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팀 켈러의 여러 저술이 한국 교계를 휩쓸었다. 특히 현직 목회자 사이에 팀 켈러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그가 이미 19세기 말부터 미국 최첨단 자본주의 및 세속 도시 사회를 대표하는 뉴욕, 그중에서도 황금 송아지가 신으로 숭배되며 기독교를 포함한 전통적 종교 가치가 멸시와 조롱을 받던 맨해튼의 경영인, 지성인 및 청년층을 중심으로 은근하고 지속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이들 다수를 다시 교회와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영신학, 교회성장주의, 자유시장자본주의, 소비자중심주의, 청중 중심의 편안하고 듣기 좋은 설교와 공간 배치, 효율적인 소그룹 체계, 한곳에서 모든 영역을 다 체험할 수 있는 문화 센터형 교회.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복음주의 유명 대형 교회들이 추구하고 선전한 가치였다. 성장과 성공을 꿈꾸는 많은 한국 목회자가 이 방식을 따랐다. 이런 가치들이 교회 외형의 성장을 이루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로 대변되는 복음의 본질이 마비되거나 상실되는 부작용이 심각했다. 또한 이런 목회 프로그램 대부분에는 역사적 기독교가 보유한 지성·사회성·공공성이 결핍되어 있었다.

팀 켈러는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전통 기독교의 역사적 주장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지·정·의를 통합하고, 영혼과 육체, 세상과 교회, 현장 목회와 학계 학문,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를 통합했다. 성경적 원시 복음과 종교개혁 신학의 통전성·총체성을 강조하는 목회로 가장 세속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현대인이 모여 사는 맨해튼을 넘어, 미국 전역과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 또한 지난 학기에 소속된 학교에서 '선교와 변증' 과목을 맡아 가르치면서, 팀 켈러의 저술 몇 권을 교재로 택해서 함께 읽고 발제하고 토론하면서 큰 유익을 얻었다. 켈러의 유용성은 분명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이룬 한국 사회,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공동체 가치를 상실하고, 급속한 다원주의 환경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 이후 합의되고 통일된 가치관을 상실하면서 거대한 맨해튼이 된 한국 사회에 켈러의 메시지가 주는 시의성과 적절성에 적잖이 감탄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 켈러의 생각과 적용에 아무리 지리와 국가를 초월하는 시의적절성이 있다고 해도, 켈러는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21세기 초 미국의 특수 현실에서, 미국인에게 말하는 목회자였다. 이것이 분명한 한계였다. 우리 현실에 온전히 와닿지 못하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 토론 중 수차례 지적되었다. 결국,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이 처한 현실과 경험에 더 밀착하여,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문제 안에 함께 들어가 함께 해결책을 제시하는 우리 저자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더 커졌다.

<불편한 믿음 - 인문학으로 푸는 믿음의 공식> / 이성조 지음 / 두란노 펴냄 / 224쪽 / 1만 2000원

필자는 <불편한 믿음 - 인문학으로 푸는 믿음의 공식>(두란노)을 읽으며 이런 아쉬움을 어느 정도 덜어 낼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팀 켈러가 있다는 안도 같은 것이었다. 저자의 이력이 특별하다.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 오빠'로 자란 저자는 아버지가 갔던 길과 다른, 좀 더 경제력 있는 안정적인 길을 가기 위해 경영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는 부르심에 따라 다시 신학의 길에 오른 그는 최종 박사 학위를 교육학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늦지 않은 나이에 최종 학위를 받아 충분히 오래 꿈꾸었던 교수로서의 길을 가는 대신, 유학지 보스턴에서 유학생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개척 목회자의 길을 결정한다.

보스턴은, 뉴욕 맨해튼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미국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가장 세속적인 도시다. 이렇게 11년간 광야를 경험한 그는 몇 년 전 돌연 귀국했다. 귀국 후에도 그는 맨해튼과도 방불한 양재동 한복판에 교회를 개척해 청년 및 지성인들과 부대끼며 목회를 한다. 또한 어쩌면 오늘날 가장 어려운 선교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대학 강단에서도 기독교인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통 가능한 기독교를 소개하는 교양과목을 전문으로 맡아 가르친다.

저자의 글에는 신학과 철학, 교육학, 경영학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학식이 넘쳐난다. 머리는 총명하나 혀가 우둔하다면, 그 학식은 소통과 공감 없는 무의미한 학자들의 문자 놀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오랜 기간 청년 및 지성인과 함께 디아스포라 교회 현장에서 떡을 떼고 몸을 부대끼며 놀고 웃고 운 탓에, 공감과 소통의 언어를 탁월하게 구사한다. 임마누엘 레비나스 철학의 옷을 입고 타자성(otherness)를 말하고, 빅토르 위고와 함께 레미제라블을 읽고 부르며 취약함의 능력(vulnerability)을 외치고, 존 롤스와 함께 정의를 부르짖으며, 에리히 프롬과 함께 사랑이 가진 기술의 여러 측면을 논한다.

그러나 이런 소위 '인문학'은 저자의 글에서 기독교 복음의 본질인 '믿음'의 전복성을 설득하고 변호하는 공식으로 활용된다. 물론, 오늘날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마치 교회와 목회와 신학과 기독인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남발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의심 없는 믿음과 즉각적인 순종이라는 절대명령과 의무의 틀로 신앙과 생활이 규정되는 시기는 이제 우리에게도 과거가 되었다. 지적 설득, 정서적 공감, 의지적 결단이 모두 통합적으로 작용해야만 믿고, 느끼고, 반응하고, 따르고, 행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바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오늘이다. 거대한 맨해튼과도 같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켈러, 루이스, 얀시가 필요하다. <불편한 믿음>은 우리에게도 그런 예언자와 사도가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

이재근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선교학),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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