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머니가 아닌데요"

어느 날, 감기에 심하게 걸려 병원에 갔습니다. 접수대의 간호사가 "어머니,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합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도대체 왜 내가 당신 어머니죠? 저는 어머니가 아닌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다가도 "어머니, 여기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들이 "아줌마"라 부르는 것을 듣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아줌마 호칭은 그렇다 쳐도, 도대체 왜 처음 보는 환자(고객)를 "어머니"라고 부르단 말입니까. 여자라면 당연히 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환자분, 회원님, 고객님, 손님 등 얼마든지 다른 호칭으로 부를 수도 있는데, 작은 배려가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쉽습니다.

한 친구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머니" 하고 부르면 정중하고 상냥하게 대꾸한다고 합니다. "저는 어머니 아닙니다." 그녀는 귀찮더라도, 간단하게라도 대응해야 바뀔 가능성이 생긴다는 믿음으로 말한다 합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불러 드리면 좋을까요?" 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피차 '선생님'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며, "일일이 교정 교열하며 살자니, 참 세상 살기 간단치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결혼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결혼도 안 한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뭘 알겠느냐", "아이도 안 키워 봤으니 할 말이 있겠냐"라고 말하며, 대화에서 아예 배제하려 하거나 무작정 무시하려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직장에서는 결혼을 일찍 한 젊은 사람들이 마치 결혼하면 인생을 다 안다는 것처럼 자기보다 나이 많은 싱글에게 훈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면, 싱글들은 대화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입을 다물고, 결혼한 사람들이 대다수인 모임에는 잘 끼려 하지 않습니다. 단지 결혼만 하면, 아이만 낳아서 키우면, 자동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요.

결혼을 통해 사람이 성숙해졌다면, 결혼 상태에 있지 않는 사람도 배려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대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은 결혼 중심적인 편협한 사고에 편승한 것이며, 자신과 다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모든 여성을 어머니로 간주하는 시각, 결혼한 사람은 성숙하거나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멀쩡한데, 싱글이래"

한 친구랑 통화했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변에 아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정말 사람 괜찮고, 멀쩡한데, 마흔다섯이라는데, 글쎄, 싱글이라네. 세상에. 왜 결혼을 안 했을까?" 이야기를 들으며, '멀쩡한 사람은 싱글로 있으면 안 되나. 왜 멀쩡한데 싱글이냐고 말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분이 나와 친한 싱글 여자 동생을 언급하면서 말했습니다. "그 친구 예쁘고, 성격도 좋고, 주변 사람들도 다 칭찬하던데, 왜 결혼 안 했을까? 진짜 아깝다." 그러면서 나를 보시며 내 영향으로 그 친구가 싱글로 사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내 영향이 있긴 있습니다. 내가 자유하게 잘 사는 모습 보면서, 그 친구도 자신에 대해 편안하게 생각하고 자기 삶을 사는 것이죠. 이 세상에 나만 혼자인 것도 아니고. 현재 싱글이 많고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을 아는 게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질문한 분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친구, 괜찮은 친구예요. 아주 괜찮아요. 소위 말하는 화려한 싱글이죠. 미모에, 좋은 직장에 본인도 별로 아쉬운 것이 없죠. 저도 아주 괜찮은 사람인데요." 그랬더니, 그분이 말씀하시길…. "그런데 왜 결혼 안 하느냐고! 아깝네!"

'뭐가, 왜 아깝다는 것이지? 괜찮은 사람은 다 결혼해야 하고 혼자 살면 안 된다는 말인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는 혼자 살면서 내게 주신 하나님 은혜와 자유와 선물에 넘치게 감사하고 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에 나는 아멘이다. 하나님이 내게 현재 주신 삶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삶에 감사하며, 누리면서 사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가요.

나는 그분께 "좋은 사람 있으면 데려오셔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진짜? 정말이야?"라고 하셨고,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한 발 물러서면서 더 이상 말씀 안 하십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데려오세요"라고 반응했는데, 막상 데려오려니 주변에 마땅한 사람이 없으셨나 봅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결혼 안 하느냐", "눈이 높아서 그런다" 등등 말씀하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네. 저 눈이 아주 높습니다. 괜찮은 사람 있으면 데려오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다들 꽁무니를 뺍니다. 대책 없는 말을 해 놓고 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말을 할 때, 정말로 상대방을 배려해서 하는 말인지, 그냥 던지는 말인지 생각하고 말씀하시기를….

심경미 / 여성학을 공부한 싱글 여성이자 목사.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후 외국 무역 회사에서 일하다가 20대 후반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2007~2008년 영국 Trinity College in Bristol에서 신학 공부를 했고,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에 진학해 '비혼 여성'을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다. 장신대 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일했으며, 2010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신당중앙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심경미 목사가 교회 내 싱글과 관련해서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교회와 싱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고자 준비 중인 원고입니다. 일부 내용을 네 차례 게재합니다. 두 번째 글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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