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만 성경적 삶의 방식인가

흔히 우리는 교회에서 결혼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하나님이 여자와 남자를 만드셔서 결혼하게 하시고 가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통해 꾸려진 가정은 인간의 기본 공동체이며,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모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며 사람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니 결혼해야 합니다. 사람은 홀로 살 때 외로움과 고독감을 크게 느끼며 인생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해야 합니다. 결론은 결혼해야 합니다. 결혼하십시오."

결혼이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위해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이고,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려 나간다는 것, 좋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결혼 생활이 다 완벽하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행복한 결혼도 있고, 불행한 결혼도 있습니다.

사회가 변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삶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 결혼 안 하는 사람, 이혼한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메시지, 결혼 예찬은 듣기 거북한 설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혼 제도를 만드셨다는데, 그리스도인이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 제도 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고민스럽습니다. 많은 싱글이 기독교 결혼관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 제도와 이상적인 가정 모델이 현재 자신의 현실과 상황에 적용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과 가정을 독려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삶을 격하해 열등하고 무언가 부족한 것으로 보게 만듭니다.

기독교 결혼관이 팽배한 교회에서 싱글들은 삶을 이해받지 못하고, 결혼하지 않음으로 면박당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현재 결혼 상태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자존감을 갖고 자신을 드러내며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구태여 교회 가서 이런 대접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자괴감이 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여성과 남성을 만드시고 이 세상에서 함께 살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결혼은 여성과 남성이 가족을 만들고 함께 어울려 사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지만, 유일한 존재 방식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결혼한 사람, 이혼한 사람, 사별한 사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다 함께 교회 공동체에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의 삶에 좀 더 마음을 열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배려했으면 좋겠습니다.

성서는 고아와 과부, 곧 사회적 약자의 삶을 배려하라고 요청합니다. 왜 고아와 과부를 배려하라고 요청할까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가족과 결혼 제도에서 소외된 고아와 과부를 무례히 대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고아와 과부를 알아서 잘 존중해 주고 함께 어울려 살았다면, 성서에서 굳이 이들을 보호하라고 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결혼을 언급할 때 구약성서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자주 인용합니다.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아담 이후 새로운 인간을 대표하는 분으로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홀로 계시는 것을 보고 외로워 보인다고, 예수님께 배우자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예수님을 그대로 사랑하고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3:17).

마태복음 19장 11-12절은 싱글로 사는 사람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12절에 '고자'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데, 이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싱글? 하나님의 뜻>(서로사랑) 부록에 실린 인터뷰에서 존 스토트는 이 말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세 가지로 열거하십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거지요. 여기에는 신체적인 결함이나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포함될 수 있다고 봅니다. (중략) 둘째,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들도 있지요. 여기에는 강제로 거세를 시키는 끔찍한 고대의 풍습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에도 어떤 강제나 외부적인 환경으로 말미암아 싱글로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기 위하여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딸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세요. 이러한 부류는 안팎으로 아무런 압력도 받지 있고 않지만, 자원하는 마음으로 일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결혼을 내려놓고, 한결같은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결혼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싱글의 삶을 긍정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싱글로 사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싱글로 사는 제자들이 결혼하지 않았다며 모욕적인 언행을 했을 것이고, 예수님은 그런 말들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 전통을 넘어서 제자들에게 독신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사는 것도 좋다고 두둔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바울도 싱글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혼자라서 외롭다고,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까. 바울 자신이 혼자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힘들다고 고백했습니까. 오히려 바울은 혼자이기 때문에 마음이 나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7장 7-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이 말씀을 살펴보면, 바울도 싱글로 사는 것을 좋게 여기고, 그리스도인 각자가 하나님이 부르신 상황과 환경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에 거부감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와 현대의 사회 문화적 여건이 많이 다르고, 삶의 변수도 많습니다. 각 사람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현재 싱글의 삶이 탈피해야 하는 삶이 아니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귀한 시간이자 선물임을 깨닫게 하고, 자족하며 사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신의 은사?

어떤 사람은 독신으로 살려면 독신의 은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싱글들에게 "독신의 은사를 받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혼자서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홀로 살 때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며 인생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참으로 난감합니다. 딱히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것 같지도 않은 경우, '도대체 그럼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독신의 은사를 받아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한 결혼 상대자를 만나지 못했고,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하지 않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독신의 은사가 있어서 싱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결혼하지 않았기에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독신의 은사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싱글 라이프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싱글의 삶은 현재 내 삶의 존재 방식일 뿐입니다.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싱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싱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독신의 은사를 받지 않았는데, 왜 혼자 살지?' 하는 고민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독신의 은사와 상관없이 현재 나의 삶과 존재 방식인 싱글의 삶을 받아들이고 즐기며 잘 살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혼한 사람이 모두 결혼에 은사가 있어서 결혼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그런 게 있기는 하다면) 결혼 생활을 좀 더 원만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혼의 은사와 상관없이, 결혼한 사람들도 결혼하면 결혼이 자신에게 잘 맞든 안 맞든 자신의 삶과 존재 방식인 결혼의 삶을 인정하고 잘 살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싱글로 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독신의 은사가 있어서 싱글로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쩌다 보니 싱글로 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일을 하다 보니 등 자발적·비자발적 이유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결혼을 못(안) 하게 된 것입니다. 싱글을 한 가지 유형으로 구별할 수도 없고, 그 이유를 무 자르듯 재단하기도 힘듭니다.

고등교육을 받고 경제력을 확보하는 여성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배우자를 향한 기대치도 높아집니다. 가부장적 결혼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배우자를 찾을 때 교육, 경제력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스펙을 갖춘 배우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기다, 그리스도인들은 결혼 조건으로 신앙인을 찾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화려한 스펙을 갖춘 남성은 제한되어 있고, 신앙까지 갖춘 남자를 찾기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마땅한 배우자를 찾는 데 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다고 배우자를 향한 기대를 낮춘다고만 해서 결혼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연애로 만난 사이가 아니라면, 결혼 조건에서 남성들은 자신보다 고학력인 여성을 부담스러워하고, 자신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여성을 결혼 배우자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배우자 선택 폭이 좁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여러 복합적 문제가 얽혀 싱글의 증가에 기여했습니다. 독신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만 싱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싱글로 살아갑니다. 싱글들에게 독신의 은사가 없으면 빨리 결혼하라는 말은 싱글들이 처한 삶의 상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싱글들은 자신에게 독신의 은사가 없음에도 싱글로 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심경미 / 여성학을 공부한 싱글 여성이자 목사.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후 외국 무역 회사에서 일하다가 20대 후반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2007~2008년 영국 Trinity College in Bristol에서 신학 공부를 했고,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에 진학해 '비혼 여성'을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다. 장신대 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일했으며, 2010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신당중앙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심경미 목사가 교회 내 싱글과 관련해서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교회와 싱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고자 준비 중인 원고입니다. 일부 내용을 네 차례 게재합니다. 세 번째 글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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