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인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2018년 10월 실시한 조사에서, 가나안 교인의 교회 이탈 기간은 평균 7.75년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최근 5년 새 교회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이제는 보편적 용어가 된 가나안 교인(교회 이탈 기독교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탈 계층도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교회연구소(정재영 소장)와 한국교회탐구센터(송인규 소장)가 11월 30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가나안 성도 신앙생활 탐구' 세미나에서, 정재영 교수는 이 같은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재영 교수는 2013년 초 가나안 교인 300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5년 전에 비해 가나안 교인들의 신앙 패턴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실시했다. 불출석자와 1년에 2회 이하 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인을 가나안 교인으로 보고, 82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교회 문화가 낯설고 정착이 어려운 초신자들만 교회를 이탈할 것 같지만, 신앙생활을 오래 한 이들도 상당한 수가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확인됐다. 실제 가나안 교인이 교회를 다녔던 기간은 평균 27.8년이었고, 교회를 떠난 지는 평균 7.75년이 지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지난 조사에서 없었던 '신앙 단계'를 물어보았다. 전체 58.3%가 '기독교 입문층(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종교가 삶에서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이라고 응답했지만, 그리스도 인지층과 친밀층 등 신앙 단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들도 24.7%, 10.8%로 총 35.5%를 차지해 적지 않은 비중을 나타냈다.

정재영 교수는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응답한 점을 봤을 때, '나이롱 신자'가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를 떠난 이유로는 '교회 출석 욕구가 없다'는 응답이 31.2%로 1위를 차지했다. 이들에게 다시 구체적 이유를 물어봤더니 '틀에 박힌 신앙생활이 싫어서'라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

교회를 떠났지만,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여기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38%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예수의 대속을 믿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12.3%였다. 신앙적 정체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응답이 50%,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26.2%)거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서'(13.2%)라는 관습적 응답이 40%, '사랑·정의·평화 같은 기독교적 가치가 좋아서'라는 문화적 응답이 10%를 기록했다.

떠난 교회에 대한 인식은 대체적으로 목회자를 향한 불만보다 교회 자체가 불편하다는 응답이 높았다. 목사가 권위주의적고 탐욕적이라는 응답도 높았지만, 교인들의 삶과 언행에 대한 불만, 경직된 분위기 등도 가나안 교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로 꼽혔다.

교회를 떠난 후 어디에서 예배를 경험했는지 묻자, 타 교회에 가서 예배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69.1%였다. 가정 예배, 혼자 예배를 했다는 경험이 뒤를 이었고, TV나 라디오,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석했다는 응답은 비교적 낮게 나왔다. 화상 예배(사이버 예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15%가량이었으며, 알고 있다는 이들 중 12%가 화상 예배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교회를 이탈한 후, 교회 구성원이 아닌 이들과 신앙 모임을 해 본 적 있다는 응답은 6.3%뿐이었다. 응답자 66.5%는 가나안 교인 모임에 참석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는데, '얽매이기 싫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반면 참석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들은 '신앙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가장 높게 꼽았다.

 

교회를 이탈한 가나안 교인들은 헌금이나 성경, 기도 등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헌금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4.3%, 성경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응답은 79.6%이었다. 거의 기도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44.1%로 가장 높았으나 가끔 기도한다(40.8%)와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이탈 후 신앙 서적을 읽거나 관련 강좌를 들어 본 적 있다는 응답도 모두 10%대로, 능동적 활동은 적었다. 그러나 신앙적 고민을 해 본 적 있다는 사람은 39.2%를 기록했다.

교회를 떠난 후 신앙이 약해졌다는 응답은 38.4%,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58.1%였고, 신앙이 더 확고해졌다는 응답은 3.5%였다. 향후 출석 의향을 묻는 데는 '언젠가 나가고 싶다'는 응답이 52.2%로 과반을 차지했다. 나가고 싶은 교회로는 '신앙·생활이 올바른 목회자가 있는 교회'를 1순위로 꼽았다.

 

가나안 교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자 '비신앙적이라는 편견을 버려 달라'는 응답이 60.9%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1인 예배 안내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응답과,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평신도 사례를 알고 싶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교리적 질문에서는, 70%가 성경이 정확 무오하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으며,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있으며,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데 동의했다.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응답은 50%를 기록했다.

교회와 신앙관에 대한 질문에는 '신앙은 개인적이므로 교회와 상관없다'는 응답이 72.7%를 기록했다. '목사 말에 무조건 순종하면 안 된다', '교회 내에서도 다양한 신앙관이 있을 수 있다', '설교를 비평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는 명제에 긍정하는 응답은 모두 90% 전후를 기록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 또 기독교가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교회가 개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가 언행일치하는 삶을 보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날 결과를 놓고 정재영 교수를 비롯해 송인규 교수, 구권효 편집국장이 가나안 교인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논의했다. 교회를 떠났다고 믿음 없는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왜 교회를 떠나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일률적 신앙 형태 고수하는 교회,
다양한 교인 필요 채우지 못해"

정재영 교수는 2017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이성구 대표회장)가 조사한 신앙 의식 조사와 이번 결과를 비교해 볼 때, 교회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고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한목협 조사에서는 가나안 교인 수가 전체 교인의 23.3%로 집계된 바 있다.

정 교수는 "기존의 신앙생활이나 목회 방식이 이들의 신앙적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낀 개신교인인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이에 대해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신앙적 다양성을 중시하고, 얽매거나 강요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교인들에게 교회가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신자를 전도해서 양육하는 데까지는 활발하나, 그 이후 신앙의 강화, '성화'의 과정은 부족한 것 같다고 봤다.

정재영 교수는 "교회 이탈 이유가 교회의 문제 때문이라면, 교회가 갱신되면 이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신앙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면 교회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교회 제도 자체를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한국교회가 대책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교회는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주제로 발표한 송인규 교수는, 가나안 교인 현상의 원인이 △개인주의 △세속화 △교회 염증에 있다고 진단했다. 송인규 교수는 어떤 이유로 교회를 이탈했든지 간에 "무언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인생과 신앙 여정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제도적 교회로의 복귀나 가치관의 변화를 꾀하려 하지 말고, 그들의 삶을 그대로 느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목회자의 일탈에서 발생하는 '교회 염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목사들은 지도자 특유의 탐심과 싸우고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라고 주문했다. 교회 내에서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송인규 교수는 마을 공동체나 자발적 모임 등으로 표출되는 다양한 '대안 공동체' 또한 가나안 교인들을 돕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또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비공동체적' 만남이 활성화하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한 소통과 공동체 형성도 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뉴스앤조이>가 취재한 다양한 가나안 교인 사례도 소개했다. 가나안 교인들은 어떤 하나의 범주로 묶기 어려웠다. 구권효 편집국장은 "목회자의 비리 같은 큰 사건 때문에 가나안 교인이 된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어느 날 문득 교회가 갑갑해져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었다. 또 매주 교회는 가지만 적을 두고 싶지 않아 교인들을 피하는 '심정적' 가나안 교인도 있다"고 말했다.

구권효 편집국장은 "가나안 현상은 역설적으로 '진짜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양진호가 기독교인이라는 보도도 있었는데, 교회 안 다니는 가나안 교인들이 교회 다니는 양진호보다 질 떨어지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가나안=비정상'이라는 인식보다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지를 서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영 교수도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중에도 실제 교회만 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많다. 진짜 신자 비율은 20% 정도"라면서 교회 출석 유무로 신앙의 정도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봤다.

정 교수는 이들을 강제적으로 교회 안으로 데려오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교회 바깥에서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위한 단체나 사역자도 많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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