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한국 학생들은 전 세계에서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다. 2017년 4월, 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 학생 웰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48개국 중 공부 시간이 가장 길고 학업 성취도가 최상위권인 반면, 삶의 만족도는 바닥 수준이다(47위).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이를 두고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이라고 썼다.

한국 학생들과 부모들의 대학 진학 욕구는 단연 높다. 인격 향상과 지식 탐구, 진로 탐색 등 다양한 학습으로 구성되어야 할 초·중·고등 교육과정이 단순히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위주 교육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평균 주당 60시간(OECD 평균 2배) 이상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은 말 그대로 '입시 지옥'이다.

'언스쿨링'(Unschooling)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안 교육 중 하나다. 언스쿨링은 학생들이 일정 기간 학교에 가지 않거나 교과목 중심의 학교 공부를 멈추고, 다양한 공부를 하는 것을 말한다. 기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언스쿨링은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 활동으로 학교에서 얻을 수 없었던 의미 있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다.

해외에서는 언스쿨링을 일찍부터 시작했다. 덴마크 에프터스콜레(1815년), 영국 갭 이어(1960년대), 아일랜드 전환 학년제(1974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국내도 언스쿨링을 시도하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공간민들레·꿈틀학교·하자센터 등 민관이 협력해서 만든 오디세이학교(2015년), 덴마크 에프터스콜레 모델을 적용한 꿈틀리인생학교(2016년)와 열일곱인생학교(2016년), 꽃다운친구들(2016년) 등이 있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꽃다운친구들 단체 사진. 사진 제공 꽃다운아이들

꽃다운친구들(이수진 대표)은 고등학교 진학을 미루고 1년간 '방학'을 선택한 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모임이다. 이수진 대표는 입시와 경쟁에 쫓겨 정신없이 달려온 학생들이 휴식을 통해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도록 돕고 있다. 일반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대안 학교, 홈스쿨링을 거친 다양한 청소년이 꽃다운친구들에 참여하고 있다.

꽃다운친구들이 강조하는 건 '휴식'이다. 학생들이 1년간 교과목 공부를 내려놓으면서 암기식·주입식 학습에 지친 몸과 마음을 비우고 회복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수진 대표는 이를 '디톡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기숙형 혹은 전일제 수업을 진행하는 다른 언스쿨링 기관과 달리, 꽃다운친구들은 일주일에 2번만 모인다.

<뉴스앤조이>는 11월 28일, 3기(2018년) 꽃치너(꽃다운친구들에 참여하는 학생들) 옥유겸(17)·변세준(17)·최서진(16) 군과 김은혜 양(16)을 만났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난타 배우기, 도자기 만들기, 국내외 여행, 암벽등반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공부 빼고 다 해요." 은혜 양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진 군이 말을 이었다. "다른 성격의 공부를 하는 거예요. 사실 학교 수업만 공부라고 부를 수 없는 거잖아요. 여기서는 '인생 공부'를 해요." 은혜 양은 "또래 친구들이 겪어 보지 못했을 경험들을 다 해 본 것 같아요. 1년이라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꽃다운친구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장래 희망이 영화감독인 세준 군은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세준 군은 기대에 못 미치는 졸작이라고 평했지만, 꿈을 향해 디딤돌을 하나 거친 것 같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수진 대표는 꽃다운친구들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이 아이들에게 자발성과 독립심을 길러 주고, 자기 주도 학습력을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이들의 모습이 주변 또래 친구들과 달라 보였다. 꽃다운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학생들 스스로 활동 기획
목공·도자기·난타·여행·사진 등
해마다 학생들 취향에 따라 달라
"하고 싶은 거 하는 모임"

유겸 군은 친구들보다 1년 뒤처질 게 걱정됐다. 그러나 불필요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간단한 자기소개와 어떻게 꽃다운친구들을 알고 참여하게 됐는지 말씀해 주세요.

옥유겸(유겸) / 일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을 시점에, 아버지가 꽃다운친구들을 소개해 주었어요.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저 혼자 1년을 쉬어 버리면 왠지 뒤처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 제 인생이 불안해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부모님은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면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어요. 고민 끝에 꽃다운친구들에 오게 됐어요.

변세준(세준) /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홈스쿨링을 했는데요. 어느 날 아버지가 소셜미디어에서 이 모임을 알게 됐다며 소개해 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지금도 쉬고 있는데 뭘 또 쉬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의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만 지냈거든요. 기왕 부모님이 추천해 줬으니 한번 가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했어요.

최서진(서진)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안 학교, 국제 학교 등을 거쳤어요. 꽃다운친구들에 안 왔다면 아마 혼자 공부를 하거나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처음 소개해 주셨는데, 모임이 좋아 보였어요. 여기서 친구들도 사귀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은혜(은혜) / 지난해 겨울, 어머니가 꽃다운친구들 홍보 영상을 보여 주셨어요. 그러면서 1년간 방학을 보내는 모임이 있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어요. 영상을 보는데 너무 재밌어 보이는 거예요. 바로 가겠다고 했어요. 공부 부담과 걱정에서 벗어나 좀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었거든요.

세준 군과 은혜 양. 학생들은 친구들과 1년간 함께하면서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꽃다운친구들에서는 보통 무엇을 해요?

은혜 / 공부 빼고 다 하는 거 같아요. 연초에 선생님이 큰 칠판에다가 하고 싶은 일을 다 적으라고 해요. 그러면 친구들이 빼곡하게 이것저것 다 써요.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바람을 정리해서 올해 커리큘럼을 만들어 주세요. 영화제작부터 사진 수업, 목공 수업, 도자기 만들기, 암벽등반, 국내외 여행 등 정말 다양해요. '꽃치너 데이'라고 학생들이 원하는 것만 하는 날이 있어요. 그날은 다 같이 찜질방을 가거나 한강에 놀러 가기도 해요.

유겸 /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선생님이 진로를 위한 적성검사나 글쓰기 수업 등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긴 하지만, 대다수 시간은 학생들이 원하는 활동을 하거든요. 그래서 매년 꽃다운친구들의 활동 프로그램이 달라요. 지난해 기수는 웹툰을 만들었다면, 올해는 영화를 제작하거나 난타를 배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가 가장 좋은 답변인 것 같아요.

서진 / 프로그램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지만 안 드는 것도 있어요. 선생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하면서 선택권을 주긴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얘기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그런 부분이 힘들었어요.

유겸 / 저마다 원하는 활동이 다른 경우가 있어요. 서로 배려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가끔 조를 나누기도 해요. 오늘은 A팀이 목공 수업을 받고, B팀이 영화를 제작하는 식이에요.

여행을 갈 때도 청소년들이 직접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숙소 예약을 진행했다. 해외에서 만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꽃다운친구들
장래 희망을 위해 단편영화 제작에도 도전했다. 사진 제공 꽃다운친구들

영화제작, 해외여행 계획 등
친구들과 서로 부대끼며
알지 못했던 '나' 발견하기도
"모든 청소년에게 필요한 시간"

-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세준 / 영화제작이요. 제 꿈이 영화감독이라서 연초에 영화 만들기를 제안했어요.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지만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제목은 '야, 어디가?'로, 청소년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요.

은혜 / 영화는 꽃다운친구들 이야기에요. 일반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친구들과 달리 1년간 방학을 보내는 우리들의 일상을 담았거든요.

세준 / 막상 완성된 작품을 보니 생각보다 달라 실망이 컸어요. 그렇지만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디딤돌을 하나 밟은 셈이죠. 돈도 많고 장비도 좋은 게 있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유겸 / 저는 해외여행이 제일 좋았어요. 어떤 재단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행비 지원 사업에 저희가 선발됐어요. 수상금이 1000만 원이었어요. 우리들이 직접 갈 곳을 선정하고,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식당과 숙소를 조사했는데,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해 준 것 같아요.

저희가 다녀온 곳은 중국 연변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예요.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할 때는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당황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스스로 준비해서 다녀오고 나니까 뿌듯하더라고요. 일반 학교에서 가는 여행은 선생님들이 짜 놓은 스케줄에 따라 학생들이 돌아다니잖아요. 그러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갔다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갈 곳을 조사하고 가니까 더 재밌고 유익했던 것 같아요.

-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얻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유겸 / 제 모습을 새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일반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오래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잖아요. 친구들과도 장난하고 놀기만 하지 깊은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꽃다운친구들에서는 같이 여행도 다니고 잠도 자고 샤워도 하면서 서로 대화할 시간이 많아요. 깊은 고민도 나누기도 하고, '너는 이런 특징이 있어' 하면서 제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친구를 통해 깨닫기도 해요.

은혜 / 꽃다운친구들에는 '톡투유'(talk to you)라는 시간이 있어요. 말 그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에요. 모든 학생과 선생님이 대화하는 전체 톡투유가 있고, 그룹별 혹은 개인별 톡투유가 있어요. 이런 시간을 통해 저도 몰랐던 점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서진 / 저는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갈등을 잘 해결해 준다는 말을 들었어요. 원래 제가 매일 사고만 치고 장난만 치는 성격인데, 이런 말은 여기에서 처음 들었어요.

세준 / 친구들은 제가 듬직하대요. 밖에 어디를 가면, 제가 아빠처럼 믿음직스럽하고 하는 거예요. 처음 듣는 말이었어요. 집에서는 부모님께 의존하는 편이니, 그런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친구들이 자꾸 듬직하다고 해 주니까, 저도 스스로 더 듬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서진 군은 교과목 공부는 인생의 수많은 공부 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친구들끼리 싸운 적은 없나요?

세준 / 제가 모임 초반에 한 번 터진 적이 있어요. 원래 싸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고 표현을 잘 안 하는 성격이에요. 그러니 친구들에게 쌓인 감정이 누적됐던 거죠. 한강 공원에서 친구들에게 진심을 털어놓으니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유겸 / 세준이가 내성적이라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려웠어요. 세준이가 다른 친구의 불편한 행동을 참고 있다가, 나중에 터진 거였어요. 그때 전체 톡투유 시간에서 세준이가 '나는 이런 부분에서 너희가 조심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 줬어요. 그제야 친구들도 그동안 잘 몰랐던 세준이를 이해하고 더 친해질 수 있었어요.

꽃다운친구들은 학생 수가 일반 학교보다 적어요(2018년 꽃다운친구들 참가 학생은 9명이다). 일반 학교는 한 한급당 대략 30명이잖아요. 그러면 비슷한 성향의 친구하고만 어울려도 돼요. 그런데 여기서는 자신과 안 맞더라도 어떻게든 부딪히고 친해져야 해요. 처음에는 다들 나와 다른 성격의 친구와 같이 활동하는 것을 힘들어해요. 그렇지만 나중에는 그게 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아이들은 같이 노동도 경험하면서 협력의 가치를 깨닫는다. 사진 제공 꽃다운친구들
꽃다운친구들은 학생들 간 대화를 강조한다. 대화는 오해와 갈등을 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 제공 꽃다운친구들

- 대다수 기성세대는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고 말하잖아요. 1년 동안 쉬는 게 좋다고 말해도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은혜 / 친척 중 한 분이 "지금 놀 때 아니다.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한심한 눈빛으로 보긴 해요. 사실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1년간 쉬는 것만으로도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요. 또래 청소년들이 얻지 못한 값진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난 1년이 전혀 후회되지 않아요.

유겸 / 주위 어른들은 대부분 부럽다고 말해요. 중학교 선생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분도 우리나라가 가장 필요로 하는 교육을 지금 제가 받고 있다고 말해 줬어요. 저는 현재 꽃다운친구들에서 하는 교육 활동이 모든 청소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은 잠깐 멈춰서 돌아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우리를 모범 답안처럼 봐 줬으면 좋겠어요.

서진 / 저는 유겸이처럼 제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 이런 활동을 긍정적으로 말씀해 줘요.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너희가 정말 훌륭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도 꽃다운친구들을 하면서 그분들 말씀이 정말 맞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누구나 똑같은 길만 걸을 수 없는 거잖아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휴식의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말에는 동의해요. 그렇지만 그 공부가 교과목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공부는 더 소중하고 중요한 인생 공부라고 생각해요.

세준 / 꽃다운친구들에서 보낸 1년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아요. 무언가 잘못했으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씀을 잘 수용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잘 받아들이게 됐어요.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서 제가 달라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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