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1년 이전 기사를 검색하기 원하시면 + 버튼을 눌러 주세요.
시대를 거스른 목회자이자 사회운동가
[서평] 로버트 실젠 <가가와 도요히코 평전>(신앙과지성사)
  • 이명재 (lmj2284@hanmail.net)
  • 승인 2019.01.17 15:22

책 한 권을 놓고 이렇게 씨름하기는 처음이다. 이유가 뭘까. 책이 두꺼워서?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어서? 아니다. 사람에 기인한다. 일본 사람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일본의 참 지성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쉽게 접근되지가 않는 일본인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이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평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목회자요, 사회운동가인 가가와 도요히코는 내가 바라는 인간상 중 하나였다. 참 목회자가 되는 것도 어렵다. 참 사회운동가가 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을 가가와 도요히코는 잘 해냈다.

복음화율이 1%도 채 되지 않는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흔치 않다. 언뜻 생각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와 지금 소개할 책의 주인공 가가와 도요히코 정도이다. 이들은 일본뿐 아니라 이웃 나라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가가와 도요히코 평전 - 사랑과 사회정의의 사도> / 로버트 실젠 지음 / 서정민·홍이표 옮김 / 신앙과지성사 펴냄 / 568쪽 / 2만 8000원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대표에게 책을 한 권 보내 달라고 했다. 그리고 틈틈이 책을 읽어 나갔다. 읽는 도중 원문 대조가 필요한 곳이 있어서 로버트 실젠(Robert Schildgen)의 <Toyohiko Kagawa: apostle of Love and social justice>(Centenary Books, 1988) 원서를 어렵게 구입했다. 

이 책이 일본에서는 2007년 번역 출판되었다. <賀川豊彦-愛と 社會正義を 追い求めた生涯>(新敎出版社, 2007)인데, 내친김에 그것까지 일본에서 공수해 왔다.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인 독서요, 서평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은 3국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전의 주인공은 일본 사람 가가와 도요히코이다. 그 사람을 미국인 실젠이 영어로 썼다. 그 영서英書를 한국의 서정민·홍이표 두 박사가 우리말로 번역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공감대가 확장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 앞머리에 책의 부피가 많다는 뜻을 비쳤는데 정확하게 568쪽이다. 꽤 두꺼운 책임에도 마치 재미있는 문학 작품처럼 술술 읽힌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지 않게 된다. 내용도 좋고 번역도 잘 되었다.

번역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이자면, 창작에 가까운 번역이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문장 하나하나, 아니 단어까지도 세밀한 고증을 거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역자 주와 내용 주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점이 이것을 말해 준다. 연보도 원서에서 대폭 보완했다.

무엇보다도 원서에는 없는 수많은 사진은 역자들이 발로 뛰며 수집한 것들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 관계되는 사진을 적재적소에 삽입하고 설명을 부기해 놓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원서와 일어 역본보다 완성도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가가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실젠이 쓴 평전이다. 서정민 교수도 역자 후기에 썼듯이, 일본인이 아닌 제3국의 사람이 쓴 이 평전은 객관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일어뿐 아니라 영어 자료까지 충분히 섭렵하고 책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기류傳記類가 hagiography(칭찬 일변도)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인이 쓴 가가와 전기도 여러 종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전기의 맹점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실젠의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자료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책 뒤에 첨부한 후주와 참고 문헌 그리고 찾아보기는 한 권의 훌륭한 학술 서적을 연상케 한다. 후주를 꼼꼼히 읽어 보면 일서와 영서에 신문 잡지 기사까지 인용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중요한 부분은 관련 인사를 찾아가 인터뷰까지 해서 내용을 채웠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앞뒤로 두고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 제목만 나열한다고 해도 가가와 도요히코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대강을 그려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킨다. 장의 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신비적 반역자의 형성
제2장 생각을 행동으로
제3장 빈민가 속으로
제4장 아메리카 간주곡
제5장 노동쟁의의 주도
제6장 농민과 피차별 부락민을 적시며
제7장 '하나님 나라' 운동
제8장 미국을 뒤흔든 일본의 협동조합 운동가
제9장 태평양전쟁의 광풍 속에서
제10장 전시하의 평화주의자
제11장 재건과 참회
제12장 평화를 만드는 사람

가가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거스르는 반역자였다. 그 반역의 꼭짓점은 정의와 약자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지성인이었다. 빈민들은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었고,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도미渡美를 했다.

미국에 가서도 그의 관심은 노동운동 등 사회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가 일본으로 돌아와서 사회운동을 하는 데 큰 지침이 되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태평양전쟁에서의 패전 뒤 일본을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세계 평화가 그의 목표였다.

책의 부피에 압도당하는 사람은 한 장씩 독파한다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도 좋다. 아마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대구대학교 내 '賀川豊彦硏究會'(가가와 도요히코 연구회)라는 데에서 가가와에 대한 책(黑田四郞 <나의 賀川豊彦 연구>)을 출판했던 적이 있다.

가가와에 대해 잘 몰랐던 때여서 '일본 사람에 대한 책을?', 거기 더해 '일본인 이름을 딴 연구회까지 대학에 버젓이?' 하며 일종의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가가와는 다가가면 갈수록 그로 인해 일본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는 해방 뒤 우리나라를 방문해 사과를 한 첫 일본인이다.

학술 서적으로도 모자람이 없다고 했지만, 넓게 볼 때 교양 도서에 속하는 책이다. 책을 추천한 사람들의 면면에서도 그것이 읽힌다. 곽금순(한살림연합 상임대표), 김형미(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김정혜(두레 대표), 차흥도(감리회 농촌선교훈련원 원장), 古屋安雄(가가와 도요히코 학회 회장).

모두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성격을 말해 주고 있다. 물신주의와 성장제일주의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지향해 온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빈민들과 함께 젊음을 불사르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깨우침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 가가와다. 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접점에 생활협동조합이 있다며, 조합 운동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가가와 도요히코다. 지금의 일본 농협과 세계 최대 규모의 코프고베(일본의 협동조합 -편집자 주)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가가와 도요히코의 정의를 추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했고 끝마쳤다. 목회자는 사회 흐름에 초연하게 교회만 잘 돌보면 된다는 의식이 우리 교계에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가가와 도요히코 읽기를 권하고 싶다. 사랑해야 할 범주가 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끝으로 몇 가지 보완할 것들을 지적하고 서평의 소임을 마치려 한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오탈자가 드문드문 산견된다. 가령 '조의賻儀 ⟶ 부의'(37쪽), '엥겔 ⟶ 헤겔'(61·62쪽), '사신使信⟶ 私信'(원문은 his message of the social gospel of Christianity로 되어 있음)(275쪽). 재판 때 수정할 것들이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간디와 슈바이처와 함께 20세기 3대 성인으로 일컫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가와는 우리에게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 36년의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한국 지배를 반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와 상면함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바란다.

"일본의 교회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Please do your best for world peace and the church in Japan)."

가가와 도요히코는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1960년 4월 23일 자택에서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았다. 향년 72세였다.

이명재 / 덕천성결교회 목사, 철학박사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명재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line 일본에 울려 퍼진 '예수 사랑하심은' 일본에 울려 퍼진 '예수 사랑하심은'
line 일본 신도와 한국 개신교의 교회 세습 잔혹사 일본 신도와 한국 개신교의 교회 세습 잔혹사
line 일본에서 만난 수많은 세월호 일본에서 만난 수많은 세월호
line '위안부'와 '원폭' 향한 한일 기독교인의 왜곡된 시선 '위안부'와 '원폭' 향한 한일 기독교인의 왜곡된 시선
line 기모노가 '성행위를 위한 옷'이라는 한 선교사의 무지 기모노가 '성행위를 위한 옷'이라는 한 선교사의 무지
line 반도에서 온 조선 난민들 품은 일본 교회 반도에서 온 조선 난민들 품은 일본 교회
line "한국교회, '땅끝' 일본 기독교에서 배우라"
line "신학은 그릇, 그릇 하나를 절대화하면 안 돼"
line 신학하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신학하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추천기사

line 총회 재판국 "명성교회가 예장통합 소속인 이상 세습금지법 지킬 의무·책임 있어" 총회 재판국
line 염치를 잃어버린 명성교회에게 염치를 잃어버린 명성교회에게
line 인도 기독교의 자립과 일치를 구현한 20세기 전반 아시아 기독교의 얼굴 인도 기독교의 자립과 일치를 구현한 20세기 전반 아시아 기독교의 얼굴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