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5~6°C까지 내려가는 날씨에도 160여 명이 모여들었다. 두 노동자가 있는 굴뚝을 향해 인사하고 있는 기도회 참석자들. 뉴스앤조이 장명성

[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예수께서 땅에 내려오심을 축하하는 성탄절이지만, 75m 굴뚝 위 두 노동자는 땅에 내려오지 못했다. 파인텍 모회사 스타플렉스(김세권 사장)가 노사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오른 전국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 박준호 사무장은 고공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성탄절은 이들이 굴뚝에 오른 지 409일 되는 날이다. 같은 지회 소속 차광호 지회장이 2014년 5월부터 2015년 7월까지 벌인 408일의 농성 기간도 넘어섰다. '세계 최장 고공 농성 기록'을 세웠다.

공장에서 쫓겨난 파인텍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기독교 단체들이 모여 만든 '파인텍투쟁승리를위한개신교대책위원회'(파개위)는 12월 25일, 목동 굴뚝 농성장 아래서 '빈자리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기도회를 열었다. 영하 5~6°C까지 내려가는 날씨에도 16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일터·거주지에서 쫓겨난 이들과 연대하는 옥바라지선교센터도 함께 기도회를 준비했다. 사회를 맡은 이동환 목사(파개위)는 "궁중족발과 파인텍의 상황은 다르지만, 자본의 논리로 억압받고 쫓겨났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며 두 단체가 함께 기도회를 연 이유를 설명했다.

홍기탁·박준호 노동자가 올라가 있는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뉴스앤조이 장명성

'현장의 증언'으로 궁중족발 사태를 설명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들의모임(맘상모) 공기 활동가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절망과 궁중족발의 절망이 이어져 있다고 했다. 그는 "여기 모인 우리는 누군가 겪는 차별이 '남의 일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파인텍과 궁중족발의 절망은 우리의 절망이다. 절망적이지만 함께할 수 있어 희망적인 크리스마스다. '연대할수록 강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힘을 늘 경험하며 산다"고 말했다.

굴뚝 위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전화로 발언한 홍기탁 노동자는 촛불 혁명으로 자리 잡은 문재인 정부가 '반노동'을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혁명의 요구를 받아 안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노조 파괴 문건'을 만들어 노동자를 탄압하려 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 주고,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을 무력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구체적으로 준비했던 기무사를 간판만 바꿔 존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기탁 전 지회장은 "이 싸움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는 동지 7명이 무기한 단식 농성으로 함께하고 있고, 매주 화요일이면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동지들이 있다. 그들의 열망 때문에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실천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난함께 진광수 목사는 굴뚝을 볼 때마다 십자가를 떠올린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설교를 맡은 고난함께 진광수 목사는 지난 2월 파인텍 기도회에서 했던 설교를 그대로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바뀌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시간은 400일이 넘어 신기록까지 세웠지만, 홍기탁·박준호 노동자는 여전히 굴뚝 위에 있고,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고 말했다.

진광수 목사는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가 언제인가'라는 제자들의 물음에 '증인이 돼라'고 답한 예수의 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두 노동자가 언제까지 굴뚝 위에 있어야 하는가', '누가 저들을 내려오게 할까' 질문해서는 안 된다. 예수가 이곳에 계신다면 우리의 물음을 바꾸시지 않을까. '언제, 누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저들을 내려오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진광수 목사는 두 노동자가 버티고 있는 굴뚝을 볼 때마다 십자가를 떠올린다고 했다. "굴뚝 위 두 노동자가 우리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곳에서 저들이 외치는 말이 이 시대를 향해 외쳐야 할 이야기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성탄절에도 '너희를 위한 빈자리가 없다'는 서러운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들은 '예수 나셨네'라는 찬양을 함께 부르며 기도회를 마쳤다.

"가난한 이들 사이 예수 나셨네 / 빈방조차 없어 마구간에 있네 / 그를 맞이한 건 권세자가 아닌 / 천한 목동과 양들이네 / 실패한 자로 예수가 나셨네 / 실패한 사람에게 복이 있으라 / 빼앗긴 자로 예수는 태어났네 / 빼앗긴 자 복이 있으라."

굴뚝 농성장 아래에는 대형 트리가 놓여 있었다. 트리 주변에 두 노동자를 응원하는 글귀가 적혀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50m에 이르는 줄을 이룬 참석자들은 거리를 2km 행진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참석자들은 기도회가 끝난 후 스타플렉스 서울 영업부가 있는 목동 CBS 사옥 앞 단식 농성장까지 2km를 행진했다. 이들은 단식 농성하고 있는 차광호 지회장, 박승렬 소장(교회협 인권센터), 박래군 소장(인권재단 사람), 나승구 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송경동 시인을 격려하고, 파인텍 사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김세권이 해결하라', '합의 사항 이행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농성장에서 만난 박승렬 소장은 굴뚝 위 두 노동자를 두고 성탄절을 맞이하는 게 마냥 기쁘지 않았다고 했다. 박 소장은 "두 노동자와 단식 농성 중인 차광호 지회장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단식 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인텍 사태 해결을 위해 16일째 단식 농성 중인 차광호 지회장은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 김세권 사장도 끝까지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자기가 했던 행동을 책임지리라 믿고 있다. 두 동지는 분명히 승리해서 내려올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힘을 모으느냐에 따라 시간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목동 CBS 사옥 앞 광장에 둘러선 기도회 참석자들은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노사 합의 이행하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굴뚝 위에 사람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마무리했다.

광장에 둘러선 기도회 참석자들은 "김세권은 노사 합의 이행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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