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넘쳐흐르던 요단강을 건넜다. 그것도 마른 땅으로. 그러니 주변 나라들 간담이 서늘할 수밖에. 길갈에 진을 치고 유월절을 지켰고 할례를 행한다. 여리고가 궁금했던지 살금살금 여리고성을 향해 다가간다. 그런데 갑자기 완전무장을 하고 검을 들고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기겁을 한 여호수아는 그 사람의 정체를 알기 위해 소리친다.

"넌 아군이냐, 적군이냐?"

"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신을 벗는 행위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핵심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 자신의 권리, 자신의 명에, 자신의 지혜, 자신의 주장 등 모든 것을 내려놓아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신을 벗는 행위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새롭게 주어진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종이 주인에게 명령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심리학에 질문한다. "너는 누구의 편이냐?" 안타깝게도 심리학은 말을 할 수 없다. 누군가는 심리학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누군가는 적의 탈을 쓴 아군이라고 치켜세운다. 심리학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기 원한다면 게리 콜린스의 <심리학과 신학의 통합 전망>(솔로몬)을 참고하면 어떨까.

<핵심 감정 탐구 - 핵심 감정 신학으로 다시 읽기> / 노승수 지음 / 세움북스 펴냄 / 256쪽 / 1만 3000원

오늘 소개하는 <핵심 감정 탐구>(세움북스)는 신학의 전제 아래 신학과 심리학이 통합되거나 재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적 토대 위에 있고 종교에 배타적 성향을 가졌다 할지라도 심리학은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전에 신학적 관점에서 심리학에게서 신을 벗겨야 한다. 이 책은 신을 벗긴 심리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잘 보여 준다.

두어 달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핵심 감정'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심리학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구심이 일었다. 일소되지 않은 의구심은 책을 깊이 읽지 못하게 막았고, 망각의 늪에 던지고 말았다. 그러다 '핵심 감정' 2편에 해당되는 <핵심 감정 치유>(세움북스)가 내 손에 들렸을 때, <핵심 감정 탐구>를 읽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핵심 감정'은 뭘까. 이 정체불명의 기묘한 단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핵심 감정 탐구> PART1과 PART2는 핵심 감정의 기원과 정의, 핵심 감정의 다양한 종류를 심리학 차원에서 소개한다. PART3과 PART4는 신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PART3에서는 '핵심 감정의 신학적인 재해석'을 통해 심리학의 신을 벗긴다. 마지막 PART4는 재해석한 핵심 감정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응용할 것인지 논한다. 심리학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볼 수 있게 한다.

핵심 감정은 아직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영어로는 'nuclear feel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영어를 읽지 않았다면 용어를 오해했을 것이다. 영어 'nuclear'는 핵, 즉 원자력을 뜻한다. 원자력 감정?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핵심 감정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희귀하다. 몇 가지 검색 결과가 있지만, 정의나 해설이 아닌 체험담이 전부다. 아직 일반화하지 않은 용어인 듯하다.

핵심 감정은 정신과 의사인 소암 이동식 선생(1920~2014)이 처음 사용했다. 이동식 선생이 말하는 핵심 감정은 "내담자가 느끼는 주관적 감정 자체를 가리키며 치료자가 내담자와 주객일치의 상태에서 같이 느껴야 한다"(28쪽)는 뜻이다. 이동식은 자신의 정신 치료를 '도 정신 치료'라고 명명했다. 우주적 자아 브라만과 개체적 자아 아트만이 같은 범아 일여의 가르침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핵심 감정은 "한 사람의 행동과 사고와 정서를 지배하는 중심 감정"이며, 어떤 대상에게서 사랑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29쪽). 핵심 감정은 뒤틀린 관계로 일어나는 좌절감의 일종인 셈이다.

저자는 핵심 감정을 "무의식적 동기"이자 "부패한 본성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개인화하고 인격화한 형태의 감정"이라고 말한다(30쪽). 더 나아가 바울이 말한 '육'과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한다. 이동식은 어릴 때 형성된 핵심 감정은 일평생 그 사람을 좌지우지하며, 오직 "자비심, 인으로만 치료가 가능"(31쪽)하다고 본다. 행복과 평안을 얻기 원한다면 반드시 핵심 감정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부패한 본성이며, 타락한 심성에서 나오는 감정 상태이기 때문이다.

핵심 감정은 '부담감'·'그리운'·'경쟁심'·'억울함'·'불안'·'두려움'·'열등감'·'슬픔'·'무기력'·'허무'·'소외'·'분노' 등 열두 가지 특징으로 드러난다. 검사를 해 보니 필자는 '두려움'이 가장 높았고, '분노'와 '억울함'이 뒤를 이었다. PART2에서 '핵심 감정의 실제'를 다룬다. 이곳에 나타난 '두려움'의 실제를 살펴보니 억울함과 적개심을 갖고 있으며, 위축된 상태로 살아간다고 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존재의 거부로 나타난다. 핵심 감정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다. 두려움을 가진 이들은 "징벌하시는 하나님"(65쪽)의 표상을 갖는다. 자신에게 있는 고난을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부담감'은 지배적 양육 태도에서 비롯한 과도한 인정 욕구의 결과라고 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고, 압박감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성향이 있다. 결국 일을 처리하지 못해 "결정적 순간에 위축과 도피 기제가 발동하여 노력에 비해 낮은 성공률"(50쪽)을 보인다.

분석해 놓은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한편으로는 섬뜩할 정도로 숨겨진 마음을 해부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이 목사가 아닌 무신론자에 의해 서술됐다면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용한 점쟁이가 점을 보러 온 사람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말하는 것처럼. 저자는 핵심 감정을 성경적 관점에서 명료하게 분석한 다음, 그로 인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개혁신학 입장에서 풀어놓는다. 핵심 감정의 종류마다 나타나는 하나님에 대한 표상들을 적절하게 소개해 신학적 관점에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PART3이 감정에 대한 신학적 기원과 정당성을 찾는다면, PART4는 신을 벗은 핵심 감정을 통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알려 준다. 핵심 감정은 부패한 본성 속에 있는 욕구다. 갈망이자 "경향성"(165쪽)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핵심 감정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거듭나기 전 겪은 영혼의 갈증이다. 이는 왜곡돼 있고,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는 일종의 무능이다. 개혁신학을 이것을 '전적 타락'이라 부른다. 저자는 PART4에서 핵심 감정을 통해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소개한다.

전체 흐름은 어렵지 않았지만 생경한 용어들이 등장했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상담학 관련 서적을 적지 않게 읽었지만, 이번 책은 다른 상담 서적과도 이질감이 느껴진다. 다행히 책 앞부분에 어려운 용어들을 개략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예를 들어 '욕동'이라는 단어는 금시초문이었다. 찾아보니 "추동의 생리학적 형태의 힘"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추동'은 "욕동이 정신에 표상이 되어 특정한 방향으로 힘이 드러나는 것. 의존적 사랑의 욕구, 적개심 등이 있음"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제 <핵심 감정 치유>를 읽을 차례가 된 것 같다. 저자 소개대로 이 책은 '심리학적 신학'이다. 즉, 심리학이 아니다.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사람을 읽는다. 핵심 감정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 반응'인 셈이다. 비록 핵심 감정이 무신론적이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 의해 시작됐지만 그의 신을 벗기면 매우 유용한 도구다. 세상의 모든 지혜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정현욱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목사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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