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빠른 속도로 교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이정훈 교수의 강연 내용을 검증합니다. 그는 좌파 세력이 동성애를 투쟁 전술로 삼아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대 철학을 편향적으로 소개해 왔습니다. 마지막 기사에서는 보수 개신교가 이정훈에 왜 열광하는지와 기독교인이 현대 철학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 편집자 주

"얼마 전 프랑스의 언론인인 에릭 제무르라는 분이 <프랑스의 자살 Le Suicide Francais>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지금 프랑스는 이슬람이나 동성애 등의 문제로 자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시작이 68혁명이었다는 것입니다."

"68혁명으로 인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병폐 현상이 바로 동성애 문제였습니다. 동성 결혼 반대 단체도 68혁명의 이데올로기가 현재 동성애의 뿌리라고 주장했어요. 이처럼 68혁명 때문에 프랑스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거예요."

"빌헬름 라이히는 그때부터 성욕을 억제하는 제도나 문화에 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욕이란 무제한으로 풀고 그 발산을 인정해야 한다는 성 해방 이론을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동기에서 성 정치가 나오고 네오마르크시즘이 등장한 거예요."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불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에는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과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거예요."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이정훈 교수(울산대) 주장처럼 보이는 이 글은, 3년 전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했던 설교 본문이다. 소 목사는 2015년 5월 31일 주일예배에서 '동성애, 당신도 동의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본문에는 익숙한 이름과 개념, 사건이 등장한다. 바로 이정훈 교수가 젠더 이데올로기 강연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던 빌헬름 라이히와 성 정치, 68혁명과 동성애 등이다.

소강석 목사는 이정훈 교수와 비슷한 논리로 동성애의 확산을 경고한다. 빌헬름 라이히의 성 정치 이론이 네오마르크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었고, 이 사상 영향으로 유럽이 68혁명 때 동성애 낙원이 됐다는 것이다. 결론에 들어서는 현대 한국교회도 동성애 위협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이 설교에는, 이정훈 교수가 최근 강연에서 68혁명을 해석할 때 근거로 든 프랑스 우파 언론인 에릭 제무르의 책 <프랑스의 자살>까지 똑같이 등장한다.

이정훈 교수의 젠더 이데올로기 강연과 소 목사의 3년 전 설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보수 개신교가 동성애를 설명하는 논법이 있다. 개신교를 적대하는 이데올로기가 동성애를 퍼뜨리며 유럽에 이어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화자만 달리한 채 한국교회를 떠돌아다니며, 교인들에게 막연한 공포와 위기감·혐오를 심고 있다.

이정훈 교수는 법철학자답게 현대 철학의 흐름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젠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설명하지만,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교회 공격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미 수년 전 해외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뉴스앤조이>는 왜 이런 현상이 반복해서 발생하는지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아울러 기독교인이 현대 철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들어 봤다.

이정훈 교수의 젠더 이데올로기 강연은 알고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담론
반복 재생산
2012년 독일 사회학자
쿠비의 책에서 시작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김현준 연구원은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프레임이 거의 '복붙'(복사하기와 붙여 넣기) 수준으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2017년 가을 <문화과학 91호>에 게재한 '개신교 우익 청년 대중운동의 형성: 극우 정치에서 개신교의 효용과 문화 구조'에서 "(동성애에 대한) 영적 전쟁, 문화 전쟁 프레임은 보수 개신교 진영의 대학 및 학계와 지역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으며 "최근 각 교단의 공식 교리 수준으로 승인되고 (중략) 동성애·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이단 사냥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수 개신교가 빌헬름 라이히와 성 정치 이론, 68혁명 등을 소개하며 동성애 확산을 경고하는 반동성애 프레임은, 사실 해외에서 먼저 시작했다. 김현준 연구원은 그 기원을 독일 사회학자 가브리엘 쿠비에서 찾았다. 쿠비는 2012년 출간한 <글로벌 성 혁명 The Global Sexual Revolution>(밝은생각)에서, 프랑스 68혁명을 기점으로 확산하고 있는 젠더 이데올로기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쿠비는 2017년 6월 2일, 한국 보수 개신교가 주최한 '생명, 가정, 효 컨퍼런스'에 주 강사로 참석했다. 그는 유럽 사회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앞세운 성 혁명의 영향으로 기존 질서와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며,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쿠비는 현대인들이 성욕 해소에 집착한 나머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여기고 성을 직접 결정하기까지 한다며, 하나님을 떠나 욕망의 노예로 사는 길은 결국 자신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신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도 2015년 1월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이라는 소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유럽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젠더주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세운 창조질서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인데, 종말적인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도래할 불법 시대에 관련한 성경의 예언들을 성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교회가 이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터 바이어하우스는 젠더주의가 확산하면 많은 기독교인이 핍박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종교의자유·표현의자유와 관련한 기본권이 점차 침해·억압당하고 있다. 이미 영국이나 스웨덴에서 소위 증오법(hate laws)이 도입되어, 동성애자나 레즈비언이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는 모든 언사에 대해 형벌로 위협하고 있다"고 썼다. 이 소논문은 발표 당시 국내 교계 언론사들이 전문을 보도하는 등 관심을 받았다.

<글로벌 성 혁명> 저자 가브리엘 쿠비(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지난해 6월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행사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내적 갱신 대신 발견한 적
동성애와 이슬람
개신교의 '희생양 만들기'
"이정훈 교수는 소환된 것"

전문가들은 이정훈 교수 주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교수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개신교인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직신학자 이신건 교수(서울신대)는, 보수 개신교가 교인들을 결집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동성애·이슬람 등 외부의 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2월 16일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세습, 비리, 성 문제 등이 터지면서 한국교회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후퇴하고 있다. 내적 갱신이 어려우니 쉬운 방법으로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교회 생활에 전념하게 하기 위해 이정훈 교수와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현준 연구원은 '개신교 우익 청년 대중운동의 형성' 논문에서, 보수 개신교가 반동성애 담론을 펼치는 모습에 대해 "한국교회 내부적 위기 요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이자, 종교적 세계관 혹은 가치의 위기와 정체성 위협에 대한 수세적 반격 혹은 문화적 방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담론은 혐오와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실천 감각의 양태로 교인들 일상에 착근된다. 결과적으로 한국 보수 개신교는 교세 감소가 사회 좌경화와 포스트모더니즘(세속화·다원주의·해체주의·페미니즘·퀴어)이라는 반기독교적 조류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김동규 박사는, 보수 개신교가 이정훈 교수라는 인물을 소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정훈 교수 주장만 문제 삼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반동성애 담론을 확산해 온 보수 개신교가 필요에 맞아 불러낸 인물이다. 교계가 근본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이 교수와 같은 인물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수 개신교의 반동성애 프레임은 매번 비슷한 논리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현대사회, 다양한 종교·문화 구성
"동시대 이해, 타인과 공존 위해
현대 철학 올바른 이해 필요"
"물질·기술 가치 우선 시대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

전문가들은 후기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 철학을 단순히 반신학·패륜 사상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온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오늘날에는 주류 철학이 없는 시대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이다', '현대 철학이 무엇이다'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복잡한 현대사상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한 채, 반기독교적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부분 유물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꼭 부정적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근대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를 약화한 기능도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충분히 이러한 점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윤리 부분에서 확산하는 상대주의나 다원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각 사상을 제대로 알고 선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철학신학을 가르치는 강영안 교수는 <철학과현실 40호>(철학문화연구소)에 게재한 '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 사이'에서, 현대 철학이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인간의 탈중심화를 유발했다고 해서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현대 철학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무엇보다 자아의 절대성, 이성의 자율성 등을 비판함으로써 인간 주체가 세계의 근원이며 절대 주재자란 생각을 깨뜨리는 데 유럽 철학이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성은 절대적 근원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합리화하고 은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성은 계급적 관심에 봉사하거나(마르크스), 숨겨진 힘에의 의지를 은폐하거나(니체), 무의식적 사고의 표출을 왜곡한다(프로이트). (중략) 어떤 의미에서 현대 철학은 인간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 주지 않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철학과현실 40호> '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 사이', 56쪽)

무엇보다 현대 철학은 2차 세계대전, 대량 학살, 관료제 사회 등을 거치며 탄생한 사조다. 강 교수는 "체제와 구조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 상호 간의 윤리적인 관계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은 철학이었다"고 썼다.

강영안 교수는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관심을 보일 때 비로소 우리가 윤리적이라 부를 수 있는 전망을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은, 오직 기술적 가치만이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인정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귀 기울여 들어 볼 수 있는 목소리일 것이다"고 했다.

김성민 대표(철학학교 짓다)도 철학자나 사상가 이론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저마다 인류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시대를 앞서서 내놓은 분석과 사유의 지점이 있는데, 그런 부분은 언급하지 않은 채 '무신론', '유물론', '반기독교'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학자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과 공존하기 위해서라도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기독교인도 알게 모르게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인 삶의 태도를 끌어안으며 살고 있다. 우리가 동시대를 이해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현대사상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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