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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선 공동체
[예배당 건축 기행] 모새골공동체교회의 건축을 들여다보며
  • 주원규 (bay3135@hanmail.net)
  • 승인 2018.12.21 19:10

영성, 그리고 공동체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모새골공동체교회. 교회 소개를 보면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모새골은 기도원, 수양관, 수도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의 좋은 전통과 지혜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로 설립된, 새로운 개념의 영성 공동체입니다."

모새골은 자신들이 설립한 교회 정체성을 영성 공동체라 규정한다. 잠정적인 지향점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동체란 명명은 태생적으로 모호한 구석이 있다. 보기에 따라 공동체는 매우 명확하고 확실해 보이는 정의일 수도 있지만, 상당히 추상적이고 그 스펙트럼이 광범위한 구석도 없지 않다. 거기에 '영성'이란 개념까지 합쳐져 '영성 공동체'가 되면 추상적 요소가 더 확장되거나, 반대로 정체성이 분명해질 수도 있다.

'영성'이란 개념은 이제 기독교 역사에서 필수 미덕으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그렇지만 영성 추구란 개념이 현대사회의 탈종교화한 트렌드로도 자리 잡았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포스트모던의 물결을 외면할 수 없는 종교 소비 사회를 맞이했다. 일종의 강제 개방과 같은 형국인데, 이러한 시류에 본의 아니게 스며들어 온 모새골은 갈수록 '영성 공동체'란 개념을 두고 모호성과 명확성 사이에서 택일하라는 강요에 기울어진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질문 앞에서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모새골공동체교회 공간이 전시하고자 하는, 이른바 '날마다 새로워지는' 건축적 의미 탐색 역시 요청받게 될 것이다.

본 칼럼은 영성과 공동체, 두 개념으로 대표되는 모새골 공간의 건축적 의미와 21세기 한국 사회 종교 공동체가 가져야 할 가변적 정체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모새골공동체교회 전경.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공간의 여백

모새골교회는 그 초입부터 여백의 분위기를 풍기는 느낌이다. 조금은 협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을 사이에 두고 곳곳에 세워진 건물들이 주는 인상은 여백 그 자체였다. 또한 그 여백의 틈새를 통해 스며드는 사유의 미에 대한 감흥도 뒤따랐다.

가장 높은 위치의 지대에 있는 채플 건축물을 중심으로 조금씩 하강된 위치에 자리 잡은 코이노이아홀, 만나홀, 게스트하우스 등의 건축물은 각 건물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이 건축물 각자에 고유한 독립성을 부여했는데, 건축물들이 자아내는 정서는 고립과 양가적 긴장을 조성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채우는 건 별도의 장식이나 벽면이 아니다. 녹빛으로 채색한 정돈된 나무와 잔디였다. 자연이 품은 본연의 미가 독립된 건물 사이의 여백을 채우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미의 배치는 오히려 여백을 여백 그대로 보존해 놓은 듯한 미학을 제공한다. 이렇듯 건물과 건물 사이에 형성된 여백의 긴장은, 그 주류를 이루는 고립의 정서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무류의 가치를 배양해 내는 자동 발화의 메커니즘으로 읽히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모새골 건축은 자동 발화의 메커니즘 그 끝자락에 래버린스(Labyrinth)가 존재하는 것으로 그 감흥을 절정에 다다르게 한다. 미로의 길은 채플 건축물에서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다 보면 나타난다. 샤르트르대성당 안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래버린스가 모새골에선 순수 자연재인 잔디와 자갈로 조성되었다. 이는 개신교 특유의 전통적으로 고착화한 텍스트로서 말씀 묵상보다는 몸의 걷기를 통해 체득되는 묵상으로, 기존 종교 전통의 발전적 변주를 꾀하고 있다. 자연, 여백, 본연 등의 가치를 향한 회귀에 집중하는, 행위 아닌 행위에 경도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래버린스에서 몸의 걷기는 침묵과 연결된다. 이때 침묵은 언어를 가두거나 멈추는 행위만이 아니다. 침묵은 언어를 상호 전달의 호용성이 아닌, 내면세계로 몰입하는 것을 지원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내면 행위의 일종이다. 그러한 침묵과 함께 래버린스, 미로의 도상 위를 차분히 따르는 몸의 걷기는 존재 자신이 길 위에 있음을 더욱 확실하게 각인해 주는 내면화 작업을 필연적으로 이끌어 낸다. 침묵을 통해 언어를 세속 세계와의 기능적 조탁만이 아닌 내면세계를 향한 집중으로 의미 전환을 기획하게 만드는 데, 거기에 덧붙여지는 미로의 길 걷기는 궁극적으로 자기 세계를 향한 집중으로 상위 전환을 촉진하게 한다.

이 지점에서 영성의 고절적 미덕으로 통하는 '내면의 빛'1)이 그 자체로 주목을 받는다. 모새골은 건축 공간의 심플함, 여백과 그 너머에 숨 쉬는 역설의 리얼리티 등을 통해 '내면의 빛'을 통한 궁극적 신비와의 조우를 가속화한다.

모새골공동체교회로 가려면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야 한다.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이용한 박스 형태의 건축물은 장식적 요소의 철저한 배제라는 의지로 일관되었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 공법이 지향하는 건축적 메시지는 솔직함 그 이상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궁극적 목표는, 있는 그대로의 지속일 것이다. 점유된 공간인 건축물에는, 있는 그대로를 노출하는 것을 감추려는 본성이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감추기 위한 장식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노출 콘크리트, 거기에 덧붙여지는 박스 형태의 건축물 조성은 일체의 장식 의지를 배제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 발화를 도모하는 데 헌신되는 것이다.

자연 발화를 향한 적극적 견인 의지는 채플 건축물 내부에 구성된 창의 위치에서 두드러진다. 채플 안쪽 천장에 마련된 창과 함께, 사람이 앉을 만한 의자 정도의 낮은 높이에 설치된 측면의 창은 빛의 하방下方을 지속하게 해 주어 빛의 모태성이라는 현상적 의미를 적극 이끌어 낸다. 위에서부터 직하해 내려오는 빛이 신비의 일방적 임재와 현존을 상징한다면, 측면 하부에서 잔잔한 강물이 흐르듯, 때론 흐느끼듯 존재의 바닥 신음을 조성하는 빛의 지속은 신비의 일상성 내지는 윤색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신비 자체를 향한 주목을 일깨운다.

이쯤 되자 궁금증이 생긴다. 모새골이란 이름으로 명명한 한 공동체가 일궈 낸 일종의 점유 공간이 가져온 효과는 내면의 빛을 향한 집중이란 키워드로 대표된다. 바로 그 '내면의 빛'이 가져오는 자연 발화 효과를 영성의 출현이라고 본다면 최소한 영성의 자장에 이끌려 모인 모새골공동체 구성원이 어떤 형태의 각성을 일으키고 그 각성을 지속시키는지에 대해 말이다.

모새골공동체교회 채플 건물.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채플 내부.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채플 안쪽 천장에 창문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다시, 공동체를 생각하다

모새골공동체의 시작은 다소 아이러니한 느낌이다. 한국의 대표적 조직 교회인 영락교회 담임목사 출신인 임영수 목사에 의해 태동되었다는 점이 그렇다. 거기에 모새골은 개신교의 요란스러운 소동이나 감정적 발흥을 일으키는 기도원이나 수련원 같은 분위기를 지양하면서도, 가톨릭 수도원처럼 세속과 철저히 분리된 공동체를 따르는 것도 아닌 (굳이 표현하자면) 제3의 길을 표방하는 듯 보인다.

제3의 길은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성 회복을 도모한다. 그로 인해 세속 도시에서 무례하게 길들여진 범속한 가치 틈새에 숨어 있던 신비를 이끌어 낸다. 그 과정에서 출현하는 '내면의 빛'과 개신교의 존재 가치라 볼 수 있는 말씀의 적극적 조우를 통해 영성의 궁극을 탐색케 하는 공동체로의 안착을 도모한다.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면, 과연 그렇다면 이 길은 추상적이면서도 명확한, 양립 불가한 양가성의 동시 진행이 계속되는 길이다. 말 그대로 새롭지 않을 수 없는 길, 제3의 길이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오해의 우려를 감수하고서 묻고자 한다. 사실 '새롭지 않을 수 없는 길'을 흔쾌히 따를 수 있는 이들은 늘 소수였다. 그 길을 개척해 가는 모새골 구성원들에게 임영수 목사로 대표되는 교회 전통에서 빗겨 가지 않았다는 정서적 안정감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새골이 어떤 체모體貌를 갖추게 될지 장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모새골은 그 출범 배경이 되는, 안착할 수 있는 교회 전통을 숨기지 않으면서 현재를 지속하는 공동체의 지향점을 철저히 '내면의 빛' 그 자체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의지도 숨기지 않는다. 모새골은 안락한 쉼과 심리적 치유를 얻고자 하는 마음의 휴식 제공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또한 반대로 어떤 종교 전통의 고착화한 패턴이나 유행에 편승한 종교 감정의 고양을 도모하는 시도에 대해서도 엄격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능케 하는 배경엔 결국 '내면의 빛'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있다. '내면의 빛'은 구태와 허울뿐인 장식의 가지치기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려는 시도이다. 매순간 극도로 정련된 본연의 '나'와 대면해야만 한다. 그 대면을 감당하고 지속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새골의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 모티브는 아무도 남지 않을 황무지가 되거나,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궁극의 신비를 발견하는 좋은 땅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 가능성을 감히 '길 위에 선 공동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코이노이아홀.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게스트하우스.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길 위에 선 공동체

모새골은 자신들이 점유한 시공의 한 중심에서 스스로 적시한 자기 정체성을 비교적 선명하게 밝히는 듯 하다. 그들을 감싸 안은 공동체는 길 위의 공동체와 다름없다.

세속 도시를 벗어난 일상의 밖에서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자연 그대로 인간 그대로의 본연을 묵묵히 수행하여 일상성의 소중함을 환기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게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길'이 아닐까 한다. 이와 같은 '길'에 대한 개념 합의가 가능하다면, 길 위의 공동체는 곧 모새골의 정체성이라고 봐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확신이 생긴다.

모새골공동체교회 채플 건물. 야경. 사진 제공 모새골공동체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솔직히 밝혀 보자.

'길'은 낭만적이지 않다. 길 위에 선 인생은 외로움, 몰이해, 고독, 가난함, 시대와의 불화 등으로 점철돼 있는 게 사실이다. 예수의 생애는, 한마디로 압축해 본다면 '길'에서 시작해 '길' 위에서 끝난 인생 아니던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던가. 십자가 처형이다. 그 십자가를 낭만적으로 윤색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십자가는 지독한 수치와 고독의 독배일 뿐이다.

길 위의 공동체 모새골은 21세기 한국 종교사회에 숙주처럼 자라난 자기중심적 치유나 교양으로서의 영성 추구 같은 유행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방향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낭만의 옵션을 죄다 거둬 낸 존재의 민낯과 대면하기를 외면할 경우 모새골은 모두가 새로워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두가 영성을 달달한 자기 위로의 도구로만 소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 것이다. 그런 소비주의 영성으로 퇴락하지 않는 모새골이 되길, 미로의 길을 쉼 없이 걸으며 기도하고 싶다.

1) 임영수 목사는 <기독교사상>과의 인터뷰에서 이 '내면의 빛' 개념을 인간이 본래부터 가진 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말한다고 밝힌다.

소설가 주원규 목사가 '예배당 건축 기행'을 격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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