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복된 성탄의 아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낮고 천한 베들레헴 구유로 오신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시는 방식은 늘 이렇게 자신을 비워 겸손으로 오십니다. 비천한 여인 마리아의 몸에, 가난한 요셉의 가정에, 보잘것없는 땅 베들레헴에, 사람이 누울 수 없는 가축의 여물통에 그렇게 오셨습니다.

성탄의 소식은 하늘의 천사를 통해 목자에게, 그리고 별을 따라나선 동방박사를 통해 전해집니다. 그 위대한 소식을 접한 목자는 유대 땅에서 가장 멸시받던 혐오 직종이었고, 동방박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제외되었다고 비웃음을 사던 이방인, 그것도 하늘의 별을 보고 점을 치던 점쟁이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예상을 빗나가는 일들을 통해 성탄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다는 복음은 이렇게 구별과 차별의 담을 무너뜨리고, 유대 땅을 넘어 이방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에 널리 퍼집니다. 왕이라면 당연히 왕궁에서 권세 있는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면 태어나야 마땅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 생각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이 땅에 성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베들레헴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거룩한 성탄이라고 부르며 온 세상이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그렇게 온 인류가 축하하고 기념할 만한 이유는, 그분이 보여 주신 삶의 궤적이 실로 만인이 쫓아야 할 기표가 되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아기 예수는, 후에 갈릴리의 가난하고 빈궁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선물하시지요. 기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나라가 어떤 것인지 곤궁한 자들에게 배부름과 치유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모아 그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 훈련하고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해 이 땅의 한계인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고, 그 소망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천사들은 이 하늘의 비밀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 성탄의 아침에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봅니다. 세계는 여전히 잿빛 공포가 지배합니다. 지구 곳곳에는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 신음 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깨끗한 식수를 구할 수 없어 배탈과 설사로, 그리고 백신 주사를 맞지 못해 맥없이 죽어 가는 아이들의 비명이 세계 도처에 여전히 가득합니다.

멀리 다른 대륙으로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문제는 동일합니다. 정치·경제 어느 곳 하나 든든한 구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반도는 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끼인 채 스스로 주권을 주장할 수 없고, 그리도 바라는 한반도 통일은 기름 장어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슬아슬합니다. 세대 간 갈등은 좁혀질 것 같지 않고, 이곳저곳 불신의 소리가 온 대한민국을 뒤덮습니다.

식탁조차 믿지 못하게 되었지요. 먹거리들은 혹여나 농약덩어리가 아닌지 의심하고 골라내며 배를 채우는 게 우리 일상이 되었습니다. 바다의 조개와 해산물에서조차 미세 플라스틱이 나오는 것을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게 오늘 우리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 잘 가리고 안 먹으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지요. 우리 편하자고 발전소 만들고, 공장 만들고, 자동차 만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매일 대기의 질을 체크하며 미세 먼지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학생과 청년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기댈 곳이 없기에 '무중력 세대'라고 자조할 정도입니다. 좀 더 나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며 살지만, 경쟁은 더욱 심해졌고, 경쟁에서 밀리면 어디고 기댈 구석이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는 우리 곁에 있는 청년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상징합니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아스라한 고사성어처럼 변한 지 오래여서, 지금 우리에게 '이웃'은 그저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로만 여기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린 지금, 이처럼 칠흑 같은 2018년 성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을까요? 오늘 성탄의 메시지는,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낮고 낮은 곳, 가난하고 천한 사람, 냄새나는 장소에 오셨던 그리스도가, 어둠이 드리워진 모든 장소, 믿을 수 없는 모든 관계, 희망 없는 모든 시간 가운데 오십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절망적인 장소에서 아기 예수를 절실히 기대합니다.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는 이 땅의 어둠을 빛으로 넉넉히 바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 때 하늘에서 울려 퍼진 천사들이 찬송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천사들이 노래하길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찬송했지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아기로 오시는 사건이 하늘엔 영광이 되고 땅엔 평화가 된다는 천사들의 예언입니다.

성탄을 맞아 하늘을 향해 우리가 간구해야 할 기도 제목이 천사들의 찬송 속에 담겨 있습니다. 평화가 이 땅에 임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멈춘 상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의 모든 자리, 시간, 관계 속에 평화가 임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구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의 한 쌍이 되는 정의에 관한 기도와 실천입니다. 기도해도 기도가 이루어지지지 않는 때가 많지요. 특별히 우리가 날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해도 그 기도는 절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진실된 평화란 정의의 열매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수백 번씩 기도하고 예배한다 해도 우리 삶의 자리에, 우리 국가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와 교단에 하늘의 평화가 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평화를 갈구하지만 그 평화를 얻기 위한 우리의 정의가 매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믿는다면, 반드시 그분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행동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 마음에 교만·시기·두려움·불의·허영이 차 있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정의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설령 그곳에 평화가 임한다 하더라도 그 평화는 허울 가득한 껍데기 평화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품에 품은 사람은 그분이 요구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고, 그 말씀을 굳게 잡고 정의와 자비를 베풀며, 그 입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며 조심스레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 곁에는 언제나 평화의 생수가 흘러넘칩니다. 주변을 살려 냅니다. 하지만 평화를 기도하며 속은 악독으로 가득 찬 사람 곁에서는 썩은 악취가 납니다. 주변을 전염병처럼 죽입니다.

평화와 정의가 임해야 할 장소는 어디일까요? 2000년 전 아기 예수가 낮고 낮은 세상, 죄인의 나라를 상징하는 베들레헴에 오셨다면, 21세기 아기 예수가 오길 기다리는 곳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늘 성탄을 맞으며 평화의 나라가 이 땅에, 우리 가정에, 우리 일터에, 우리 교회 현장에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 평화가 임하길 기도할 때 우리가 구해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베들레헴 아기 예수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평화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입술로 나와, 우리의 손과 발로 정의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소망을 만들어 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복음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은 완벽한 자리, 완벽한 사람, 완벽한 시간, 완벽한 조건에 맞춰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오신 시간, 자리, 사람은 모두 베들레헴 구유처럼 모자라고 불완전합니다. 그런 불완전한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아들은 기꺼이 들어오셔서 하늘의 평화와 정의를 만들고, 온 세계를 뒤덮은 불신과 차별의 벽을 허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거룩한 성탄의 아침입니다. 이 아침에 우리가 아기 예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동방박사들이 가져왔다는 그런 빛나고 값비싼 보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드릴 최상의 예물은 불완전한 우리의 삶을 평화의 왕께 그대로 맡기며 신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장 귀한 보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바로 저와 여러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주님은 그렇게 불완전한 우리 한가운데서 오셔서 위로와 평화로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모든 일상이 아기 예수가 누울 평화의 구유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아멘.

위 글은 중앙루터교회(최주훈 목사) 2018년 12월 25일 성탄 예배 설교문(제목: 평화를 만드시는 성탄의 예수 / 본문: 누가복음 2장 1-20절)입니다. 최주훈 목사의 허락을 받아 전문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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