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가난한 전도사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처럼 가난한 이가 없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20여 년 전 신학대를 졸업한 뒤 부푼 기대를 안고 교회에 발을 디뎠다.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교회는 교인들 생계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로 교인 수 불리기에 급급했다.

'교회에 하나님이 있긴 한 걸까?' 박용수 전도사는 고민했다. 마음을 다잡고 목회를 계속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자신의 꿈이 맞지 않다고 느꼈다. 결국 전도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봤다. 일반 회사를 전전하다가 무역 회사에 취직했다.

가난했던 전도사 시절과 차원이 다른 삶이 펼쳐졌다. 회사는 고액 연봉에 전용차, 법인 카드를 제공해 줬다. 원 없이 돈을 벌었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공허했다. 교회도 열심히 다녔는데,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에 다시 목회를 해 보려고도 했다.

"목사 안수를 받아 교회를 개척하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여러 교회 사정을 보니 안 될 것 같더라. 한계가 보였다. 차라리 목회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가난하게 자랐으니까. 주간에는 회사를 다니고, 야간에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그리고 2001년 교회 지인과 함께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돕는 광진자활센터를 만들었다."

광진자활센터를 만든 이후 늘푸른협동조합, 도움누리 등 여러 사회적 기업을 조직했다. 개인 혹은 기업이 '승자 독식' 하지 않고 다른 이(단체)와 상생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모습은, 그가 생각하는 초대교회 이미지와 닮아 있었다. 11월 16일 서울 광진구 '공유공간 나눔'에서 만난 박용수 집행위원장(광진구사회적경제네트워크)은 "사회적 경제는 돈을 벌기 위한 경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한 경제다. 여기에는 성경 속 경제 원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초대교회처럼 개개인이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재화와 물건을 통용하며 함께 잘사는 삶을 의미했다.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를 꿈꿨던 박용수 위원장. 그는 사회적 경제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초 생활 수급자들, 매달 1~2만 원 회비로
병원비, 보증금, 전세금 등 급전 해결
공동주택으로 주거난 해소
"연대와 협력으로도 상생"

광진자활센터가 돕고 있는 기초 생활 수급자 중에는 신용 불량자가 많았다. 이들은 급한 사정이 생겨도 쉽게 돈을 빌릴 수가 없었다. 어떤 회원은 돈이 없어서 자녀 수학여행도 보내 주지 못했다. 수학여행 경비는 20만 원이었다.

박용수 위원장은 센터 회원들과 자조 금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을 읽고,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 대출) 모델을 연구했다. 2004년에는 회원 20여 명과 늘푸른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들이 매달 1~2만 원씩 낸 회비로 기금을 만들었다. 급전이 필요한 이에게 무담보·무보증 대출을 지원했다.

"다들 신용이 안 좋으니 급전을 구하기 어려웠다. 병원 진료비나 자녀 교육비, 전세 보증금 등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서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 관계가 꼬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만의 자조 금융을 만들었다."

14년이 지난 지금, 늘푸른협동조합 회원 수와 자금은 크게 증가했다. 20여 명이었던 회원은 250여 명으로 늘었고, 기금은 2억 6000만 원이 쌓였다. 조합은 개인 문제뿐 아니라 공동 문제에도 나섰다. 쪽방에 거주하는 조합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공동주택을 마련했다. 늘푸른협동조합은 지난주 전세 빌라를 구입했다. 조합원은 다음 달 입주할 예정이다.

"공동주택은 아직 시범 단계다. 조합원들이 생활 수칙을 준수하며 공동생활에 잘 적응하면,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개인의 급전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 이제는 사회문제까지 시선을 넓히고 있다. 연대와 협력으로도 상생이 가능하다. 사회적 경제만이 갖는 효능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내 사회적 기업 41곳
광진구사회적경제네트워크 조직
판로 개척, 협력 서비스 개발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연대와 협력으로 상생이 가능하다. 이를 보여 주는 예가 박용수 위원장이 있는 광진구사회적경제네트워크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자활 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모인 연대체는, 신뢰와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경제 생태계를 일구고 있다.

광진구사회적경제네트워크는 2014년 조직했다. 늘푸른협동조합을 포함한 지역 내 사회적 기업 16곳이 정기로 진행한 친목 모임이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대다수 기업이 작고 영세하다 보니 하는 고민도 비슷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 경영난을 돌파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들은 매달 모여 지역 현안을 논하고 협력 모델을 개발하며 외부 강연을 듣고 있다.

지금은 회원 기업이 41개로 성장했다. 직접 고용 인원이 900명, 조합원까지 포함하면 2000여 명이다. 박 위원장은 "우리 안에 작은 시장이 형성됐다. 각 기업이 생산하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판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규모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순히 서로의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 기업이 취급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협력해,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광진구 내 교육 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 9곳이 있다. 어떤 곳은 '수학', '과학'에 특화되어 있고, 어떤 기업은 '인문학'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또 다른 단체는 '동영상 제작 및 편집'을 가르친다. 이들이 협력해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한다.

"또 다른 예로, 지역 내 어르신을 위한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 영양죽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빨래방을 운영하는 자활 센터, 국악을 가르치는 단체 등이 돌봄 서비스와 연계해 공동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은 커뮤니티 케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들이 꼭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다."

광진구의 사회적 기업 41개가 연대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공동으로 마을 축제를 열기도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회적 경제 단체가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부동산 문제다. 임대료 상승이 사업 존폐를 결정할 수도 있었다. 현재 광진구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비롯해 15개 단체가 모여 있는 '공유공간 나눔'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매일 공간을 빌려서 사용하던 사회적 기업들이 자금을 모아 건물을 보유했다.

'내 집 마련'처럼 '사옥 마련'은 광진구 사회적 경제 단체의 오랜 숙원이었다. 첫 물꼬는 광진주민연대가 텄다. 2007년 광진주민연대를 포함한 여러 단체가 사용 중인 4층짜리 건물의 주인이 매각하겠다고 알려 왔다. 단체들은 건물을 매입하기로 했다. 기존에 갖고 있던 보증금 3억 원에 회원들이 낸 3억 3000만 원, 은행에서 빌린 5억 7000만 원 등을 모아 12억 원에 건물을 사들였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변수가 생겼다. 자양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은 개발사에 보상금을 받고 현재 중곡동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을 매입했다. '공유공간 나눔'의 시작이다. 매입하는 데 든 비용은 인테리어와 시공까지 포함해 36억이다.

박 위원장은 "보상금 차익으로 5억 원을 챙긴 게 도움이 됐다. 나머지는 은행 대출과 각 회원들이 낸 보증금으로 충당했다. 사실 재개발 당시 인근 건물주와 비교하면 차익을 10억 넘게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원사 대표들이 어떻게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느냐며 반대했다. 물론, 지금은 다들 후회하고 있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는 "사회적 경제 주체가 건물을 직접 보유하면 일단 임대료를 안정화할 수 있다. 입주사들은 매출 규모와 사용 공간에 따라 적정 수준으로 임대료를 내는데, 기존보다 비용을 1/3 절감했다. 이렇게 되면 지속 가능성도 증가한다"고 말했다.

광진구 사회적 기업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공유공간 나눔(사진 가운데)'. 뉴스앤조이 박요셉
각 층에는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시민단체들이 입주해 있다. 1층에 있는 생협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회는 교인들 어려움에 대한
근본 해결책 고민해야…
답은 '희년', 하나님의 경제 원리"

교계도 사회적 경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1년, 주요 교단이 공동으로 사회적 기업을 양성하기 위한 지원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박용수 위원장에게 사회적 기업들이 한국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 위원장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교회가 사회적 기업을 직접 지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차라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인들을 돌보는 일을 우선했으면 좋겠다. 교회에도 가난한 이가 있다. 실업자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도 있다. 단순히 돈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목회자들도 사회적 경제를 공부하게 된다.

하나님의 경제 원리는 '희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이 각자 땅을 소유하고 부를 쌓을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다. 가난한 이들이 소출을 거둘 수 있도록 휴지기를 갖게 하거나 곡식을 다 걷지 말도록 했다. '희년'이 되면 땅을 돌려주고 부채를 탕감해 빈곤층으로 전락한 이들이 다시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자활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다.

이러한 경제 원리가 사회적 경제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살기 위한 경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경제다.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 원리를 실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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