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김대중 정권에서 '햇볕 정책'을 이끈 정세현 통일부 전 장관이 정부가 현 대북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다면 15년 안에 분단 상황을 해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독일이 20년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동방 정책을 펼친 결과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며 "우리도 이를 참고해 12~15년간 대북 정책을 펼친다면 민족적 행운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독일문화원과 놀공발전소는 1월 24일, 도라산역 종합관에서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체험형 디지털 게임 '월패커즈' 공식 런칭을 맞아 전문가 대담을 진행했다. 정세현 전 장관과 슈테판 아우어 주한독일대사를 초청해, 30년 전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 독일 사례를 통해 한반도가 배울 점이 없는지 들었다.

정세현 전 장관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독일 통일 사례를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독, 20년간 동방 정책 고수
'평화', '화해' 외교정책에 기본 방침 
잦은 교류로 동독 주민들 의식 변화

슈테판 대사는 1969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펼친 동방 정책이 통일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했다. 동방 정책은 동독을 포함한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화해 정책을 말한다. 슈테판 대사는 "빌리 브란트가 용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분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동독과 협약을 맺고, 소련·체코 등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서독과 동독 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서독은 1969년부터 20년 동안 일관되게 동방 정책을 추친했다. 무산될 위기도 있었다. 1982년 동독에 비판적이고 보수 성향을 지닌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이 집권 정당이 된 것이다. 빌리 브란트는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사회민주당(사민당) 소속이었다. 하지만 기민당은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이 펼친 동방 정책을 중단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

한국은 1998년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10년간 햇볕 정책을 펼쳤다. 그러면서 1·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이라는 결실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 관계가 경색됐고, 모든 교류가 단절됐다.

정세현 전 장관은 한국과 달리 서독은 어떻게 정권 교체 후에도 동방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슈테판 대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은 '평화', '화해'를 외교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모두가 유럽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외교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동방 정책을 향한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마치 한국에서 햇볕 정책을 향해 '북한 퍼 주기'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보수 성향의 서독 정치인들 사이에서 동독을 지원하면 지도부가 체제를 더 강화하고 주민들을 핍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슈테판 대사는 "단기적으로 동방 정책이 동독 지도부를 인정하고 공산주의 정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서독과 동독 사회 간 상호 교류가 활성화하면서 동독 주민들의 의식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통일을 위해서 남북 교류가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슈테판 주한독일대사는 일관된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문재인 대북 정책, 햇볕 정책 심화·발전"
남북뿐 아니라 한미·한중·북미 종합적 고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자본 북에 투입 예상"

정세현 전 장관은 한반도가 독일의 평화통일을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이 서독의 동방 정책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다며, 오늘날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도 이러한 햇볕 정책을 심화·발전한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장관은 현재 북한 상황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변화를 향한 의지가 부족했지만,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핵을 포기하면서까지 변화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대북 정책 역시 과거와 다르다. 햇볕 정책은 북한에 변화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현재 대북 정책은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대북 정책의 대상도 북한에서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으로 확대됐다. 정 전 장관은 "햇볕 정책은 남북 관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남북뿐 아니라, 한미·한중·북미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만큼 현재 대북 정책은 이전보다 더 폭넓고 깊이 있다"고 강조했다.

슈테판 대사는 한국의 대북 정책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해결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 간 교류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동독과 서독은 통일하기 직전까지 1년에 약 800만 명이 왕래했다. 반면, 남북은 2003년 남북출입사무소 설립 이후 지금까지 왕래 횟수가 약 200만 명에 불과하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한이 아직까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만큼 다른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경제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난다. 북한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남한이 지원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민간 자본이 북한에 대거 투자할 거라고 예상한다. 경제가 올라가고 주민들 삶의 질이 향상되면, 북한도 남북 협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