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올해도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열렸다. '별 따라 예수께로'. 희생자 304명이 별이 되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을 예수께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지난 4년 반의 시간을 돌아보며 기도를 올렸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곁에서 함께 울어 주고 다독이는 사람들 덕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도와 격려에도, 사회적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절망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주님의 마음을 품은 수많은 사람을 보내 주어 감사하다. 그러나 그 감사한 마음이 언제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고, 자식이 보고 싶은 마음에 무너질 때도 있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지만 그 기도 역시 그리움을 넘어서지 못할 때가 많다. 감사하다가도 평안하다가도 아까운 생명이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소식을 접할 때면, 가라앉은 분노가 치솟아 올라 가슴을 치기도 하고 절망과 한숨으로 삶이 뒤죽박죽되기도 했다."

창현 엄마는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 진실을 알아내야 하는 숙명 앞에서 가족들이 물러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함께해 준 수많은 사람 덕분에 멈추지 않고 이 길을 갈 수 있었다. 가시밭길, 좁은 길일지라도 멈추지 않고 주어진 길을 가는 모습이 우리 사회에 희망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안산 4·16가족협의회 대강당에서 12월 21일 열린 예배에는, 단원고 희생자 엄마·아빠를 비롯해 기독교인 2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유대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온 예수가, 오늘날 사랑하는 자녀·형제·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안산을 품어 주길 기도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에 25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희생자 및 희생된 활동가 일일이 호명
예은 아빠 "세월호 참사는 304개 사건
위로와 진상 규명, 별개 아냐"

참석자들은 예배를 시작하며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는 시간을 보냈다. 미지 아빠, 세영 아빠, 윤민 엄마, 웅기 엄마, 건우 아빠, 순범 엄마, 영석 엄마, 주현 엄마, 은정 엄마, 지혜 엄마가 각 반 대표로 나와, 단원고 1반부터 10반까지 희생 학생들을 호명했다. 서울에서 온 나단아 씨와 생존자 아빠 장동원 씨는 각각 단원고 희생 교사, 일반인 미수습자와 별이 된 활동가의 이름을 불렀다.

희생자들 이름이 한 사람씩 빠르게 지나갔지만 사람들 마음속에는 긴 여운이 남았다.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아이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생존자 아빠 장동원 씨가 마지막 사람을 호명하고 참석자들에게 부탁했다. "희생자들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한 사람씩 호명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416합창단은 '어느 별이 되었을까'를 불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시대의 증언을 맡은 예은 아빠 유경근 집행위원장(416가족협의회)은 희생자 이름을 한 사람씩 불러 주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음도 아프지만 모든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예은 아빠는 세월호 참사를 304명이 희생된 하나의 사건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희생자 304명의 유가족들이 각각 겪은 304개의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304개의 사건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상 규명의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은 304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다. 모든 유가족이 왜 자신의 자녀와 형제들이 그렇게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야 한다. 단순히 304명이 왜 희생됐는지가 아니다. 우리 차웅이가 왜 희생됐는지, 창현이가 왜 이런 일을 겪었는지 모든 유가족이 사건의 진상을 납득하고 인정해야 한다."

예은 아빠는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과 참사를 규명하는 일이 별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예배와 기도에만 머무르지 말고 다음 단계로 행동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가 예배와 기도에서 서로의 마음과 확신을 확인했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섭리와 역사를 이루라며, 지혜와 재능을 허락해 주셨다.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라고 말씀하신다. 세월호 참사 진상을 밝히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예은 아빠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를 304개의 사건으로 인식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박득훈 목사 "사람의 가치가
숫자로 폄하되면 안 돼"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도 참여
"2기 특조위 통해 진상 규명되길"

박득훈 목사 역시 세월호 참사를 대할 때 304라는 숫자보다 희생자 개개인을 기억할 것을 당부했다. 박 목사는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의 이름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대하는 분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박득훈 목사는 사람의 가치가 숫자로 폄하되지 않고, 안전한 사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자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만만치 않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말자.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며 끝까지 함께하자"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당시 헌법재판관이었던 김이수 전 재판관도 예배에 참석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를 탄핵 심판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전 재판관은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 및 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소수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김 전 재판관은 그동안 공직을 맡아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며, 이제서야 세월호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갑다고 말했다. 그는 "뼈가 시린 아픔 속에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흔들리지 않고 싸우는 가족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연대하며 성탄 예배에 참석한 기독교인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정체성과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김 전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가족들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안전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진상을 은폐하고 조사를 방해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며, 국가가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진상 규명을 담당한 사회적조사특별조사위(특조위)는 12월 11일 직권조사를 의결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김 전 재판관은 "특조위가 새로운 특별법에 따라 출범했다. 4·16 가족 여러분의 염원과 희망이 이 위원회를 통해 더 빨리 실현되길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박득훈 목사는 사람의 가치를 숫자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이수 전 재판관은 진상 규명을 위해 싸우는 가족들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참석자들은 예배가 끝난 뒤 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행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배가 끝난 뒤, 세월호 가족과 참석자들은 416가족협의회 대강당에서 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30분 동안 행진했다. 행진에 참여한 100여 명은, 겉에 희생자들 이름이 적혀 있는 작은 등을 들었다. 연노란 불빛의 한 무리가 어두컴컴한 생명안전공원 부지를 감싸 안았다. 이들은 마지막 순서로 부지를 바라보며 구호를 외쳤다.

"온전한 진실 규명! 기억의 추모 공원! 주님께 기쁨이고 우리의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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