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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혁신의 갈림길에서
[예배당 건축 기행] 정동제일교회를 통해 본 한국교회의 미래
  • 주원규 (bay3135@hanmail.net)
  • 승인 2018.12.07 19:12

종교 문화를 일군 교회

정동제일교회는 한국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건축물이자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표 교회다.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정동제일교회의 역사적 가치는 그렇다. 한국 개신교사를 대표하는 교회라는 위상은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는 예배만 볼 수 있기 위한 방편으로 한옥집을 구입해 개조한 뒤 그곳을 '벧엘예배당'이라 불렀다. 교회 근처로는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있었고 교회는 이 학당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에 개화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갑신정변으로 미국에 망명했다가 귀국한 서재필은 배재학당에서 강의하며 청년들의 사회참여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일환으로 협성회를 조직했는데, 협성회 주요 인물들이 정동교회 청년회에 들어오는 일이 전개되었다. 그로 인해 정동교회 청년회는 당시 어느 단체보다 의식 있는 집단으로 성장해 반일 민족 독립운동을 병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 속 사회, 사회 속 교회의 역할을 수행했다.

설립자 아펜젤러 선교사 동상. 뉴스앤조이 장명성

정동제일교회는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표 교회다. 사진은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기념관 내부. 뉴스앤조이 장명성

이렇듯 정동제일교회는 교회가 한 사회에 도입되고 향후 정착하는 과정에 있어 나름의 안정감을 가진 종교 문화를 형성해 온 저력을 보여 준다. 종교 문화라 함은, 종교가 한 사회에서 게토화한 개별 공동체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 점유체로 지속 가능해졌음을 뜻한다. 정동제일교회는 그런 맥락에서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개신교가 종교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가진 역사적 저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동력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종교 문화의 한 축을 점유한 정동제일교회의 교회적 전통과 교회의 항구적 정체성인 혁신과의 조응이 어떤 측면에서 가능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정동제일교회 전경. 뉴스앤조이 장명성

아펜젤러기념관 내부에 있는 교회 모형. 뉴스앤조이 장명성

교회 전통의 전거
- 한국 최초 본격적인 서양식 교회당

그것은 아마도 건강한 자극일 것이다.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는 당시 언더우드의 새문안교회 설립에 자극을 받았던 모양인지 다소 급하게 미국으로부터 교회 설계도를 주문해 예배당 신축을 추진했던 걸로 보인다. 달리 보면 이는 단순한 자극과 경쟁 심리에 의한 선택만은 아니다. 정동제일교회는 빠른 속도로 교인 수의 급성장을 경험했다. 예배 인원이 500명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1895년 9월 9일 착공해 1897년 12월 26일 예배당 봉헌식을 한 이 건물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최초의 본격적인 서양식 교회당이 되었다.

1918년 한국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기도 한 우리나라 최고의 빅토리아식 교회로 알려진 정동제일교회는 1977년 문화공보부에 의해 19세기 건축물인 붉은 벽돌 예배당은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 인정된 것이다.

외관에서 풍기는 빅토리아식 교회의 화려함과는 부조화를 이루는 듯 내부는 간결하고 단아한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 외벽 건물은 벽돌 쌓기로 큰 벽체를 구성하고 아치 모양의 창문을 낸 고딕 양식의 교회당인 이곳은 평면구조가 성단聖壇 부분에 익부翼部가 달린 십자형으로 구성되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평천장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외부의 고딕 양식을 생각하면 최소 장식으로 마감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둥은 별다른 장식 없이 소박한 정서를 유지한다.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세기 교회 건물로 알려진 정동제일교회 붉은 벽돌 예배당을 건축적 위용으로만 단순 비교하면 미국이나 유럽에 자리 잡은 고딕 양식의 건물들에 비해 초라하고 단출한, 공장이나 창고를 닮은 공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건물의 가치는 한반도에 한국 개신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심성과 어우러지는 생명의 사건이란 측면에서 조망되어야 할 것이며, 그 측면에서 본 건물 가치는 절정의 감흥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정동제일교회를 기폭제로 터져 오른 한국교회 역사는 본격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겪은 격랑의 역사 속에서 점유된 공간의 중요성은 단순한 기술이나 외관의 미적 가치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언급된 정동제일교회의 가치가 오래된 교회 건물의 연혁에만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오히려 이 가치는 한국 역사가 걸어온 종교 건축의 아이러니와 더불어 한국교회사에 불어닥친 전통과 혁신의 길항작용에 대한 전거를 제시한 사례로 보인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뉴스앤조이 장명성

전통과 혁신의 길항작용

문화재로 선정될 정도로 역사 속에 뿌리내린 정동제일교회 예배당, 그 붉은 벽돌 예배당은 1897년 건축, 봉헌될 때부터 한국 감리교회와 민족의 흐름 속에서 중심축 역할을 묵묵히 감내해 왔다. 그 중심축에서 정동제일교회는 전통이란 구태의 함정에 함몰되지 않는 혁신의 모티브를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봉건적 신분 차별과 여성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1900년대,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은 남녀를 가르는 휘장을 과감히 벗겨 냈다. 낡고 억압적인 봉건적 사고의 이른 해체를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 사건은 교회 혁신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었으며, 종교 문화의 도도한 물결이 일제의 억압, 공산주의의 포악으로 대표되는 역사의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정동제일교회 출신 수많은 사람이 기독교 정신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게 된 점 역시 전통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혁신을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교회 건축 역사는 전통과 혁신의 상보적 조화보단 서로의 가치가 충돌하고, 한 측면이 다른 한 측면에게 흡수되어 상쇄되는 길항작용의 집약으로 봐야 할 요소가 다분하다. 정동제일교회 역시 또 다른 건물인 한국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 출현과 그 막후에 일어난 건축 행위 사이에 일어난 전통과 혁신의 길항작용이 있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은 정동제일교회의 또 하나의 저력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기념 예배당이 출범할 수 있게 된 배경엔 통합과 지속의 의지가 뒷받침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출현 과정이 치열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본래의 정동제일교회 예배당(현 문화재 예배당)은 그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이유만으로 남아 있어야 할 명분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예배당의 실제 사용자들에겐 곤혹스러운 일이다.

문화재 예배당은 안타깝게도 6·25 때 폭격을 받아 건축물 절반 정도가 파괴됐다. 절반 정도가 파괴된 예배당을 보수해 사용하는 일은 기술적인 문제도 상당하지만, 상흔을 입은 공간에서 예배하는 이들이 겪을 정서적 불편함과 어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1977년 11월 22일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정식 사적 등록을 받기 직전까지 이 상황은 지속되었다. 기존의 문화재 예배당의 협소함과 불편함에 대한 안팎의 호소는 교회를 신축하자는 요청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 혁신의 가치를 내걸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싶은 측과 이를 새로운 세력 출범의 과시로 간주하고 견제하려는 종교 권력 사이에서 일어난 보이지 않는 충돌, 그 충돌을 외부에서 지켜보던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식한 문화재청의 선택이 예배당 사적 등록으로 이어졌다는 사실, 그 막후 배경을 유추하는 일은 비약이 섞인 억측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 문화재 예배당은 해체 수순을 밟지 않고 전통의 역사적 가치로서 대한민국 역사의 한 지점을 점유하게 되었다. 또한 정동제일교회에 이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혁신을 상징하는 주체성이 출범하게 된다. 단순한 길항작용을 넘어선 또 다른 주체성이 정동제일교회 역사와 함께하게 된 것인데, 바로 한국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이다.

정동제일교회 한국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 뉴스앤조이 장명성

기념 예배당 내부 본당. 뉴스앤조이 장명성

길항작용 넘어선 또 다른 주체성 출범
- 한국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

기존 문화재 예배당을 비켜서 그 뒤에 지어진 한국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은 정동제일교회 본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교육관은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지어졌다. 전통을 상징하는 문화재 예배당을 그대로 보존한 채 새롭게 도입된 기념 예배당은 전통 속에서의 혁신, 그 주체성의 점유 방식을 재생이란 개념으로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당과 사회교육관 공간 쓰임새는 철저히 교인들의 기능별·직능별 분포와 공간 비중 분석에 의해 각 프로그램에 맞는 가변형 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한 가변성은 일방적인 예배의 제공자와 수혜자란 종교의식 소비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는 예배 안에서의 교육·친교·선교·봉사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효과를 이끌어 낸다.

그와 동시에 정동제일교회는 교회 건축의 가치가 단순한 종교 문화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자각하고 교회 건축이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 기능할 수 있도록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도입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정동제일교회를 떠올리는 키워드가 이제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가 없이 한국 역사의 살아 있는 증인, 종교 문화 발원지로 인식하게 한 역사와 종교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정동제일교회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새로운 의미 주체로 떠오르길 요청받고 있다. 그 새로운 의미 주체는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사회교육관 건물. 뉴스앤조이 장명성

100주년 기념탑. 뉴스앤조이 장명성

전통과 혁신의 갈림길에서

졸평拙評에 기울어질 난처함을 무릅쓰고 감히 한국교회의 현재를 진단해 보고자 한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이도 저도 아닌 하위 호환의 서브 컬쳐(subculture)로 주저앉을 위기와 그에 대한 반발 작용 속에서 스스로 녹아내리는 형국이다. 수용자 중심, 회중 중심의 개신교 교회 건축물은 현대화란 외피를 쓰고 공격적으로 한반도 지형을 잠식해 갔지만 그 건축적 가치는 지금 당장 허물어지고 다시 지어져도 별 상관없는 깃털만큼 가벼운 비중으로 내려앉았다. 재개발 광풍으로 기존에 있던 교회 예배당이 다 철거되고 새롭게 지어져도 별 감흥도, 변화도 못 느끼는 사태와 동일한데, 이는 교회 건축이 한국 사회 문화, 예술, 사회학적 가치, 그 어떤 영역에서도 별 존재감이 없는 도시 문화의 하위 변수로 전락했다는 서글픈 방증이다.

하위 변수로 전락한 한국교회 건축의 현실에서 정동제일교회는 적어도 문화재란 사회학적 지분을 갖고 지속되어 왔다. 이를 전통의 지속이라 본다면 정동제일교회는 향후 선택해야 할 지속성의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대적 요청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내용 없는 혁신이란 명분을 앞세워 무색무취한 정체성으로 다가갔다간 이도 저도 아닌 꼴을 겪을지도 모르기에 그렇다.

하드웨어는 문화재요, 소프트웨어는 박람회장이나 전시회장 정도의 의미에 머무르는 교회가 될 것인지 하위 변수로 내려앉은 교회 가치를 종교 문화의 틈새에 살아 숨 쉬는 사회학적 담론을 창조적으로 재생해 내는 상위 호환의 플랫폼으로 혁신하는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인지는 단지 정동제일교회의 고민만이 아닌 한국교회 전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사회의 골칫덩이로 주저앉은 것만큼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배당의 본질을 회복하면서도 그 예배당이 사회의 골칫덩이나 흉물로 점유되는 수치를 지속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문제의식을 지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정동제일교회를 통해 한국교회 미래를 진단하는 일은 단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는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고민이다.

소설가 주원규 목사가 '예배당 건축 기행'을 격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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