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한 사람의 이야기가 폭발하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다. 공감과 공감은 만나면서 더 큰 담론을 형성하고, 나아가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서지현 검사의 '이야기'가 촉발한 미투 운동이 대표 사례다. 2018년처럼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 해도 드물 것이다.

교회를 이탈하는 가나안 교인 현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신실 작가는 자신을 '심정적 가나안 교인'이라고 표현하며 <뉴스앤조이> 지면을 통해 교회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의 '영적 사춘기'를 다뤘다.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10차례 연재한 정 작가의 진솔한 신앙 이야기는 매회 평균 1만 5000명에게 닿았다.

정신실 작가는 <커피 한잔과 함께하는 에니어그램>(죠이선교회), <나의 성소 싱크대 앞>·<토닥토닥 성장 일기>(죠이북스), <연애의 태도>(두란노) 등의 저서를 통해 연애·결혼·육아를 비롯한 '일상의 영성'을 따뜻하게 글로 풀어내 많은 기독교인을 위로했다. 이번 연재에서도 △목사에게 상처를 입은 교인의 울분 △목회자 아내가 겪는 애환 △종교 중독자의 열심과 고통 △목사가 경험하는 소명의 굴레 등 날카롭게 쓸 법한 주제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았다.

정 작가는 목회자 아내가 된 후 10여 년간 어두운 터널과 같은 신앙 사춘기를 경험했다. '사모'로서 평생을 살아온 엄마, 긴 고민 끝에 목사를 그만둔 동생, 목회자로 살아가는 남편 사이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막막함을 느끼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 시기를 "독서로 뚫고 왔다"고 말했다. 자신보다 앞서 방황했던 저자들 책을 통해 터널 속 삶을 성찰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연재 글에서, 함께했던 책과 저자를 의도적으로 언급했다고 강조했다.

연재를 마무리한 정신실 작가를 11월 20일 서울 필동 카페바인에서 만났다. 연재를 끝낸 소회, 글쓰기와 책 읽기, 독서 여정 등을 들었다. 정 작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서울 필동에서 정신실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뉴스앤조이>에서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7월부터 11월까지 10차례 연재했다. 연재를 끝낸 소감이 어떤가.

'신앙 사춘기'는 내게 관념적 용어가 아니다. 몸으로 통과해 온 시간이 글로 정리된 것이 이번 연재 '신앙 사춘기'다. 힘든 글이 되리라 예상했지만 울게 될 줄 몰랐다. 한 편도 울지 않고 쓴 글이 없다. 쓰다가 울기도 하고, 독자 반응을 접하면서 울컥하기도 했다. 치유의 시간이 됐다. 보통 탈고할 때는 홀가분함이 있는데, 이번 글은 매번 송고 후에도 마음이 무거웠다. 마지막 글을 쓰고서야 '짐을 벗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올해 하반기는 이 글과 더불어 살았다.

모든 작가에게 글쓰기의 시작은 행복과 만족이 아닌 결핍과 고통일 것이다. 분명 되고자 하는 바, 목마른 바, 찾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글을 쓸 텐데, 뭔지 잘 모르고 쓰기 시작하는 듯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글 쓰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왜 쓰게 됐는지,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 결국 사람은 다 자기변호를 위해 사는 것 아닌가.

나를 변호하기 위한 글이 아니었나 싶다.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사람들이 읽어 주길 바라면서 동시에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 힘겨운 내적 갈등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글쓰기는 나를 지키는 방식이고, 이번 연재 글은 내가 지켜 왔던 것에 대한 고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무거운 주제의 연재였지만, 너무 무겁게만 다루지는 않은 것 같다. 글 중간중간 유머도 넣었다.

누가 이번 연재 글 중 '밥벌이로써의 목회'를 읽고, "다 읽고 나니까 웃을까 울까 망설여진다"고 하더라. 이 반응이 참 좋았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동요의 한 대목이다. "귀여운 꼬마가 닭장에 가서 / 암탉을 잡으려다 놓쳤다네 / 닭장 밖에 있던 배고픈 여우 / 옳거니 하면서 물고 갔다네 / 꼬꼬댁 암탉 소리를 쳤네 / 꼬꼬댁 암탉 소리를 쳤네 / 귀여운 꼬마가 그 꼴을 보고 / 웃을까 울을까 망설였다네."

글로든 일상에서든 누군가와 만날 때는 감정의 결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치유 글쓰기 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치유 집단이라고 해서 계속 울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글 나눔을 하며 웃다가 울고, 또 울다가 웃는다. 감정의 결이 살아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낀다는 것은 더더욱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가르치는 글을 쓰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쓴다. 가르치고 설명하는 글이 있어 보이는 것 같기는 한데, 나는 적어도 그런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그러기 위해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듯하다. 또 웃기고 울려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글에 웃음 코드나 유머가 들어가지 않으면 글을 못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글은 가볍지 싶기도 하고. 공감 조금, 고민 약간 하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이번 연재에서, 할 수 있다면 찌르고 싸매는 글을 쓰고 싶었다. 찌르기만 하지 않고, 덮어놓고 싸매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찌르고 동시에 싸매는 글. 찌르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나를 찌르게 됐기에 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목회자와 교회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데, 남편이 목회자다. 교회를 비판했는데, 내게 교회는 아버지이고 엄마다. 부디 독자들을 찌르는 것에 그치지 않았기를 바란다.

- 연재하면서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을 비중 있게 인용했다. 의도적으로 인용을 많이 넣었다고 들었다.

어떤 의미로든지, 나처럼 길을 못 찾고 영적 여정에서 방황했던 분이 계실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독서로 뚫고 왔다. 막막하고 아무도 안내해 주지 않을 때, 그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알려 준 것이 책이고 작가였다. 당시 내가 본 책 중 <책만 보는 바보>(보림)가 있었다. 그때는 내 모습이 그랬다. 길도 찾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 다가온 저자들과 친구가 됐다.

내 글이 얼마나 의도한 만큼 가닿겠는가. 내가 이 책들을 보면서 길을 찾아왔으니, 혹시 길을 찾으시는 분이 글을 읽다가 인용한 책을 보고 찾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독서를 하면서 길을 발견했다. 내 글을 읽는 분들이 글에 나와 있는 책들을 읽기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넣었다. 글에서 소개했고, 나를 안내했던 저자들은 내가 했던 방황과 고민을 앞서서 했던 사람들이다. 이를 단지 책 내용이 아니라 행간에서 읽어 낼 수 있었다.

나는 삶의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으니까, 한 저자가 마음에 들어오면 출판된 거의 모든 책을 읽는다. 전작全作을 읽는다. 전작을 읽자고 결심한 적은 없는데, '이분은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을까' 궁금하니까 책을 찾고 신간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읽은 것 같다.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 왔다. 저자를 좋아하게 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깊이 알게 되고 더욱 친밀해지는 듯하다.

정 작가는 연재를 하면서 도움을 받은 책들을 가져왔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본인의 독서 여정을 소개한다면.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만화책은 못 읽게 하셨다. '소년 소녀 전집'은 허락해 주셨다.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과학 서적들을 처음 접했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서적을 대학교 1학년 때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관련 사진도 보고 재판 과정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몰랐던 세계에 눈을 떴다. 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비로소 두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성학 서적이었다. 여성학이 대학교 필수과목이었다. 지금은 쉬운 페미니즘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당시에는 책이 별로 없어서 잘 못 하는 영어로 원서를 읽기도 했다. 어렸을 적부터 의문을 품고 있었던 이야기,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초기 인생 저자로 '래리 크랩'이 있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이름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도 이분 책 이름이다. 초기 글쓰기에도 영향을 줬다. 가장 충격을 받은 책은 <영적 가면을 벗어라>(복있는사람)다. 어릴 적 보수 신앙 속에 있을 때 망치로 나를 깨 준 책이었다. 내게 가장 큰 자부심이었던 신앙 행위들이 영적 포장지였음을 깨우쳐 줬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더불어 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적 목마름의 실체를 확인하게 됐다.

<영적 가면을 벗어라> 이후 내가 교회에 가장 절망할 때 <래리 크랩의 교회를 교회 되게>(두란노)를 읽었다. 내 고민과 너무 맞는 책을 내 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다. 이 책에 교회를 향한 저자의 회의가 정말 많이 담겨 있다. 래리 크랩 책은 신간이 나오면 바로바로 읽는다. 지금은 다소 소원해진 분이다.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주문해서 읽지만, 지금의 나는 처음 그분과 만났을 때와 다른 지점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헨리 나우웬도 빼놓을 수 없다. 나우웬 신부님 책은 꾸준히 읽는다. 갈수록 남성들이 쓴 책은 못 읽겠다. 그런 면에서 나우웬 신부님은 예외다. 예전에 좋아했던 저자들인데도, 남성 특유의 가르치려는 뉘앙스가 담긴 책들은 못 읽겠더라. 모든 남성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어느 저자들 책을 보면, 흔히 말하는 '맨스플레인'이 묻어 있다. 나는 많이 알고 있고 지적이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글을 쓰는 듯하다. 강의·설교가 주로 그렇지 않나. 가르치는 글, 설명하는 글에 취약하다. 잘 못 읽는다.

학부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해서 아이 발달이나 부모 자녀 관계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때 읽었던 책이 요즘 관심 갖고 있는 '학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종교 중독, 영적 학대, 성폭력 생존자가 겪은 학대 등등. 그때를 복기하면서 지금 다시 읽고 있다. 이후에는 심리 치료를 공부하면서 심리학, 특히 융 심리학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었다. 마음공부에 관해서는 로버트 존슨이라는 융 심리학자를 큰 선생님으로 삼고 있다.

- 남편과 함께 쓴 <와우 결혼>(죠이선교회)을 보면, 손봉호 교수와 이현주 목사 책을 통해 지금의 남편과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대학생 때 한창 책을 읽었는데, 그때 본 책들의 두 가지 축이 손봉호 교수님 책과 이현주 목사님 책이었다. 손 교수님은 보수의 원로이시다. 윤리적 삶에 대해 높은 기준을 제시하는 도덕 선생님 같았다. 이현주 목사님은 당시 내게 충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유로운 신학을 구사하셨다. 그분의 글은 충격 이상으로 통쾌했다. 내가 결혼이 늦어졌는데, 결혼 못 하는 이유를 엄마는 책 읽고 공부하는 것 좋아하는 데서 찾았다. 나는 결혼할 수 없는 것이 손봉호 교수님과 이현주 목사님을 동시에 아우르는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 교회 청년부에 들어온 친구가 주보에 글을 하나 썼는데, 손봉호 교수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어? 손봉호 교수님을?'이라고 생각했고, 그 친구는 내가 주보에 낸 이현주 목사님을 인용한 글을 보고 놀랐다더라. 예장고신 교회였는데 이현주 목사님을 인용했으니까. 이 친구도 역시 똑같이 두 분을 좋아하고 읽었던 것이다.

둘 다 손봉호 교수님과 이현주 목사님을 존경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교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로 너무 결이 달랐다. 남편은 생각보다 더 이현주적이었고, 나는 더 손봉호적이었다. 생각 차이로 갈등이 있었다. 존 스토트의 책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IVP)으로 검증해 보자 해서, 같이 읽다가 헤어졌다.

나는 가장 고통스러울 때, 독서를 통해 도피한다. 남편과 연애하다 헤어졌을 때가 성인이 된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고통의 순간들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임철우 작가의 5권짜리 소설 <봄날>(문학과지성사)을 읽으면서 보냈다. 내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책에서 계속 만나면서 고통을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가장 아픈 순간을 방어했다. 나도 모르게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에 조금 더 사회적 고통에 잇닿으려 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사실 손봉호 교수님 쪽에 많이 가까웠구나' 하면서. 그때는 내가 '우'고 남편이 '좌'였다. 그런데 결혼하면 오히려 서로 바뀐다고, 이제는 내가 남편에게 "너무 보수적으로 변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진다. 그렇게 남편과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 결혼하고 내내 살면서 각자 관심 분야 책을 읽으며 좋은 책 친구로도 지내고 있다.

독서 습관을 묻자, 정 작가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권을 책을 같이 읽는다고 말했다. 공부를 위한 책, 새벽에 일어나 읽는 책, 버스를 탔을 때 읽는 책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결혼하고 목회자 아내가 된 뒤 '신앙 사춘기'를 겪으면서 가톨릭 영성을 접했다고 들었다.

단지 목회자의 아내가 됐기 때문은 아니다. 교회에 실망하고 이전에 드리던 기도로 내 실존을 지탱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외적 삶이 아닌 내적 여정으로 안내하는 에니어그램과 만났다. 가톨릭 기관에서 에니어그램을 배우면서 안셀름 그륀, 토마스 키팅 등이 쓴 가톨릭 영성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다.

남편과 예장고신 교회에서 만났지만, 아버지가 예장합동 목사였고, 내내 비슷한 분위기의 교회를 다녔다. 가톨릭 영성, 철학 상담 등을 가톨릭 기관에서 배웠는데, 주변 교인들에게는 내가 뭘 공부하는지 얘기하지 못했다. 지금은 떳떳하게 밝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피정을 다닌다는 사실과 가톨릭 서적을 읽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남편이 목회하고 있기도 했고, 교회 분위기 자체가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양쪽에 끼어서 정말 좋았다. 가톨릭은 오랜 전통이 있는 영성이니까. 가톨릭이라기보다 종교개혁 이전에 우리도 함께 누린 영적 유산들인데, '내 고민이 여기 맞닿아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했다. 치유적이었고 전율했다. 이미 다른 기독교인들이 1000년 넘게 한 고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가톨릭 문화에 들어가 피정을 하거나 하면 나는 완전히 이방인이다. 외롭기도 했다. 나를 고아같이 만들어 놓은 교회가 미웠다.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마음의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개신교 안에 성찰의 영성이 잘 없는 듯하다. 성경 공부도 분석하고 주입받는 식이다. 균형 잡힌 좋은 성경 교사라도, 스스로 성찰하도록 안내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가톨릭 영성에서 주목하는 것은, 잘 배우고 읽었을 때 성찰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점이다. 가톨릭의 모든 신학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부분에 꽂힌 것이다. 내적 여정 세미나를 해 오면서 그런 가톨릭 신자들과 마음을 나누며 많이 배웠다. 60대 교회 권사님 정도 연배인데, 자기 성찰이 있다. 성찰하는 기도와 정직한 고백이 있었다.

책을 읽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이들 어릴 때, 거의 몇 년은 책을 잘 못 읽었다. 그때는 육아 일기를 계속 썼다. 새로운 생명이 주는 신선한 소재들이 있으니까. 그 소재들로 글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쓸까 하면서 에너지가 그런 쪽으로 가서 '책을 읽지 않아서 힘들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까 책 안 읽고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 연재에서 언급한 책 중 특별히 소개할 책이 있다면.

스캇 펙 책은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읽는다. 외웠다 할 정도로 읽었다. 스캇 펫 책들은 어느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정도까지 알게 된 것 같다. 스캇 펙의 '길' 시리즈가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끝나지 않은 여행>·<그리고 저 너머>(열음사)까지 3권. 특히 <거짓의 사람들>(비전과리더십)과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열음사)는 정말 소중한 책이다. 한 번씩 길을 잃었을 때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스캇 펙은 과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의 마음을 끝까지 의심해 본다. 실제로 많은 사람을 만나 상담하면서 마음에 대해 끝없이 의심해 본 뒤, 그 끝에서 만진 신앙이 이분에게는 종교관, 깊고 넓은 의미에서 영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연재에서 나는 거의 매회 <거짓의 사람들>을 마음에 많이 깔고 있었다.

리처드 로어 신부의 <벌거벗은 지금>(바오로딸)도 있다. 이분은 에니어그램을 가르치는 분이다. <내 안에 접힌 날개>가 이분이 낸 에니어그램 책이다. 이분은 통합의 영성에 주목한다.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우지 않나. 교회는 거룩하고 성은 속되다는 등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많이 배운다. 이원론을 넘어서는 삶은 거의 못 배운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이원론을 넘어서는 다른 눈으로 일상을 바라본다. 때문에 글이 참 쉽고도 어렵다. 그래서 책 소개를 하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고 하거나 "너무 뻔한 얘기예요"라고 말한다. 어렵기도 하고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분 책도 이번 연재를 하면서 마음에 많이 품고 있었다.

카렌 호나이라는 여성 정신분석가가 있는데, 이분은 사람을 보는 관점이 있다. 누구에게나 치유 인자가 있다는 것이다. 결핍된 환경에 놓이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각자 독특한 존재로 꽃피운다고 말한다. 참나무 씨앗이 참나무가 되고, 나리 씨앗이 나리꽃이 되는 것처럼.

문제는 환경인데, 부모의 종교적 학대, 가정적 학대가 없다면 애쓰지 않아도 가장 아름답게 자기를 발현한다고 말한다. 환경의 왜곡이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자기를 가장 자기답게 꽃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카렌 호나이 책을 이런 방식으로 읽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번 글을 쓰면서 실질적으로 많이 도움을 받은 책은 <해로운 신앙>(그리심)이다. 영적 학대에 관해 언급한 책이다. 영적 학대에 천착해 연구한 <해로운 신앙> 저자 스티븐 아터만 책을 많이 참고했다. 제랄드 메이의 <중독과 은혜>(IVP)에서 종교 중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보면서 종교 중독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신앙, 집착에서 참열정으로>(생활성서사)도 있는데, 세 분이 썼다. 마태로 린, 쉐일라 파브리칸트 린, 데니스 린. 부부와 형제지간이다. 한 명은 가톨릭 신부다. 치유 작업을 하고 글을 쓰는 분들인데, 이분들 책도 빠짐없이 읽었다. 하나님 형상으로서 인간의 마음·심리·영성에 대해 아주 쉬운 언어로 풀어낸다. 그림책도 있다. 자기 경험 속에서 인간 마음의 핵심을 관념적이지 않고 쉽게 쓰시는 분들이다. 세 분의 책을 소중히 읽고 있다.

정신실 작가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통해 일상을 더 잘 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지금 신앙 사춘기를 겪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지막 글에서 '어두운 숲'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인과촌장' 노래 중 '숲'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외롭고 외롭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숲 안에 있고, 숲에서 걷다가 숲을 통과하면 반드시 빛을 만난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적으로 누구에게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막막하고 한 발 디디면 낭떠러지일지 무엇일지 보이지 않는 깜깜함인데, 가다 보니 어느새 빛이 새어 들어오는 데가 있더라.

끝이 있고 사춘기 너머에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춘기'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신앙 사춘기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그 너머에도 하나님이 계시더라.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은 분명 누군가 앞서 고민했고, 신앙 여정이든 인생 여정이든 써 놓은 책이 반드시 있다. 찾기만 하면, 상담을 받고 친구나 선배를 만나서 물어보는 것보다 더 깊은 성찰에서 나온 답이 분명히 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에게 독서는 그것을 발견하려 했던 과정이다. 반드시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앞으로의 글쓰기와 책 읽기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이제는 중년으로서,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글을 써 볼까 싶다. 사춘기의 끝에서 내 아이의 진짜 사춘기를 맞고 있다. 지금 내 나이, 조금 이른 40대 초반부터 느끼는 중년들의 바람이 어떻게 영성적인 지점과 맞닿아 있는지 써 보고 싶다.

올해 하반기 내가 읽던 것이 <몸은 기억한다>(을유문화사),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사이행성),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양철북),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 <다크 챕터>(한길사) 등 여성, 몸, 학대에 관한 책들이다. 오늘(11월 20일)이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치유 글쓰기 마지막 모임이었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들 손을 잡으면서 독서와 공부의 새로운 여정에 들어선 것 같다.

신앙 사춘기 연재, 그리고 신앙 사춘기 자체를 넘어서 받은 하나의 초대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몸, 특히 학대받는 몸에 대해 더욱 읽고 쓰게 되지 않을까. 이제껏 내 고통 때문에 읽었고 내 글을 쓰기 위해 공부했다면, 누군가의 고통에 나를 포개기 위해, 누군가의 발설을 돕기 위해 읽고 공부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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