고 신명유치원 건물과 운영권을 몰수했다.

예산교회는 해방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70년 신명유치원 운영권을 되찾았다. 이를 기념해 1976년, 오래된 한옥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벽돌식 건물로 예배당과 사제관, 유치원을 새로 지었다.

심규용 전도사는 "예산읍에서는 교회보다 신명유치원이 주민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예산군 최초 유치원이기도 했고 교육 내용과 시설이 좋아 다른 지역에서 몰려올 정도였다. 예산 지역 내 저명한 인사들이 대부분 신명유치원 출신들이다"라고 말했다.

1910년대 예산교회 모습. 사진 제공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1970년대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지은 예산교회와 신명유치원. 사진 제공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예산교회와 신명유치원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약화했다. 심 전도사는 예산 지역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주민들이 대전이나 신도시로 이사를 하거나 노환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제들이 자주 교체된 이유도 있었다. 예산교회는 2000년에서 2017년까지 17년간 담당 사제가 7번 바뀌었다. 사제가 장기간 목회하며 교인들과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심 전도사는 대한성공회가 지닌 파송 제도 특성상, 사제 임기가 짧아 교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이 쇠퇴의 주요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예산교회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한 심규용 전도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역사 깊은 교회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교회 재건 나선 신학생들
독서 모임 '마르코의 책방' 개설
마을 카페, 어린이 도서관 설립 계획
주민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교회 꿈꿔

예산교회를 잠정 폐쇄한 대한성공회 대전교구는 2017년 8월 예배당을 처분하기에 앞서 교구 관계자들을 파견했다. 예배당과 유치원 시설물을 점검하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대전교구에 속해 있던 심규용 전도사도 이날 사진을 찍기 위해 선배 사제들과 함께 예산을 방문했다.

심 전도사는 당시 교인이 없어 교회를 폐쇄한다는 말을 듣고 예산교회를 농촌에 있는 작은 교회로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본 예산교회는 생각과 달랐다. 예상보다 규모가 컸고, 도시 주택가 한복판에 있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지역 교회가 이렇게 사라진다는 게 안타까웠다.

심 전도사는 신학생 동기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학생들은 심 전도사 말에 공감했다. 이들은 2017년 10월 19일 예산교회를 방문했다. 신학생들은 먼지만 쌓인 빈 예배당에 둘러앉아 예산교회 100주년 저녁 기도회를 열었다. 예산교회 재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대한성공회 대전교구는 2017년 말, 원우회의 재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신대원생들은 자체적으로 돈을 걷고 수시로 예산교회를 찾아가 예배당을 정비했다.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버리고 안 쓰는 짐을 정리했다. 교회는 차츰 본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담장 너머로 주민들을 귀찮게 했던 아이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도 2017년부터 끊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실도 텅 비어 있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2018년 7월부터는 매주 화요일 독서 모임 '마르코의 책방'을 열었다. 인근 주민, 이웃 교회 목회자, 전 예산교회 교인 등 10여 명이 매주 모여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신앙이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주민도, 동네에 이런 모임이 없었다며 꾸준히 참석했다.

예산교회는 올해 2월 공식 예배를 재개할 계획이다. 대한성공회 대전교구는 프로젝트를 추진한 심규용 전도사를 담당 교역자로 정식 파송했다. 심 전도사는 교단 지원으로 어느 정도 재정이 쌓이면 예배당 옆에 있는 사제관과 유치원을 허물고 마을 카페 '신명'과 어린이 도서관을 지을 계획이다.

"교회가 주택가에 있어서 주민들에게 접근성이 좋다. 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커피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카페 안에는 '신명유치원 기념관'을 설치해, 지역 동문이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을 꾸밀 계획이다."

독서 모임을 제외하고는 아직 기획 단계다.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 교인들이 어느 정도 모여 교회가 자립해야 하고, 카페나 도서관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재정도 확보해야 한다. 심 전도사는 "일단은 한 단계씩 추진하고 있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사역을 넓히는 일보다 우선은 있는 것부터 잘 가꿔서 해 보려고 한다. 지금은 지역 주민과 관계를 맺으며 동네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 재건 목적은 교인 수를 늘리려는 게 아니다. 심 전도사는 "지역에 봉헌된 교회를 꿈꾸고 있다. 주민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찾아와 이용할 수 있는 교회, 신자든 비신자든 마음껏 교회 문턱을 넘나들 수 있는 교회, 마을 사람들에게 항상 문이 열려 있는 교회가 예산교회의 비전이다"라고 말했다.

심규동 전도사는 지난해부터 독서 모임 '마르코의 책방'을 열었다. 종교나 소속 구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 제공 심규용
예산교회 사제관 모습. 영화 감상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방 소멸 앞으로 계속,
지역사회와 함께한 교회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많은 목회자가 신도시나 대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어째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낙후된 지역 교회를 재건하는 데 힘을 쓰느냐고 나무라는 이도 있다. "일반적인 교회 성장론의 관점에서 봐도, 재건 프로젝트는 우매하고 비합리적인 밀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심 전도사는 "앞으로 지방 소멸이 전 지역에서 가속화하는 오늘날, 교회가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소멸되어 가는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회를 팔고 신도시로 이사하는 것만이 올바른 선교 전략일까. 마을과 함께해 온 교회 역사는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소외된 지역을 향한 교회의 선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예산교회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묻고 있다.

지방 소멸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회도 소멸할 수 있다. 노인만 남아 있는 지방의 현실은 젊은이가 사라진 한국교회의 모습과 닮았다. 한국교회는 얼마 안 돼 지방에 있는 90년, 100년 된 유서 깊은 교회 건물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얼마나 고민하고 있나. 교회 역사는 지역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예산교회가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부름을 받은 동시에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복음의 핵심 사상이다. 지역에 사람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해야 할 존재가 교회다. 지방 소멸이라는 현상 속에서 교회는 더 깊이 지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축소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역을 지키겠다는 용기를 원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