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씨 아내가 자기 남편을 일러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했다. 극우 매체 '뉴스타운TV'에서 한 말이다. 사기꾼들의 특징은 거짓을 너무나 진지하게 말한다는 데 있다. 확신에 찬 발언이라면 무지한 것이고, 허세를 부린 것이라면 코미디에 가깝다. 새해를 맞아 마음가짐이라도 바르게 하려고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시간에 이런 딴 세상 뉴스를 접하는 우리의 문화가 너무 가난하다. 그런데 이순자 씨만 그럴까?

기독교를 향해 미국 종교학자 리처드 호슬리(Richard A. Horsley)는 이렇게 말했다.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던 종교가 억압과 착취의 종교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기독교가 변질한 배경을 추적해 보면 두 번의 커다란 전환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전환점은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이 터놓은 기독교 해석 속에 나타난 변질이다. 물론 어거스틴을 위대하다고 여기는 이도 적지 않지만 나는 그의 위대함보다 그의 교활한 타협주의가 더 크게 보인다. 그는 예수의 하나님 신앙을 로마 제국의 종교로 변질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사람들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포악한 로마 제국이 존재하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 제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암묵적 허락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니까. 이때부터 기독교는 좋든 싫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악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직자들은 어거스탄이 악한 것이라 여겼던 로마 제국의 힘과 권위와 위세의 구조를 본받아 교회를 세력화했다. 악을 인정하다 보니까 종교 내부에 형성되는 악에 대해서도 둔감해진 것이다. 교회의 타협과 타락은 결국 성직자들의 정신세계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숭배 문화가 기독교 안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어거스틴은 제국의 본질을 악하게 봤지만, 일단 하나님의 섭리라는 구조에서 볼 때 악의 존재는 전지전능한 신의 동의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에 빠져 버렸다. 이때부터 교회는 정치적 악과 끝까지 싸우려는 의욕을 접고, 역사 너머 종말로 전선戰線을 미루어 버렸다. 하나님이 처리하실 문제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편리해졌겠는가? 동시에 성직자 내부에서도 정화 능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순교의 역사가 끝난 것이다.

성직자들은 진리를 지키기 위한 순교보다 진리가 현시되지 않은 세상에서 번영을 선택했다. 번영신학의 뿌리는 5세기부터 시작했고, 교회 성장주의는 번영을 선택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어거스틴은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기보다 어설픈 대답을 하고 만 셈이었다. "악은 언젠가 하나님이 도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악을 완벽하게 제거할 생각은 주제를 모르는 일이니 생각도 말아라. 불완전한 우리는 이 세상을 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라는 대답은 기독교 현실주의라는 큰 맥을 형성해 기독교 역사의 큰 줄기를 이루어 갔다.

여기에 반발한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소수였다. 이들은 정치 권력과 타협하기를 거부했기에 힘이 없었고, 따라서 가난했다. 힘없고 가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은 소수였다. 이들은 제국의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대부분 수도사의 길을 걸었고, 이단으로 몰렸다. 많은 이가 빈한한 수도사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유럽에서 견학하는 화려한 종교 유산은 피골이 상접한 채 살아간 민중들의 헌물로 지어진 것이다. 교회는 민중을 착취했고, 지배했다. 아니 성직자들이 민중을 착취했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순종과 묵종을 가르쳤다. 이들이 주장하는 질서는 교회와 세속 권력이 하나님의 섭리를 대행하는 것이었다. 성직자들의 편의를 따라 해석된 종교, 그것은 어거스틴 이후의 기독교였다.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들이 왕족이나 귀족을 능가하는 제1계급으로 자리를 잡았다가 혁명기에 철퇴를 맞았다.

이순자 씨는 '뉴스타운TV'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씨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뉴스타운TV 갈무리

그 이후 교회는 광대한 제국의 시야를 버린 협소한 지역 교회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수한 분파가 생겨났고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교회를 만들고 싶어 한 이들이 누구였을까? 당연히 성직자들이었다. 그들은 중앙화한 통제를 이중적으로 거부했다. 화석화한 교권의 지배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로만 가톨릭 교회에서 벗어났지만, 다른 편으로는 지역 권력과 연대하며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 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파벌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로 세력화를 도모했다. 그 세력화는 교회의 확장·성장·성취였다. 때마침 불어오는 자본주의 바람을 타고 개신교는 수백, 수천 개의 교파로 분열했다. 어떤 것은 국가주의와 타협하고, 어떤 것은 인종주의와 타협했으며, 어떤 것은 자본과 타협하고, 어떤 것은 이데올로기와 타협했다. 제국의 종교가 된 기독교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강고했던 로마 제국이 붕괴하면서다. 제국의 붕괴는 정치가와 성직자가 권력을 오용한 결과였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부실한 정치가와 타락한 성직자들이 나대던 16세기에 새로운 반전,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제국주의화한 기독교, 즉 로만 가톨릭 교회를 흔들었지만 사실 그것은 기독교의 분열을 뜻했다. 그리고 그 분열의 결과는 개신교 세력이 정치적 타협을 통해 얻은 지역교회론, 즉 교권 나누어 먹기였다. 1555년 아우스부르크 협약에 따라 성직자들이 장악한 교회가 지역 군주에게 복속되어 보호받게 된 것이다. 군주의 신앙에 따라서, 군주의 보호를 받고 군주의 재정 지원에 따라 성직자들이 살아가는 교회가 정치 권력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기존의 가톨릭교회의 중앙 체제는 유지되었지만, 개신교회는 중구난방이었다. 오죽했으면 루터 이후 여러 교회가 거듭거듭 신앙고백문을 새로 써야 했겠는가?

이러한 변화를 누가 초래했겠는가? 성직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빙자하고, 성장과 번명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개신교의 개교회주의는 결국 복음의 자유가 아니라 성직자들이 자기 성취·성장·업적을 위한 영역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리처드 니버(Helmut Richard Niebuhr)는 아이러니하게도 교파주의의 연원을 살펴보면서 "기독교는 창시자의 뜻보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더 많이 영향을 받아 왔다"고 결론을 내린다. 니버의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교파적 연합과 교류를 중시했다. 교파로 분열되면서도 나름대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가 있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이런 변질된 서구 개신교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처음 유입된 서구의 기독교 교파주의와 교권주의는 1910년까지 이어진 조선 전근대 사회규범을 바꾸지 못했다. 다분히 민주적 질서를 이루어 낸 북미에서 온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민주 사회 규범을 한국에 적용할 수 없었다. 이들은 전근대 사회악과 싸움을 회피하고 오직 교세 확장에만 전념했다. 이러한 선교 제일주의 원칙을 위해 이들은 복음을 비사회적·비정치적으로 해석했다. 기독교인들이 삼일운동에 참여하고, 다양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초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주의 현실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대부분 일제 세력과 타협했다.

심지어 기독교 성직자와 지식인들은 일제의 앞잡이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해방 이후 대부분 친미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자신 안에 내재한 제국주의적 욕망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기독교 전통 속에서 그렇게 교도되어 왔다. 강단에서 주장하는 왕 중의 왕, 창조주, 영광의 신학은 제국주의적 지배와 너무나 쉽게 동조됐다. 제국주의를 향한 칭송과 권력 지향성, 그리고 자기 교회의 세력화는 동의어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성직자들의 무의식을 지배해 온 사상이다. 하나님이 강자의 하나님, 제국주의와 함께하는 하나님이 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힘이 없고 가난했던 시절 이런 속성은 가난 속에 은폐되어 있었다. 교회가 부유해지고 세력화하자 이 속성은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한 속성을 대표적으로 대형 교회에서 발견한다. 작은 교회에는 은폐되어 있거나 잠재되어 있다. 대형 교회는 무한한 탐욕에 지배를 받고, 탐욕스럽게 모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 포장용이다. 실제로는 성직자의 욕망 덩어리가 되어 너무나 쉽게 사유화되고 세습되고 있다. 교파주의는 교단의 집합적 이기성의 표현이었으나, 이제는 성직자 개인이나 가족이 독점하는 종교 기업이 된 것이다. 누구도 통제하기 어렵다. 교단의 세력은 대형 교회의 돈과 지배력의 도움을 받아야 존립할 수 있다.

2017년 5월 17일 세계 최고의 대형 교회를 이룬 조 아무개 목사는 대법원에서 실형을 받았다. 교회 돈 131억을 장남과 함께 배임한 것이 드러나 징역형을 받았지만, 법관들의 도움을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는 실형을 받았지만, 교회에서는 여전히 영웅이다. 법과 상식, 도덕이 그의 교회를 통제할 수 없다. 재판을 받기 이전에 은퇴한 그는 교회에 은퇴비 200억 원을 받았다. 특수 선교비로 600억 원 이상을 여러 차례 나누어 수령하기 했다.

조 목사는 여전히 자신의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고 다양한 집회를 인도한다. 아내는 그의 교회가 세운 대학 총장이고, 아들은 그의 교회가 세운 신문사 이사장이다. 이들에게 은퇴는 없다. 서대문 빈촌에서 시작한 그의 삶은 수천억 원대의 축복(?)을 받은 산 증인이 되었다. 기독교가 그에게 준 선물이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그를 '호형'하며 그의 사례를 뒤따르고 있다. 이들의 세계에서는 법과 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치외법권', '치외도덕권'이 따로 없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교회 모순은 "하나님이 성직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성직자가 곧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다. 목회 세습을 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곧 "담임목사의 교회", 담임목사의 교회가 그의 자식의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자식도 하나님 신앙을 말하고, 그의 아비를 일러 '하나님의 종'이라 여길 것이다. 그들의 아내도 "내 남편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이는 마치 이순자가 군부를 동원해 정권을 장악하고, 광주 학살의 배후였던 자기 남편을 일러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전두환을 지키겠다는 무리가 있듯이, 대형 교회 목사 뒤에는 호위 무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성직자의 욕망을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법과 윤리의 사각지대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성직자의 욕망을 충실하게 채워 주려는 시종과 신하들이 있다. 마치 로마제국의 황제에게도 시종과 신하들이 있었듯이. 전두환과 이순자만 딴 나라 사람이 아니다. 탐욕으로 얼룩진 한국교회를 옹위하는 사람들도 딴 나라 사람들이다.

어제 JTBC에서 70명의 성범죄자 성직자를 추적했다. 그들의 언설과 행위를 보면 한국교회는 이미 일부 거룩한 교회이기를 포기했다. 욕망의 노예가 된 교회가 자신을 자화자찬한다면 그것은 이순자의 화법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전두환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니… 조 아무개 목사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라니… 그 뒤를 이어 호명할 사람이 너무 많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오래전 어둠에 빠지고 있는 기독교를 보고 있었다. 조 아무개 목사의 하나님이 참하나님이라면 나는 무신론자가 되어야 참된 신자다. 명일동의 김 아무개 목사의 하나님이 참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고 해야 참신자라는 의미로 블로흐는 기독교 안의 무신론을 언급했다. 예수는 조 목사의 하나님을 믿을까? 예수는 김 목사 또는 감리교 김 씨 3형제의 하나님을 믿을까? 블로흐는 그의 책 <Atheismus im Christentum(기독교 안의 무신론)>에서 예수야말로 권력화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무신론자였다고, 그는 탈권력화된 하나님에게서 참 자유와 해방의 길을 찾았다고 했다. 탐욕과 권력 숭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유와 해방은 요원하다. 오래전 이 책을 읽으면서 블로흐를 과격하게 생각했는데 요즘 그의 주장이 매우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을 권력화하는 이는 그것을 통해 자기 권력을 확장한다.

권력 종교, 예수가 가르치지 않은 길이다. 이순자를 보면서 어이없어하는 그대, 한국교회를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충구 / 감신대 은퇴교수

※ 위 글은 2019년 1월 8일 박충구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것입니다.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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