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 세력의 납치 사건을 계기로 한국 교회의 해외선교 행태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사역에 앞서 늘 자기 성찰이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읽는 것은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에 비해 짧은 선교 역사 속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성장의 기저에는 한국교회의 선교 열정과 역량을 한데 묶어 교회의 선교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 지도자들의 공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교회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도대체 뭐가 그리 문제냐? 그것은 너희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다”라고 변명하는 것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이번 기회에 한국교회 선교가 새롭게 거듭나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특수 전략과 일반 전략의 혼동

부시(Louis Bush)의 10/40윈도우 아이디어가 한동안 히트를 치더니 어느새 랄프 윈터(Ralph D. Winter)가 주창하는 미전도 종족선교를 해야 한다고 하며 교회마다 미전도 종족 입양에 열을 올렸다. 요즘은 좀 말을 바꾸어 전방개척(mission frontier, 全方 開拓) 선교를 해야 하고 접근 방법으로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group) 또는 미 접촉 종족에서 일하는 선교사는 아직 극소수이다. 그 이유는 선교사가 그런 곳에 가기 싫어서도 아니요, 교회가 파송을 하지 아니했기 때문도 아니다. 사실 미전도 종족이란 선교사가 생존하기 힘들거나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접근 또는 종족 입양이라는 간접적인 선교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전도 지역은 특수지역이다. 특수지역은 당연히 고도의 훈련과 특수전략이 요청된다.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위험한 지역에서 고생을 해야 선교하는 보람이 있다는 단순한 발상으로 보통 청소년 단기 팀을 동원하거나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여 선교행사를 벌이는 것은 전략적인 난센스이다.

한국교회 전체에 획일적인 전략의 적용

선교단체마다 선교비전과 목표나 방향, 선교지역에 대한 관심이 다를 수 있다. 미전도 종족이나 창의적인 접근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단체는 그 특징을 살려 나가면 되고 다른 선교단체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가면 된다. 선교적 네트워크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교회 선교는 너나 할 것 없이 획일적이고 일방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지역인 메콩강 지역, 인도차이나 지역, 몽골 지역에 라벨을 붙여 범 교단적으로 집중하다 보니 많은 선교사들이 한꺼번에 이고집중되었다. 그래서 캄보디아 정부 같은 데서는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명목으로 금년 7월17일부터 선교활동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였다.  아마 그 다음은 몽골, 베트남 등이 될지 모른다.

균형 잡지 못한 재림관에 의한 선교

요즘은 6000여 미전도 종족(또는 미접촉 종족)에게 복음 전도만 된다면 예수님의 재림이 올 것이라는 "과업완수운동 " (FTT, Finishing The Task)이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이 남은 과업을 완수하면 문자 그대로 마 24:14, 행 1:8, 계 22:17, 20의 성경 말씀이 성취되고 예수님이 재림하리라는 기발한 프로젝트이다.

작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규모 집회를 기획했던 한 선교 단체는 소위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강력한 메가톤급 충격(impact)을 줌으로 신속한 세계복음화 또는 최전방 교회개척을 달성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런 발상은 지극히 비 성경적이고 무모한 인본주의적 발상이다. 이것이 세계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하여 일천여 교회가 아무런 비판 없이 참여하였다니 더욱 놀랍기만 하다.

통계적으로 세계인구(65억226만여 명)의 종교 분포는 이슬람교(21.9%) 무종교(15.01%) 가톨릭(14.88%) 힌두교(14.28%) 개신교(10.91%) 불교(6.47%) 순이다. 매일 약 17만 5천명이 죽고, 예수를 알지 못하는 35만 명의 아이들이 출생을 한다. 실제로 복음전도가 제한된 모슬렘국가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폭발, 현저히 쇠퇴하고 있는 서구 기독교의 추세를 감안한다면 세계 복음화는 요원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믿음 없는 얘기를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산술적으로 세계 복음화는 영원한 미지수의 숙제로 던져질지도 모를 일이다.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신 지도 어언 2000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아직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신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벧전3:8)고도 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상식적인 시간 개념으로 "속히" 라는 의미가 2000년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이고, 이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고 앞으로 2000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할 지, 세계 복음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알 수 없다. 잔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성급한 결과를 얻으려는 자세는 선교를 빙자한 개인의 인기나 선교 영웅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너무 경제 논리에 치우친 선교전략

3년 전에는 선교사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미전도 종족보다는 복음화율이 높은 곳에 파송됨으로 세계복음화 전략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이것은 마치 경제 논리를 적용한 것 듯 보인다. 분배가 공정하지 못하여 중복 투자됨으로 생산성의 효율에 문제가 있으니 재분배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해석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를 단순히 경제학적, 산술적인 공식처럼, 또는 미군을 전략상 재배치하는 것처럼 처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선교 전략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로 한다면, 모슬렘권이나 인적이 드문 오지로 가는 선교사를 제외하고, 아프리카나 중남미 러시아 같은 이른바 기독교 복음화 율이 높은 곳에서 일하는 선교사는 있으나마나 한 천덕꾸러기 선교사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물론 중복투자로 인한 쓸데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이 있다면 조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교회의 선교 전략이 성령께서 요청하신 다양한 특성을 모두 무시하고 다양한 부르심과 다양한 선교지의 소명을 도외시한 채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국내 선교의 전략에 주입하려는 그런 단세포적인 발상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이다. 추수지역에 있는 선교지를 더욱 힘차게 격려하면서 전방개척 선교지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정직한 정보와 정직한 선교 보고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외부인이 누구든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그 나라 정부의 정보망에 어떤 형태로든 이미 접수 되었다고 보면 된다. 선교사가 가명을 썼기 때문에 그 나라 정부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선교사 비자를 잘 안 내주는 것은 선교사를 반정부 세력 내지는 반사회 세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NGO 라는 법인체로 포장된 것도 다 알지만 그 나라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용인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선교가 아니고 봉사라고 해도 탈레반 무장 세력은 단도직입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더 이상 말라고 합의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그곳에서 활동하는 선임 선교사의 경험이나 대사관에서 주는 지침은 바로 신임 선교사나 방문객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선교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어떤 면에서 복음의 보화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 나라의 음지를 헤집고 다닌 결과물로 엄청난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관점이나 느낌이 다를 수 있는데 쉬운 일이 아니나 선교사는 복음 전도와 생존을 위해 정보통이 될 필요가 있다.
 
요즘 인터넷에 한국 선교 단기팀이 도로에서 희잡을 두르고 워십 댄싱과 꽁트를 하고 현지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할 한국말 복음송을 가르치고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영상물이 돌고 있다. 일본 TV 에서 이를 보도 하였고 <타임>에서는 이를 후원금을 의식한 ‘캠코더 선교’라고 꼬집었다. 어떤 선교사들은 실제 선교 사역보다는 보고를 위한 포토 선교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남의 사역을 자기 사역인 양 적절히 포토를 삽입하여 이용하고,선교사 자신이 마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천사라도 되는 양 달동네만을 집중 부각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극히 소수의 몰지각한 선교사들 때문에 선교사에 대한 불신과 교회의 선교 열정을 식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언젠가 정기 선교 보고를 하면서 “전과 동일하며 마땅히 보고 할 것 없음을 보고함”이라고 아주 간략하게 보고 하였는데 현지 선교부의 멤버들은 아주 근래에 보기 드문 신선한 보고라고 한바탕 웃었다. 선교사의 정확하고 정직한 보고는 신앙인으로서 기본일 뿐만 아니라 교회나 선교본부의 선교 전략 수립에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계속)

정양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남아공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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